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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교육 - (10)< 인기와 저명도에도 부익부, 빈익빈 >
김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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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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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오 /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 김삼오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이 글 연재에서 저명성에 대하여 또 한 번 다루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제가 저명성 한풀이를 하는 건가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전혀 아닙니다. 중고등학교 때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았다는 수재들의 이야기가 흔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면서도 이상하게 공부와 책을 좋아했습니다.
대학교 때는 전공인 정치학과 학점과는 무관한 영문학과 경제학 등 다른 과 강의실을 들락거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담이지만 김준엽 교수(전 고려대학교 총장)의 동양철학사 강의도 들었었는데 그의 젊고 부드러우며 학자다운 인상을 지금도 떠오르게 됩니다.

뭐든 한 우물을 파고, 예컨대 고시 등 빨리 시험에 빨리 합격하고 빨리 승진하여 이름을 떨쳐야 하는 건데 그런 모양새였고, 스포츠나 예능에는 탁월한 게 없었으니 출세와 저명성하고는 아예 담을 쌓은 거지요.

인문사회학 이론 가운데 독일 학자 노엘 노이만 (Elizabeth Noelle-Neumann)의 ‘침묵의 나선형(Spiral of silence theory)’이라는 게 있습니다. 영어 spiral은 나선(螺旋)인데 위를 향하여 돌아가며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상태입니다. 가령 inflation spiral이라고 하면 회오리바람처럼 급상승하는 물가입니다.

그럼 침묵의 급상승은 무엇인가요? 어떤 다수의 의견이 득세하고 있을 때는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그와 반대되는 이견 (異見)을 제기하기가 힘듭니다. 왕따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크게 말하는 쪽의 소리는 계속 커지고, 반대로 약한 쪽의 소리는 계속 약해져 완전 침묵으로 묻혀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대부분의 의사 결정 과정이 그런 사례입니다.

유신 시절 직접 경험한 사례입니다. 한 언론사의 회의실. 정부의 언론정책을 규탄했다는 이유로 기자 몇 사람의 처벌을 결정하기 위하여 간부 15명이 모였습니다. 도마에 오른 기자들은 큰 잘못이 없었지만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윗사람의 눈치를 봐서 대세에 역행하여 발언할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회의결과는 불을 보듯 했습니다. 바로 침묵의 나선입니다.

왜곡된 여론, 여론을 빙자한 독재, 신뢰성 없는 지지도의 가능성을 잘 말해 주는 노이만의 이론은 체험을 통하여 우리가 아는 상식입니다. 물론 1984년에 발표된 이 이론은 학술 모델로서 좀 더 정교하기는 합니다.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책

‘침묵의 나선형’을 본떠 저는 ‘저명성의 나선형(Spiral of popularity)’이라는 이론을 만들어 봤습니다. ‘인기의 나선형’이라고 해도 됩니다. 벌써 몇 년 지난 일이지만 한 일본인이 쓴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책-한국, 한국인 비판?’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한국에서 살던 이 무명의 사업가가 일약 뜬 적이 있습니다.

저자가 책의 서문에서 밝힌 대로 “한 신문사 기자의 권고에 따라 기고를 한 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기사가 나간 후 KBS에서 취재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방송 프로에 나간 후 시청자들로부터 전화 세례를 받았답니다. 책을 낸 출판사는 한 신문사의 자회사였는데 이에 힘을 입어 신문은 이 저자와 책에 대하여 여러 번 크게 기사를 냈습니다. 그렇게 되니 다른 간행물과 텔레비전이 경쟁하듯 찾아와 저자에 대하여 보도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신문, 텔레비전, 책, 잡지, 사회연결망(SNS)의 관심 대상이 된 사람은 가파른 인기 상승곡선을 타고, 반대로 그런 바람에서 밀린 사람은 영영 망각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건 유행을 먹고 사는 오늘의 한국 사회의 트렌드입니다.

한국에서 텔레비전에 뻔질나게 나와 잘 알려진 학자, 대중 연설가, 연예인, 전직 모모 인사 등 명사들을 만나보면 흔히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바빠 죽겠는데 모 신문사에서 원고부탁, 또는 모 방송에서 출연 의뢰가 또 왔다는 짜증 섞인 자랑입니다.
이들이 평소 대중을 향하여 쓰는 글과 말을 보고 들어보면 그 정도 내용을 쓰고 말할 사람은 많을 텐데 왜 바빠 주겠다는 인사들에게 굳이 그럴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네임 밸류라고도 불리는 인기 또는 저명성, 상품으로 말하자면 브랜드네임입니다. 그게 있어야 독자와 청취자와 시청자가 많이 따르고 그래야 그 매체에 광고가 많이 붙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명성의 나선형의 주범은 이윤을 좇는 언론인 셈입니다.

언론은 내세우는 공익성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의 사회에서는 기업(말하자면 장사)으로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합니다. 많은 폐단이 거기에서 비롯됩니다. 언론이 공익자금을 받아 운영된다면 그 돈을 대는 정부나 단체의 기관지가 되기 쉬우니 그것도 안 됩니다. 이건 언론(특히 한국 언론)이 영원히 풀지 못할 딜레마입니다.

두 가지 결론과 건의입니다.
▶ 미국 사회학계의 거목이었던 폴 라자스펠드(P. L. Lazarsfeld, 컬럼비아대) 교수는 “당신이 유명하니까 언론에 나오고, 언론에 나오니까 유명하다”는 유명한 말을 반세기도 전에 남겼습니다. 언론이 저명도의 극심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조장하고 있음을 간파한 것입니다.
한국에 와 있으면서 피겨 스케이트의 여왕 김연아 씨가 주요 매체의 광고 지면과 영상을 석권하고 있는 걸 보고 조금은 놀랐습니다. 그의 지명도는 의당 세계동계올림픽에서 개인으로서 보인 탁월한 재능과 실적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매체, 특히 텔레비전의 경쟁적인 보도 없이 그의 브랜드가 그렇게 선풍적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지자체와 대학행사에 나가 한 번에 상상 외의 출연료를 받는다는 몇 안 되는 인기 절정인 연예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재화의 부익부 빈익빈이 그렇듯 인기의 부익부 빈익빈 또한 사회 불의의 온상이 되고 있어 시정과 조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그 불합리한 인기의 상승곡선에 끼어들려는 철없는 젊은이의 성 상납까지 받는 사회 비리가 더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언론 제작자는 인기의 기회를 몇 사람이 독식하지 않도록 좀 더 공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 어느 나라에서나 매체는 보수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은 거의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알려진 이유가 있습니다. 거기다가 저 나름대로의 한 가지를 추가하고자 합니다. 바로 저명성의 나선형입니다. 언론이 이미 저명성의 고지를 점령한 인사를 골라서 먼저 불러주니 그렇게 안 되겠습니까? 그 결과 우리는 여야, 보수와 진보, 남녀노소 어느 쪽이든 배부르고 등 따스운 인사들의 듣던 소리와 의견만을 더 듣고 읽게 됩니다. 잘 듣지 못하던 새로운 의견은 듣기 힘듭니다. 의견의 다양성을 위하여서도 인기의 나선형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습니다. (경기도 안산 寓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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