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필 ㅣ 미주중앙일보 사회부장

2009년 7월 연방상원의 소니아 소토마이어 대법관 후보 인사청문회장. 미국 최초의 히스패닉계 대법관 탄생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공화당은 소토마이어 후보가 진보성향인데다 집권 초기였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인사 정책에도 흠집을 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소토마이어 후보의 과거 발언이었다. 소토마이어 후보는 히스패닉계 법대생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현명한 히스패닉 여성이 백인 남성보다 더 좋은 결론을 내린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공화당 측은 호재라고 생각했다.

공격하는 측에선 '인종편견'이라는 여론을 기대했겠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소토마이어 후보는 '경험이 풍부한 히스패닉 여성이 경험이 없는 백인 남성 보다 더 좋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로 '소수계들이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의미로 한 말'이라고 밝혔다.

그의 적극적인 해명에 발언 논란은 곧 사그러 들었다. 대신 청문회의 포커스는 그의 법 철학과 낙태, 총기규제 등 주요 이슈들에 관한 검증에 맞춰졌다.

청문회는 국민들이 고위 공직자 후보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기회다. 청문회 과정을 통해 후보자의 자질이 드러나고 정책 비전이 공개된다. 임명은 대통령이 하지만 국민의 신임을 묻는 과정인 셈이다.

특히 미국의 인사 검증 시스템은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연방수사기관에 지원했던 한 후배는 속된 말로 사돈의 팔촌까지 뒷조사를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하물며 고위공직자 후보의 검증 과정은 어떨까 짐작이 가는 일이다. 청문회 대상자는 장·차관과 대사, 대법관, 독립규제위원회 위원장 등 법률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후보자 임명 전에 백악관은 물론 공직자윤리위원회, 연방수사국(FBI)과 국세청(IRS)까지 나서 샅샅히 주변을 뒤진다고 한다. 직무와 관련된 과거경력은 물론 재산 형성 과정과 사생활까지도 대상이다. 그러다 보니 청문회 과정에서 비리가 드러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한국의 청문회는 조금 다른 모습인 듯 하다. 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후보자들의 비리가 먼저 흘러나오고 '낙마 대상자'의 꼬리표가 붙는다. 직책 수행 능력에 대한 평가를 해 보기도 전에 발목이 잡히는 셈이다. 사실 낙마자들의 비리 리스트를 보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이긴 하다. 이런 인물이 고위공자가 되면 큰 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녀를 명문학군 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한 위장전입부터 병역문제,부동산투기, 탈세, 논문표절 등 참으로 다양하다.

사전에 철저한 검증작업이 이루어질텐데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다. 혹시 내용을 알면서도 검증 과정에서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혹시라도 그렇다면 그들의 비리 리스트는 한국사회 전반에 만연된 현상이라는 얘기다. 한 지인은 "자신이 고위직에 오를줄 알았었다면 그런 짓을 했겠어. 조금은 몸조심을 했겠지. 힘있고 돈있고 정보력까지 있는데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을거야" 라고 꼬집기도 한다.

요즘 일부 인사들의 행태를 보면 한인사회에도 최소한의 자질 검증 과정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모 단체에서 공금사용 의혹으로 물러났던 인물이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른 단체로 무대를 옮기고, 단체장까지 역임했던 인물이 성추행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커뮤니티 재산인 LA한인회관의 운영을 맡고 있는 관리재단은 이사들의 자리 욕심으로 여전히 파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