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철 / 논설위원

▲ 백영철 논설위원

중세 유럽에 페스트가 돌았다. 성직자는 존경받고 있었다. 하느님의 뜻에 충실한 이 성직자는 주민을 교회에 모아 기도를 올리게 했다. “악령을 쫓아내 달라”고. 페스트는 신도들 사이로 삽시간에 퍼졌다. 동네에 의사가 있었다. 그는 미혼이면서 유부녀와 만나고 있었다. 주민들에게서 “타락했다”고 비난 받고 있었다. 의사는 기도 대신 격리치료에 나섰다. 20세기의 지성 버트런드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저서에서 묻는다. 훌륭한 삶을 산 사람은 누구인가?

러셀은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라고 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성공한 사람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 돼라”고 했다. 두 사람은 의미 있는 인격의 완성에 방점을 찍는다. 마크 트웨인은 역설적이다. “인생에 필요한 것은 무지와 확신이다. 그러면 성공은 확실하다.” 빌 코스비는 한술 더 뜬다. “나는 성공의 열쇠는 모르지만 실패의 열쇠는 알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지 말라!”

빌 코스비(77)는 미국 코미디계의 전설이다. 1965년 흑인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전역으로 방송된 TV드라마 주인공이 됐다. 인종갈등이 극심하던 시절에 3년 연속 에미상 최우수 남자주연상을 받았다. 1984년 첫 전파를 탄 ‘코스비 가족’은 지적이면서도 가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다지게 했다. 8년이나 장수한 이 프로그램은 한국 안방에서도 전파를 탔다. 지금의 50, 60대는 코스비라는 거울을 통해 미국에 대한 환상을 봤다.

무대 밖 삶도 존경받을 만했다. 무대 위의 바쁜 일상 속에서도 교육학 박사학위를 따고 많은 명예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기부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자신과 부인 이름을 딴 재단을 세워 장학사업을 펼쳤다. 한 여대에 흑인으로선 가장 큰 액수인 약 220억원을 내놓았다. 10여년 전에는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메달을 받았다. 이 메달은 “미국 사회에서 그만 한 거인은 없었다”는 최고의 칭송이다.

그랬던 코스비가 한순간에 추락하고 있다. 30∼50년 전 배우 지망생 등에게 가한 성폭행 의혹이 속속 공개되면서다. 화려한 성공 뒤에 감춰져 있던 과거의 모습은 추악하다. 코스비는 말한다. “사람의 과거는 결코 지워지지 않으며, 사람은 겉모습이나 평판만 봐서 안 된다”는 교훈을. 특히 한국에서 장관이나 국무총리를 하려는 야심가들에게,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