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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의 신바람에 매료된 탱고의 열정
손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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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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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혜현 /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초빙연구원]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신바람 난다’ ‘신명 난다’라는 표현을 즐겨 써왔다. 외세의 침입과 전쟁으로 초토화 됐던 나라가 60년이라는 최단기간에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억울하고, 서럽고, 고단하고, 잘못된 것을 풀어내며 살아왔던 민족의 생활정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풀이, 원풀이, 기분풀이 그리고 심심풀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한민족은 삶 속에서 시련은 물론 여가까지도 풀어내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그리고 어디에서나 너댓명만 모이면 춤과 노래가 빠지지 않는다. 아마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민족은 한국인 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듯 한국인들은 원래 흥이 많고 놀기 좋아하는 민족이다. 분명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는 ‘신명’이 숨어 있음이 틀림없다.

그 동안 우리 안에만 가둬두었던 민족의 ‘신명’이 K-pop열풍을 타고 이웃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시작하여 유럽과 미주를 거쳐 드디어 한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남미의 아르헨티나에까지 도달했다. 한류가 지구를 한 바퀴 돈 셈이다. 이제 전 세계가 수천 년 동안 갈고 닦은 한민족의 ‘신바람’에 따라 어깨가 덩실덩실 그리고 엉덩이가 들썩들썩 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 마르셀로 띠넬리가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를 가지고 경연에 참여한 자신의 사촌과 인터뷰하고 있다.(왼쪽) 스튜디오에 가득 찬 한국인들을 보고 마치 서울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놀라는 진행자 마르셀로 띠넬리가 아르헨티나 프로축구팀 유니폼을 입은 한국 청년과 인텨부 하고 있다. (오른쪽) ⓒ eltrecetv.com

최근 아르헨티나 내 최대부수를 자랑하는 끌라린(Clarín)과 라나시온(La Nación)지가 K-pop 열풍을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지상파 방송에서는 지난 11월 25일 아르헨티나 시청률 1위 예능프로인 쇼매치(Showmatch)에서 K-pop을 주제로 한 댄스경합이 4회 연속 방송되었다. 이 방송에서는 전문 무용수들이 보여주는 댄스뿐만 아니라 K-pop 팬들도 그동안 갈고 닦은 솜씨를 뽐냈다. 이들은 춤과 노래를 통해서 K-pop이 무엇인지 무대에서 직접 보여주었다. 또한 한국의 음식과 한국문화를 소개하면서 깊은 호감과 애정을 표시했다. 방송진행자와 관계자들은 K-pop 팬들이 흥에 겨워 공연자의 춤과 노래를 똑같이 따라하자 흥미로워 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이자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연예인인 마르셀로 띠넬리(Marcelo Tinelli)가 K-pop을 특집 주제로 선정한 데에는 아르헨티나에서의 K-pop의 성장 가능성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K-pop댄스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는 현지인 팬들로 구성된 남성그룹(왼쪽)과 한국 교포 2세 여항생(오른쪽)의 모습. ⓒ eltrecetv.com
2008년부터 아르헨티나에 알려지기 시작한 K-pop은 2012년 전세계를 ‘말춤’으로 열광시켰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소개된 이후 팬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현재에는 2만 명의 팬을 확보하고 있다. 슈퍼주니어와 샤이니의 두 차례 현지 리사이틀이 이루어진 이후 분산되었던 팬클럽 활동이 조직화 되었다. 2011년 6월에 조직된 K-pop 아르헨티나(KPOP Argentina)는 SNS를 통해서 플래쉬몹(flashmob)을 조직하고 한국문화를 전파하는 데 구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팬들이 보다 쉽게 K-pop과 한국문화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함은 물론 동시에 한국인들이 아르헨티나의 고유한 문화에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문화를 통해서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결합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앞으로 5년 10년 후엔 보다 조직적으로 성장하여 양국가간 문화교류의 다리가 되어줄 탄탄한 조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K-pop의 확산에는 민관차원에서의 지원과 노력도 큰 몫을 했다. 주 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에서는 2010년부터 매년 Concurso KPOP Latinoamérica를 개최하고 있으며, 올해 열린 5회 대회에는 중남미 15개국에서 73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대회로 발전했다. 교민사회 차원에서도 비영리 단체인 “모임 소리”가 ‘서울에서 하루를’이라는 타이틀로 K-pop 경연은 물론 K-pop팬들이 마치 서울에서 하루를 보내듯이 한국음식을 먹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보고 노래방에서 노래도 하고, 한글과 서예 그리고 고전무용도 배우는 문화체험의 기회를 열었다. 특히 K-pop 경연대회인 아리랑 콘서트는 올해로 5회째를 맞이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참여자들의 수와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의K-pop의 선풍적인 인기몰이는 큰 의미가 있다. 탱고와 축구로 잘 알려진 아르헨티나는 문화적 자부심이 상당히 큰 나라이다. 따라서 문화수용에 있어서 상당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특징이 있다. 특히 아시아 문화는 아직까지도 일본문화를 제외하고는 이들에게 매우 생소하다. 그러나 세계화와 기술의 발전으로 음악은 물론 다른 문화적 산물들을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K-pop과 한국문화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능숙한 젊은이들 사이로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K-pop의 주된 연령층은 15세에서 25세의 젊은이들이다. 왜 이들은 K-pop에 매료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로는 70-80년대 국민록 이후 아르헨티나에는 젊은이들이 소비할만한 이렇다 할 음악장르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힙합, R&B, 일렉트로닉스 등의 서양의 대중음악 리듬에 기초를 두고 있으면서도 상당히 독특하고 강렬한 한국적 요소가 혼합된 K-pop이 그 틈새시장에 재빠르게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K-pop 열풍에 대한 현지사회의 평가는 소비대상인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에게서도 매우 긍정적이고 고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음악은 청소년들의 사고와 성격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학업과 일상의 스트레스와 삶의 단조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아르헨티나의 젊은이들에게 K-pop은 정신적 해소장치가 되고 있고 성공을 위한 노력과 열정,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는 인내와 끈기, 사람에 대한 예의, 철저한 자기관리 등과 같은 한국적 정서가 큰 교훈이 되고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국가들에서는 젊은이들이 마약과 범죄에 노출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노래와 춤을 통해 교류하고 소통하는 K-pop 현상은 마땅한 오락거리가 없는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에게 매우 건전하고 건강한 놀이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개인주의와 사적 공간에 익숙한 아르헨티나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많은 멤버들 간의 협력과 화합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K-pop의 집단주의는 인상적이다. 번개로 SNS를 통해서 시간과 장소가 공지되면, 수 백 명의 K-pop 팬들이 모여서 음악에 맞춰 일사 분란하게 동작을 따라 하면서 그들만의 작은 축제를 즐긴다. 한국의 아이돌 팬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팬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오빠~”라고 함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스타에 대해 얘기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과도 쉽게 친해지고, 우정도 쌓는다. 가수와 팬들이 공감하고 함께 춤추는 집단적 행위는 아르헨티나에서는 매우 흥미롭고 낯선 광경이다.

K-pop 열풍은 아르헨티나 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상강화와 한인사회의 이미지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K-pop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르헨티나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높아졌다. 이들은 가사를 이해하기 위해 한글을 배우고, 한국의 음식, 전통문화 그리고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 함은 물론 한국여행이 꿈이라고 말한다. 여기서는 흔히 동양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중국인(chino)이라고 하는데, 한국인을 비하하는 이들에게 한국문화의 활동가로 변신한 K-pop 팬들은 한국인과 중국인은 엄연히 다르다고 따끔하게 꼬집어 주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2만 오천 명의 한국교민들은 2만 명씩이나 되는 수호천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10년에서 15년 후에는 K-pop 팬들은 분명 이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고, 이들은 아르헨티나 각계각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K-pop은 가장 효율적으로 지한파를 만드는 방법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은 상당한 잠재적 외교자산을 갖게 되는 것이다.

   
▲ K-pop Flanshmob.
K-pop의 열풍은 아르헨티나의 한국어교육 수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들어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현지인들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문화원 이종률 원장에 따르면 2009년 30명에 불과했던 한국어강좌 수강생의 수는 현재 600명으로 증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8월에는 아르헨티나 최초로 뚜꾸만 주의 쁘레센따시온 데 말리아(Colegio Presentación de Maria) 학교에서 한국어가 정규교과목으로 채택되었다. 그 외에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의 Tecnica학교에서도 비록 방과 후 특별 반 수업이긴 하지만, 주당 4시간씩 20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K-pop이 문화수용에 있어서 보수적인 아르헨티나 사회의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힘은 단지 빠른 리듬과 현란한 댄스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민족 고유의 정서와 문화가 갖는 매력이 큰 이유이다. K-pop이 서양의 다른 대중음악과 다른 점은 관객들과의 소통과 호응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데 있다. 마치 대화를 하듯 가수는 끊임없이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고 이에 대한 답으로 관객들은 열심히 응원을 보내면서 가수와 관객은 함께 놀고 해소한다. 이러한 놀이방법은 다른 나라의 대중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대중음악만의 독특함 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한국문화가 가진 고유성으로부터 기인한다.

열정적인 탱고는 지켜보는 관객의 마음을 빼앗을 수는 있지만, K-pop처럼 무대 위의 주인공과 관객이 함께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관객을 능동적인 참여자로 만들지는 않는다. 지켜보는 관객의 어깨를 덩실거리게 하고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힘은 바로 한민족의 ‘신바람’문화에 있다. 요즘 이곳 아르헨티나에서는 탱고의 ‘열정’이 K-pop의 ‘신바람’을 타고 함께 춤추고 노래하면서 노는 ‘우리 식 놀이’에 흠뻑 취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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