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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볼리비아 라파스 한인회 손진후 회장, 그는 누구인가
김도균 기자  |  kdg@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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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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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중인 손진후 볼리비아 파라스한인회장

지난 3월 초 재볼리비아 라파스 한인회 관계자로부터 본지에 연락이 왔다. ‘회장님을 모시고 방한했는데 볼리비아한인회 활동내용을 알리고, 고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반도 반대편 머나먼 남미대륙에 사는 한인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브라질과 칠레 외 다른 남미국가들의 한인사회에 대해서도 궁금하던 차여서 라파스한인회장과의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큰 손가방 하나를 들고 해외교포문제연구소 사무실에 들어선 50대 중반의 라파스한인회장의 풍모는 여느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감과 중후한 매력을 풍겼다. 한국과 볼리비아를 오가며 오랫동안 사업을 해 온 탓인지 모든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눈치다.

남미로의 이민과 정착

손진후(54) 재볼리비아 라파스 한인회 회장. 그가 남미로 이민을 떠난 것은 대학을 갓 졸업한 1983년이었다. 볼리비아와의 인연은 손 회장보다 2년 먼저 이민 간 누나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30여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그가 정착한 곳은 볼리비아의 사실상의 수도(헌법상의 수도는 수크레)인 라파스였다. 라파스는 남미 중서부의 티티카카호(湖) 동쪽 80km 지점에 있는 해발 약 3,600m의 고지에 건설된 도시로, 볼리비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처음 라파스에 도착했을 때, 첫날은 괜찮았었는데, 다음날부터 고산병 증상인 매스꺼움과 구토, 두통 등이 나타나 현지에 적응하기까지 한동안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민 초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정식이민임에도 불구하고 영주권을 받지 못하는 일이었어요. 당시는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 있었고 쿠데타 등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웠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때마침 인근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불법 외국인 체류자에 대한 사면령이 내려지면서 손 회장은 아르헨티나로 거처를 옮겼다. 연고자 없이 4개월 정도를 지내다 현지 교포의 도움으로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서부 온세지역에 있는 봉제공장에 취직한다. 대부분 한인들이 종사하고 있는 봉제·의류시장 진출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됐던 것이다.

그 후 손 회장은 특수 미싱을 구입해 봉제하청공장을 차렸다. 한동안 언어소통이 안 돼 애를 먹었지만 업무에 필요한 주요 단어들은 외우거나 미리 연습해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그렇게 3년 동안 이룬 하청사업을 기반으로 그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어엿한 사장소리를 듣게 됐다.

“젊은 패기로 열심히 일을 했지만, 힘든 일들을 극복하면서도 마음을 나눌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 2013년 10월, 재볼리비아 대한민국대사관 주최로 대사관저에서 열린 개천절 기념행사에서 교민들과 함께. 

1986년에 귀국해 결혼하고 바로 볼리비아로 돌아가서 완전히 정착하게 됐어요”

볼리비아에 정착한 손 회장은 본격적으로 의류원단사업에 뛰어 들었다. 한국에서 나일론 원단을 들여다 볼리비아에 판매하는 무역을 시작한 것이다. 그 후 내자가죽원단, 가방원단 등 각종 원단관련 제품을 취급하며 사세를 키워나갔다.

1990년대 초에는 한국 연천지역 우사에 버려져 있다시피 한 내자가죽원단을 볼리비아로 가져가 거래상들에게 줄 세워 팔정도로 번창했다.
당시 원단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에 대해 물었다.

“체제만 사회주의였지 사업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부정부패가 심했고, 통관업무가 체계적이지 못해 오히려 돈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죠. 그리고 라파스 시민들도 한국인이나 동양인에 대한 거부감이 별반 없는 편입니다. 중국인 철도노동자를 비하하는 말인 ‘찌노’라는 말로 가끔 놀리기는 했지만 편견과 차별은 없는 편이었죠.”

볼리비아 원단 시장을 장악하다

손 회장은 1995년부터 사업의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기존에 취급하던 원단들을 뒤로하고 폴리에스더 원단을 취급했다. 볼리비아 전체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원주민들이 입는 고유의상(치마, 망토)에 들어가는 원단을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원주민 여성들은 매주 주말이면 모여서 마을축제, 상인축제 등 여러가지 축제를 펼치는데, 축제 때마다 다른 의상을 입고 나오기 때문에 의상수요가 상당했다. 그들의 옷 제작에 필요한 원단을 손 회장이 공급하고 있었으니 볼리비아 원단업계에서는 가장 큰 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한 때 볼리비아 원단시장의 95%까지 장악할 정도였다.

손 회장은 거래처 고객 중 우수고객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관광과 섬유회사 견학 등을 통해 한국의 발전상을 보여주고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심어주려고 노력 해왔다. 또한, 현지 원주민들에게 한식 뷔페를 열어 한식세계화의 붐도 일으키고 있다.

손 회장은 사업을 확장하는데 한가지 고민이 있다고 했다. 볼리비아에서 다양한 사업을 펼치기에는 산업기반이 약하고, 법률제도가 미약해 사업을 크게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항상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볼리비아의 노동법은 스페인 노동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공장하나 설립하는 것도 매우 까다롭습니다. 기반시설이 약해 지하자원과 농산물, 천연가스 등을 주로 수출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사업 확장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손 회장이 지금까지 원단사업만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그런 연유에서다.

원주민 인디오들이 주로 입는 치마의 대부분은 손 회장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그는 이들 인디오들이 입는 옷에 대한 디자인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다. ‘경제력이 약한 원주민들이 유행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라는 게 손 회장의 설명이다. 행사 때마다 다른 옷을 갈아입고, 축제 때는 매일 다른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옷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다. 인디오들이 입는 주름치마에 들어가는 원단만 해도 한 벌당 약 6~7m정도 라고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한글학교는 교민들의 만남의 장… 현지인들의 참여 증가

   
 ▲ 2013년도 재볼리비아 한글학교 운동회.

손 회장이 한인회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꽤 오래됐다. 볼리비아에 정착한 후부터이니 약 30년 가까이 해 온 셈이다.
1987년부터 1988년까지는 한글학교 교장으로 지냈다. 한글학교는 주말을 이용해 교민들의 2세들을 위한 한글교육과 역사를 가르쳤고, 교민들 간의 유대강화를 위한 만남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특히 교민 수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교민 들 간에는 서로 가족적인 분위기가 이뤄졌다.

“1987년 당시 한국정부로부터 연간 1천 달러 미만의 지원금을 받았으나 재정이 부족해 여타 지역의 한글학교처럼 자체부담으로 운영해 왔습니다. 지금은 재외동포재단에서 주는 월 800달러의 지원금과 교민들의 후원금으로 운영해 가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 큰 힘이 됐습니다.”

라파스지역 한인 2세들은 50여 명 정도이다. 손 회장은 연령층이 다양해 수준별, 연령별에 맞는 교사확보가 관건인데 그래도 교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교사로 참여하고 있어 큰 힘이 되고 있다. 이곳 한글학교도 여느 한글학교와 마찬가지로 시설과 교재부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외동포재단에서 교재를 지원받고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학습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수준별 학습교재나 원주민을 위한 교재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교재로서는 학습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 라파스 한글학교는 아주 독특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현지인들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오전에는 한인자녀를 대상으로, 오후에는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교육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운영 방식으로 지난해만 현지인 300명에게 무료로 한글교육을 실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글학교 교사 들은 부채춤, 사물놀이 등을 가르치며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전하기도 한다.

   
 ▲ 2013년도 한글학교 운동회.

이들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현지 TV방송국으로부터 출연요청이 쇄도해 현지 TV에 출연하기도 했다.
손 회장은 한글학교에 대한 기대를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한글학교를 한국학교 수준까지 끌어올린 후 국제학교형태로 키울 생각입니다. 일본인들을 보면, 자국의 언어를 가르치면서 일본을 방문케 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데, 우리도 반드시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손 회장은 재외동포재단의 장학생 선발과정에서도 한글학교 출신이나 한글학교를 다니는 원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남미에 부는 K-POP열풍

남미 대륙에 부는 K-POP열풍은 대단하다. 최근 몇 년 새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K-POP은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는 중남미 대륙사람들에게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브라질, 칠레, 멕시코뿐만 아니라 중남미 전역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볼리비아도 예외는 아니다. 볼리비아 내 K-POP동호회 회원만 6천여 명이다.
특히 라파스지역 라디오방송국에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시간대에 K-POP관련 음악을 방송하고 있다.

   
 

“대부분의 K-POP동호회들은 소그룹으로 나눠 자체공연과 활동을 펼치고 있으나, 볼리비아의 소득수준이 낮기 때문에 한국대사관이나 한인회에서 이들의 활동을 조금씩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화를 알리는데 K-POP이 전도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손 회장은 K-POP동호회 회원들이 가장 원하고 있는 국내 K-POP가수들의 볼리비아 공연을 추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2만 명이상의 공연티켓이 팔려야 가수들을 초청할 수 있기 때문에 페루 쪽 에이전트와 협의 중에 있다.

볼리비아 국민들이 한국문화에 대한 반응은 K-POP뿐만 아니라 한국드라마에도 꽂혀있다. 한국드라마 복제품이 나돌고 있는 것은 흔한 일이다.
손 회장은 이런 기회를 활용해 한국문화를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설날 또는 개천절 등 한국의 절기에 맞춰 한국문화 공연을 펼치고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도 한다.

내년은 한국과 볼리비아가 수교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손 회장은 라파스 한인회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한국문화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K-POP동호회와 함께 한국 전통춤, 태권도시범, 아이돌그룹 공연 등을 포함한 대규모 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설날에는 K-POP동호회 간부들과 같이 설날 행사를 준비하기도 했어요. 한인청년(차세대)들도 참여해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는 ‘K-POP동호회’같은 모임은 한인회활동과 현지 한인들의 정치력신장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라파스한인회는 이들 동호회와 만남을 통해 서로 결속력을 다져 나가고 있다. K-POP동호회 자체 행사 때도 심사위원으로 초청되는 등 K-POP동호회와의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다.

한인정치력신장의 주역은 차세대

   
 ▲ 2013년 10월 19일, 볼리비아 '한국가요 동호회' 주최로 열린 한국 K-POP 행사에서 한인회 직원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손 회장에게 차세대에 대한 기대와 역할에 대해 물었다.
“교포청년들에게 정치참여 기회를 가지고 거주국에서 우리 한인들의 정치력신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에 대한 분위기는 교포 1세들이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 회장은 남미에 있는 일본인들의 경우 지방 정치인 배출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K-POP동호회 등 한인들의 우군이 되고 있는 세력들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인들의 정치력신장에 큰 힘이 될 이들 모임들과의 유기적인 관계형성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잉카제국의 일부였던 볼리비아는 16세기 스페인에 정복당한 뒤 스페인 식민지로 있다가 1825년에 독립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칠레에 해안 지역 리토랄 주를 잃고 1879년 이래 내륙 국가가 되었다. 한국과는 1965년에 수교를 맺었다. 한국이 IMF를 겪었던 1998년에는 주볼리비아대사관이 폐쇄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교역량만 따져서 대사관을 폐쇄했는데, 2008년 재설치하기까지 10년 동안 한인사회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민들 입장에서는 모국의 대사관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대사관이 재설치 돼 다행이긴 한데, 볼리비아는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 K-POP 행사에서 찬조공연을 하고 있는 라파스한글학교 학생들.

손 회장은 2013년 8월에 라파스한인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한국문화에 매료돼 있는 현지인들과의 유대강화에 역점을 두고, K-POP을 비롯한 다양한 한국문화를 전파하고, 의료봉사 등을 펼쳐 현지사회에서 한인들의 위상을 높일 계획을 갖고 있다.

“남미지역이 그렇듯이 볼리비아도 한국 상품이 시장을 석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돈만 벌면 떠난다는 인식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알리는 것도 우리 교민들의 몫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치과의사 2명으로 이뤄진 의료진을 구성해 약 200명의 현지 주민을 상대로 의료봉사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손 회장은 한국정부의 볼리비아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코이카(KOICA) 등을 통해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손 회장은 향후 볼리비아에서 이룰 꿈을 그리는데 여념이 없다.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을 바탕으로 종합무역상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그리고 국제학교 설립도 추진 중이다. 한글학교를 한국학교로 발전시켜 궁극적으로는 국제학교를 만들 계획이다. 그는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또 하나는 볼리비아 최대 관광지가 되고 있는 소금사막인 우유니와 자연호수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한 티티카카호수를 중심으로 한 관광지개발을 구상 중이다. 우유니 소금사막 주변에 호텔과 식당 등을 건설해 운영하고, 여행관광서비스를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잉카문명을 꽃 피웠던 남미의 내륙국가 볼리비아. 산업의 발달이 더딘 곳이지만 자연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연과 풍부한 자원은 뭇 사람들의 발길을 인도하고 있다. 이곳에서 지난 30여 년의 척박한 이민생활을 통해 기업을 이룬 손진후 회장은 불어 닥친 한류열풍과 함께 또 다른 꿈을 이뤄가고 있다. 우리 다함께 그의 꿈을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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