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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교육 - (14)대학과 언론이 정계 진출의 발판이 된다면
김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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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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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오 /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 김삼오 /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이번 글은 대부분 과거 신문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일부 추가와 수정, 그리고 업데이트(update)를 했습니다. 영어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표현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양해 비슷한 말을 하자니 서글퍼집니다. 왜일까요?
그간 저도 한 예로 가수 이미자 씨의 ‘동백꽃 아가씨’를 이래저래 여러 번 들었습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한국의 대중이야 더 말할 것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오지 “아이고 식상하네”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양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벌써 몇 십 번 들은 유명 테너가 부르는 오페라의 아리아가 끝나면 공연장은 언제나 흥분의 도가니로 바뀝니다. 그런데 왜 잘 하든 못하든 비싼 공부를 하고 머리를 쥐어 짜 쓴 칼럼은 두 번만 실려도 “아이고 한번 실렸던 글이네”일까요?

가무를 즐기는 민족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나온 잘못된 한국사회의 실체와 그 대안을 논하는 글과 말의 양은 과연 기록적이었습니다. 제가 볼 때 그러나 해법은 그렇게 거창한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말만 있을 뿐 옳고 가장 필요한 일에 머리를 쓰기 싫어하는데 있습니다. 고(故)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민족이야 나라가 산다”고 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신라시대 때부터 가무(歌舞)를 즐겼던 민족입니다. 노래는 감미롭지요. 하지만 사회문제를 해결하자면 국민들이 먼저 사회를 깊이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하여 재미가 없어도 읽고 생각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적폐(積弊)의 대명사가 된 ‘세월호’의 뿌리는 바로 안일한 국민에게 있습니다. 서론을 이 정도로 마치고 글의 본체로 가겠습니다.

누군가 과거 자료를 모아 조사. 연구를 하면 확인되겠지만, 한국에서처럼 역대 정권의 국회의원, 고위 행정 각료, 고위 기관장과 단체장직에 학자와 언론인이 많이 등용(?)된 나라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혹자 왈, 그거야 이들 학자와 언론인의 지식과 경륜이 뛰어나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특히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학자와 언론인은 뛰어나지 못해 한 길을 걷는 것일까요? 당연히 아닐 것입니다.

학자와 언론인이 정계와 관계(官界)에 들어가는 것이 왜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요? 같은 전문직 가운데서도 학자와 언론인의 역할과 책임은 특별합니다. 사회가 나갈 길을 밝히고 정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들이 권력에 맛을 들이는 순간 그런 숭고한 역할과 책임과 이상은 증발하고 맙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정부는 권력에 비판적인 인사를 밖에서 영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관료나 직업 정치인이 아닌 사람이 제도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쪽을 향하여 기웃거리고 추파를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부터가 벌써 그들의 책임과 본분을 망각하고 언론의 독립을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학자나 언론인 가운데 정부나 재벌의 장학생이 많다고 하지 않던가요. 해방 후 한 때와 는 달리 전문인력이 모자라 학자와 언론인을 정관계로 모셔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 분야에는 전문성은 풍부한데 도덕성 부재가 아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의 대학교수와 언론인의 대거 정계와 관계 진출은 과거의 비정상적인 정권교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때 비정상적인 교체란 넓은 국민의 기반을 갖지 못한 정권의 탄생이란 뜻입니다. 5.16에 따라 탄생한 박정희 정권, 12.12후 전두환 정권, 3당 합작이란 정치적 편의 결과물인 노태우 정권이 대표적입니다.
불법 또는 부당한 수단으로 정권을 장악한 정부는 그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먼저 큰 ‘당근’으로 지식인과 언론인을 장악해야 합니다. 이들에게 파격적인 기회가 주어진 이유입니다. 그런 달콤한 기회는 기회주의 정치교수와 정치 언론인의 양산으로 이어졌습니다.

나쁜 선례가 전통이 되면 고치기 어렵습니다. 김영삼과 김대중과 그 후 문민정부들은 비교적 자유스런 선거에 의하여 수립됐지만, 그 정권 아래 ‘똑똑한’ 학자와 언론인의 발탁은 여전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이들이 학원과 언론계에 남아 독립적이고 양심적인 목소리를 일관되게 내주었더라면 관료 마피아와 총체적 비리가 원인이었다는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관피아와 비리는 제재할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불의와 사회악을 막을 책임을 진 지식인 집단의 안일과 타락 때문에 이때까지 활개를 처 왔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교수와 정치 언론인 이야기는 과거지사가 아닙니다. 현 박근헤 정권에 와서도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습니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참 혼란스럽습니다. 어제까지 화면에 뻔질나게 나와 낯익은 앵커가 어느새 변신하여 오늘은 정부나 정당의 대변인 아니면 무슨 무슨 장관과 국회의원으로 같은 화면에 나타나는 기현상입니다. 교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한통속이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나마 청문회라도 있으니

문창극 총리 후보가 낙마한 것은 개인으로 봐서는 억울하고 불행한 일입니다. 그 많은 선배들이 언론사를 발판으로 정치와 관료사회에 들어가 떵떵거리고 있고 한번 고위직을 하고 나오면 일생 ‘거물’로 행세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나라 전체로 봐서는 잘 된 일입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어디 있느냐고 너그럽게 말하는 논객들이 있습니다. 인사청문회제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쌓인 먼지를 그대로 두고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보다 앞선 영미사회에서도 ‘정치는 더럽다’(Politics is dirty)며 정치인들을 지탄합니다. 학자와 언론인이 거기에 들어가 판을 바꾼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보다 학자는 연구 활동을 통해 올바른 대안 제시를, 언론인은 환경감시를 올바르게 하는 게 나라를 잘 위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특히 이른바 학자가 제자와 같은 나이의 정치인들이 호통을 치는 인사청문회에 앞에서 쩔쩔 매는 장면을 보는 것은 참 딱합니다. 대학의 권위는 어디로 사라진 건가요.

대학과 언론이 정치 지망생들의 지름길이 되는 나라라면 앞으로 세월호는 몇 번이고 일어날 것입니다. 학자와 언론인이 정치와 관직을 탐내는 것을 법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국민의 의식이 관건입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든 고위직을 차지하면 관운이 있다고 부러워하는 사회풍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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