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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권의 위안부 문제 태도 변화
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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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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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춘 / 전 외신기자클럽 회장 ]

 

   
▲ 황경춘 전 외신기자클럽 회장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晉三) 정부는 전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종래 정책의 잘못을 깨닫고 한국과 미국이 납득할 수 있는 새로운 해결책을 조용히 모색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제도의 존재는 시인하면서, 군이나 정부가 개입한 ‘강제성’은 없었다는 것이 종래 견지해 온 공식 태도였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역대 정권이 답습해 온 1992년의 ‘고노담화(河野談話)’ 정신을 부정하려는 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 위안부 문제의 강경 태도로 아베 정권 수립 후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돼,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수뇌회담은 아직껏 실현되지 못하고 있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며, 두 나라의 맹방(盟邦)인 미국까지가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아베 정권은 고노담화의 ‘검증’을 위해 5인 위원회를 만들어 작업을 시작하여, 그 결과를 국회를 통해 국민에게 알리겠다고 했습니다. 결과에 따라 새로운 담화를 낼 기세였습니다. 이러한 아베 정권의 움직임은 야당을 비롯한 일부 언론을 크게 자극하여 반대 여론이 날로 높아졌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아베 정권의 새로운 정책은 일본 국내뿐 아니라 한국 등 외국 여론까지 악화시켜 이 문제에 관한한 일본 정부를 완전 고립시켜, 아베 정권을 난처한 입장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세불리(勢不利)함을 자각한 아베 정권은 드디어 국회에서 고노담화를 부인하거나 새로운 담화를 낼 생각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외무성의 초대 정보조사국장을 지내고 지금은 일본 보수진영을 대변하는 외교 평론가인 오카사키 히사히코(岡崎久彦) 씨는 이러한 아베 정권의 위안부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변명을 펴지 않는 편이 낫다고 충고했습니다.

일본 최대 월간 대중잡지인 분게이슌주(文藝春秋)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고노 관방장관 밑에서 차관을 지낸 이시하라 노부오(石原信雄) 씨가 국회에서 고노담화가 나온 뒷얘기를 설명한 데 대한 질문을 받자, 오카사키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의 미국 의회, 특히 여성 의원들은 매춘(賣春) 그 자체가 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시대의 매춘도 다 악입니다 일본 정부가 신경을 쓰는 <강제성 유무>와는 관계없이, 전연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정부가 시설을 제공했다는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는 미국 전 국무부장관(副長官)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씨가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고립무원(孤立無援)으로 승산이 없으니 꺼내지 말라.”고 충고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요는 지금의 미국 여성이 이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의 문제를 생각해 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해 아베 정권이 한 발짝 후퇴한 데에는 이러한 외부 여론과 일부 일본 지식층의 끈질긴 반발이 있었기 때문으로, 아베 정권도 이 문제에 관한 한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다고 자인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매춘 역사 뿌리는 짐작보다 길어, 매춘에 관한 한 일본 문화는 상당히 관용(寬容)적이었습니다. 수도 도쿄의 일곽에 불야성(不夜城)을 이룬 환락가 요시하라(吉原)는 정부가 승인한 유곽(遊廓)으로 그 역사는 17세기의 에도바쿠후(江戶幕府) 초기로 거슬로 올라갑니다.

일본의 패전으로 새로운 민주 정부가 들어서 유곽 제도가 없어진 후에도, 이 일대는 이른바 풍속영업(風俗營業)이라 불리는 접객업소가 그 뒤를 이어 도쿄의 관광 명소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유곽은 에도뿐 아니라 일본 간선 도로를 중심으로 각지에 산재하여 일본문화의 일부로 발달하여 왔습니다. 일본의 이 제도가 20세기에 들어서 새롭게 식민지로 편입된 타이완(臺灣), 조선반도 및 만주 등에 진출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1950년대 초에 일본 옛이야기를 각색한 영화 ‘우게쓰 모노가타리(雨月物語)’가 16세기 일본 유곽제도를 처음으로 해외에 소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명감독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영화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는 등 많은 영화상을 받았습니다.

일본 전국(戰國)시대의 한 백성이 전쟁에서 공을 세워 사무라이로 등용되어 의기양양하게 고향을 찾아가는 도중에 들른 유곽에서 창녀로 변신한 자기 마누라를 만나는 줄거리의 이 영화는, 그 험악한 전국시대의 혼란 속에 번창한 창녀 생활을 잘 그린 수작입니다.

공교롭게도 거의 같은 시대에 또 하나의 명장(名匠)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가 현대문명의 영향으로 서서히 사라져 가는 일본 가족제도 전통을 그려 국내외서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이 두 영화가 지금도 일본 영화 팬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두 영화의 아주 대조적인 소재 때문입니다.

아베 정권도 이제는 구린 곳을 고식적으로 막으려는 좁은 생각을 버리고 더 솔직하고 너그러운 대승적(大乘的) 견지에서 국정을 운영하려는 기미가 엿보입니다. 일본의 생명줄인 미일안보조약도 험악한 한일관계 풍토에서는 제구실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라 생각하고, 아베 정권의 더욱 성숙한 외교 자세를 바랍니다.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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