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충무공＝이순신’이지만 정작 충무공이라는 시호는 가장 어렵게, 가장 늦게, 죽은 후에야 받았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세자의 시찰도 ‘전쟁이 급하다’며 무시했고 ‘남해의 왕’으로 백성들의 신망을 받았던 이순신은 선조에게 시종 두렵고 껄끄러운 존재였다. 선조 때 이순신이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녹훈되는 데 그친 이유다. 이순신이 ‘충무(忠武)’의 시호를 받은 것은 사후 45년이 지난 1643년(인조 21년)의 일이다. 세 개의 시호(삼망: 三望)를 먼저 선정한 뒤 그중 가장 적당한 것을 골랐는데 이순신에게는 충무(忠武), 충장(忠壯), 무목(武穆)이 삼망으로 논의됐다. ‘일신의 위험을 마다 않고 임금을 받들어’(忠), ‘적의 창끝을 꺾어 나라를 구했으며’(武), ‘적을 무찔러 전란을 평정하였고’(壯), ‘덕을 펼쳐 의를 지켰다’(穆)는 점들을 집중 부각한 것이다. 이 중 가장 격이 높은 것이 바로 ‘충무’의 시호다.

이순신 외에도 조선에서 충무공 시호를 받은 이는 8명이다. 개국공신 조영무,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이준과 남이, 진주대첩의 김시민, 임진왜란에 종군한 김응하, 인조반정 공신 구인후, 이괄의 난을 평정한 정충신과 이수일이 그들이다. 임금에 대한 충(忠)보다는 백성에 대한 충(忠)을 앞세웠고 죽음을 불사하고 할 말은 했던 이순신. 철저한 소명 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직책과 역할에서 누구보다 유능했던 이순신. 한국의 관료 집단이 이순신만 제대로 배웠어도 ‘관피아 척결’의 광풍을 맞지는 않았을 텐데…. 새삼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