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윤주 / 뉴스코리아 부사장, 편집국장 ]

▲ 최윤주 뉴스코리아 부사장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떠난 이별고개~”
부모님 세대가 콧노래로 “한많~은~ 미아~리~고~개~”는 읊조리던 이 노래는 전쟁의 폐허 속에 쓸쓸히 남겨진 이들의 가슴을 눈물로 위로하던 불후의 명곡이다.

전쟁 직후인 1956년 발표된 이 노래의 가사는 매우 직설적이고 구체적이다. 1절에서는 화약연기 자욱할 때 철사줄로 두 손을 묶이고 맨발로 다리를 절면서 뒤를 자꾸만 돌아보며 북한으로 끌려가는 남편의 모습을 묘사했고, 2절에서는 감옥살이하는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애끓는 부인의 마음을 담고 있다.

애절한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만큼 제목부터 남다르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전쟁의 비극과 가족을 잃은 슬픔을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라는 뜻의 ‘단장’에 비유해 제목만 들어도 심장이 아리고 쓰리게 만든다.
단장(斷腸). 이 말의 유래는 진나라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온이 촉나라를 치기 위해 양자강 계곡을 배로 지날 때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를 잡아 배에 태웠다. 자식을 빼앗긴 어미는 배를 따라 강기슭을 위태롭게 달리며 비통한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얼마를 달렸을까. 배가 강어귀에 가까워지자 어미 원숭이는 몸을 날려 배 위로 뛰어 오르는데 성공하지만 이내 죽고 말았다. 배 안의 사람들이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가르자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어미 원숭이의 창자를 모두 끊어낸 것이다.

이후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슬픔을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에 비유하여 ‘단장’이라 일컫는다. 어디 그 아픔이 창자만 끊어지는 정도이겠는가. 혹자는 이 슬픔을 혼이나 넋 조차 끊어내는 아픔이라 하여 단혼(斷魂)이라고도 부른다.

유교문화권에서는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아픔을 ‘참척(慘慽)’이라 했다. 그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슬픔,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슬픔이라는 뜻이다. 부모의 사망을 ‘천붕’이라 하여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에 비유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 문학 최고의 유산으로 평가되는 고 박완서 작가가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주었지만 88올림픽이 그대로 열린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울분을 토한 것도 이 참척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스물여섯의 아들을 사고로 잃었다.

“참척을 당한 어미에게 하는 조의는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일지라도 모진 고문이고 견디기 어려운 수모”라고 했던 박완서 작가의 절규는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을 바라보는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위로 조차 모진 고문인 유족들이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KBS로, 청와대로, 국회로 쫓아다니고 있다. 꽃이 피고 지는 것도,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학교를 바라만 보는 것도, 때가 되면 배가 고파오는 허기도, 숨을 쉬고 있는 것까지도 고통스럽게 느껴질 부모들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모질게도 단장의 아픔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할 국정조사 계획서가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주요증인을 명시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의 의견이 갈렸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참관하려고 했던 본회의는 아예 열리지도 못했다.
가족들이 또다시 오열한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또다시 눈물로 호소하고 분노로 항의한다.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아이들을 살려달라”며 매달렸던 팽목항에서의 그 날처럼 “진상규명’을 요구한다.

참척조차 누릴 수 없는 부모들의 뜨겁고 깊은 분노는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가. 단장의 아픔에 공권력을 동원하고, 진상규명요구에 정치관행이라는 핑계를 대고, 국민의 울분에 종북의 올가미를 씌우는 이 정부의 패륜이 참담하고 비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