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 김삼오/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제가 사는 호주 시드니의 교포매체의 사례를 가지고 말한다면 ‘독자의 편지’ 난의 부재는 세계 한인 매체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해봅니다.

해방 전에 떠난 중국, 일본, 러시아의 한인과 그 후손들을 빼고는 현재 가장 큰 해외 한인사회는 미국에 있고 다음 캐나다, 호주, 영국, 남미 국가 순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여러 번 가봐서 아는데 영국 런던은의 교포매체의 경우는 시드니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을 것은 없어 보입니다
매체는 많으나 글을 써오는 독자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해를 일으킬 발언입니다. 어느 지역에서나 교포신문을 집어 펴보면 ‘독자 기고가 많은데 왜 없다고 하는가?’ ‘독자의 편지는 독자의 기고와 뭐가 다른가?’ 등입니다.

이 점을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독자의 편지’는 서구의 신문이 거의 예외 없이 두고 있는 오피니언 지면(Opinion Pages)의 한 파트인 ‘Letters to the Editor(편집자에 대한 편지) 난’의 우리말입니다. 신문의 1차 기능을 학술용어를 써서 말한다면 환경감시(Surveillance function)가 됩니다. 그저 읽을거리의 제공이 아닙니다.

신문이 자리를 잡은 국가와 지역과 커뮤니티에서 일어나고 있는 잘 못되거나 변화가 필요한 일들에 대하여 지적하고 경고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보도는 그런 기능의 대표적 예입니다.

국제 및 범국가적 차원의 역할을 자처하는 뉴욕타임스나 시드니 모닝헤럴드 등 큰 신문이라면 국내외 경제, 외교, 전쟁과 안보, 자원, 온난화 같은 굵은 분야에서부터 국민의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커뮤니티 신문인 교포신문이라면 그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구성원 간 연대를 조성하는 일에서부터 길거리 쓰레기 치우기까지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분야에서 그런 역할을 합니다(시드니에서 쓰레기 치우는 일은 카운슬에서 하니 일단 잊어버려도 될 것입니다만).

이런 역할은 신문사 자체가 1차적으로 맡아합니다. 그러나 신문은 이미 나간 보도나 주장들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feedback)을 알아봐야 하고, 독자들도 다른 독자의 반응과 의견을 듣고 자기 의견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공익 이슈에 대한 의견 교류가 이어질 때 토론의 광장이 마련됩니다. 이게 ‘독자의 편지’ 난의 존재이유이고 제가 여기에서 그 부재를 걱정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매체 수와 인구가 크게 늘었지만 환경감시 기능은 거꾸로 거의 사라진 게 여기 시드니 한인 커뮤니티의 현실입니다. 다른 나라 한인사회의 매체환경도 그럴 것 같습니다. 신문사의 인력 부족, 광고 수주에 대한 고려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여기 짧은 글에서 다루지 못 합니다. 그럴수록 독자의 편지 난이 중요하다는 점만을 강조합니다.

각 지역 교포신문에는 수필과 시 등 문학 기고가 많습니다. 문인을 대표적 지성인으로 여겨오던 우리 문화의 전통과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문학 작품도 그것대로 역할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자기 고장의 문제에 대한 지적이나 변화를 추구하는 콘텐츠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목회자들의 글도 넘쳐 납니다만 대부분 커뮤니티의 이슈는 멀리 비껴갑니다.

교포사회의 환경감시 목적으로 독자의 편지 난에 쓸 만한 몇 십개 토픽을 생각해낼 수 있습니다. 한두 가지만 예시합니다. 단체주의 사회에서 자란 탓일까요? 해외 1세 한인들은 몇 가구만 모이면 한인회를 만들고 한인회관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게 커뮤니티의 숙원사업이 됩니다.

한인회와 한인회관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그게 전체 커뮤니티의 지적 및 정책의 구심점이 된다는 기대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계적으로 3-400개로 추정되고 있는 한인회가 그런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재외동포정책의 이름으로 고국 정부가 혈세를 써가며 벌이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동포 구성원의 의식구조를 엉뚱한 쪽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같은 중요한 이슈에 대하여 각자 현장 경험을 중심으로 어떤 건설적인 건의나 의견을 표출하는 단 한 건의 ‘독자의 편지’가 눈 씻고 봐도 없다는 말입니다. 해외 소수민족사회는 정신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커뮤니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해외 학자가 있는데 동포사회가 그런 사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