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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인에 대한 위로금 지급과 관련한 소송상 문제
손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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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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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난 4월 17일 "제2차 킨(KIN-지구촌동포연대) 네트워크 포럼 – 해방되지 못한 사할린한인 문제"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의 손영실 변호사가 발표한 원고임을 밝힙니다. - 편집자 주.


[ 손영실 / 변호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
 

   
▲ 손영실 변호사

사할린에 강제징용 되었다가 사망한 희생자들에 대하여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위로금 지원법’이라 합니다)은 2천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제징용 희생자가 1938년 4월 1일부터 1990년 9월 30일 사이에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하여야 하고, 희생자의 유족이라 하더라도 한국 국적이 아니면 위로금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위 규정은 사할린 한인들이 왜 사할린에 살게 되었는지,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1990년 9월 30일까지 대한민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한 사람만을 희생자로 보는 문제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위로금 지원법이 희생자 기준을 1990년 9월 30일전에 사망한 자로 두고 있는 것은 1990년 9월 30일 한·소 수교가 맺어 졌으니 그 이후로는 자유롭게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으므로 그 이전에 사망한 사람들만 강제동원으로 인한 희생자로 보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일본은 사할린 한인은 남겨두고 일본인만을 귀국선에 실어갔으며, 대한민국 역시 동포를 귀국시킬 배를 띄우지 않았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국제적인 냉전구도가 형성되면서 대한민국과 소련이 국교마저 단절되니 사할린 한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방도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할린 한인들은 타의로 사할린에 터를 잡고, 일자리를 가지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수 십 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한·소 수교가 맺어졌다고 모든 것을 버리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한·소 수교를 기준으로 그 이전 사망자만 희생자로, 그 이후 사망자는 희생자가 아니라는 기준은 책상머리 에서 나온 입법이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사할린 한인의 경우 사망일시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국적문제도 그렇습니다. 일본은 패전 후 사할린 한인들의 일본 국적을 말소시켰습니다. 소련은 사할린 한인을 무국적자로 처리하였구요. 사할린 한인들은 어쩔 수 없이 러시아 국적이나 북한 국적을 취득할 수밖에 없었고, 아니면 무국적자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위로금을 줄 수 없다고 하니 위로금을 받자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하여 사할린 한인들 몇 분이 원고가 되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이 변호인단을 꾸려 2012. 8. 한국 법원을 상대로 위로금을 지급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소송에서는 위와 같은 사할린 한인들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위로금 지급법이 개정되면서 사할린 한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 추가되었는데 위로금 지원법이 조건을 까다롭게 하여 실질적인 지원이 안 되고 있다는 점, 똑같이 일제 강제동원으로 피해를 입었는데 1990년 9월 30일 이전과 이후를 나누어 사망하였다고 차별하고, 한국 국적이 있고 없고에 따라 차별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 위반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다른 강제동원 희생자인 일본군 위안부, 원폭피해자 등은 해방 이후 즉시 고국으로 돌아왔고, 한국 국적이 있어 보상받는 자가 많은데 사할린 한인들은 특수상황으로 그렇지 못하여 보상받는 자가 적은 것 역시 평등원칙 위반이라고 주장하였고, 헌법에서 정한 재외국민 보호의무의 위반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2012. 11. 30. 1심 법원은 위로금 지급은 국가의 시혜적 조치이므로 입법자들이 누구에게, 어떠한 조건으로 줄 것인지 정할 자유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1990년 9월 30일 이전에 국외에서 사망한 자들을 희생자로 보고, 그 유족들이 한국국적이어야만 위로금을 주겠다는 법이 잘못된 것이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가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이 역시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는 입법자들이 정할 문제이므로 위로금 지급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이에 변호인단은 항소를 제기하였고, 현재 2심 법원에서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법원이 위로금 지원법이 위헌이라고 판다하기에는 상당한 부담이 있다고 보아 변호인단은 2013. 1. 헌법재판소에 위로금 지급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을 내려달라는 위헌소원도 제기하였고, 현재 심리 중에 있으나 언제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결국은 입법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사할린 동포에 대한 지원관련 법률이 발의되고 있으나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한국에 이주한 사할린 한인들을 지원하는 법률들이지 현지에 남아서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사할린 한인들을 지원하는 법률은 없습니다. 물론 대한민국 이주 사할린 한인에 대하여 충분한 지원이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아있는 한인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희생자 1명당 2천만 원의 위로금이 사할린 한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할린 물가가 대한민국과 비슷하고, 2천만 원을 여러 명의 유족들이 나누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도움이 되는 금액이라 볼 수 없는 것이지요.
다만 이번 소송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남아있는 사할린 한인들에 대하여도 대한민국 정부가 위로금을 지급하는 등의 지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동안 조국의 무관심으로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사할린 한인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어려운 점은 법원 판사들이 사할린 한인 문제에 대하여 너무 모른다는 점입니다. 물론 저 역시 이번 소송을 맡기 전까지는 사할린 한인이 왜 생겨났는지에 대하여 전혀 무지하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사할린을 비롯한 시베리아 억류 한인에 관한 서적이 2000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전무합니다.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비하면 사할린 한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보잘 것 없습니다.
우선 사할린 한인들이 머나먼 동토에 살고 있으므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봅니다. 하지만 일본은 전후 3대 청산 과제로 일본군 위안부, 원폭피해자와 더불어 사할린 한인을 난제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없으면 문제도 없다’는 입장 하에 피해자들이 수명을 다하여 그 목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끌고만 있습니다. 우리 사회 역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할린 한인에 대하여 문제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많은 분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사회적 여론을 환기하여 이 문제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위로금 소송과 같은 소송상의 문제해결에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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