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최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피습사건이 한국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대사는 수술 후 쾌유되어 정상 업무에 복귀했다니 불행 중 다행입니다.

이 사건을 놓고 한국사회에 각 분야 인사들의 논평과 논의가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싶은 키워드(key word) 하나는 ‘한미동맹’입니다. 예컨대 실세 정치인들이 우려한 한미동맹에 미치는 악영향에서부터 시작 불상사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은 굳건하다는 다짐이 그것입니다.

그 다짐은 국정 최고 지도자인 박 대통령의 제1성이었습니다. 중동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곧 바로 병원으로 대사를 찾아 간 자리에서 한 발언도 그랬습니다. 외국 사신에 대한 미안함을 보이는 외교적 제스처라고 할지라도 한미관계의 또 다른 저자세가 아닌가 느껴졌습니다.

우리식 2분법에 따른다면 저도 친미주의자입니다. 미국 유학과 함께 평생 영어를 공부했으며 대부분의 한국인처럼 미국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껄끄러운 평을 하는 것은 제 나름대로의 생각과 고국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이 토론을 위하여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국제정치학의 주요 개념을 거론하겠습니다.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 세력권(sphere of interest),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힘의 공백(power vacuum) 등이 그것입니다.

국가이익이란 무엇인가요? 한미동맹은 미국의 국가이익입니다. 동시에 한국의 국가이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로 동맹을 맺게 된 것 아닙니까. 국익은 의리나 명분 또는 감상이 아닙니다. 1차적 요건은 냉혹한 실리입니다.

미국이 한국에 군대를 보내고 키리졸브 훈련을 한국군과 함께 강행하는 것은 우리의 이익일 뿐 아니라 미국의 이익이기도 합니다. 오늘 21세기 대명천지에 타국의 영토를 날로 침략하는 무모한 나라는 드뭅니다. 그러나 차선책으로 강대국이 약한 나라를 자기 세력권(또는 영향권) 안에 두어 국익을 쫓는 것은 국제정치의 기본입니다.

세력권 형성의 계기는 전쟁의 결과 오는 지역적 힘의 공백, 역사적, 경제적 또는 지리적 이유에서 오는 불가피성 등 여러 가지입니다. 일본과 한국이 전후 미국의 세력권에 들어간 것은 전자의 경우입니다. 나라를 잘 만난다면 세력권 정치는 꼭 나쁜 게 아닙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과 일본 또한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세력권 아래 자주독립국가로 번영을 이룩하였습니다. 속국이 되고 마느냐 자주독립국으로 발전하느냐는 해당 국가의 저력이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전쟁은 물론 2차대전의 일부인 태평양전쟁을 어려서 지켜본 세대입니다. 미국이 그 전쟁과 한국전쟁에 모두 참여 큰 희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이 지역에서 도전을 받는 것을 보면 개인사가 아니지만 억울한 생각이 듭니다. 일본을 패망시키고 그 결과 한반도에 해방이 찾아온 것은 크게는 막강한 미국의 힘과 막대한 희생의 결과가 아니었던가요.

‘노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인’

세력권이 승자의 전리품이라면 구 소련은 참으로 국제적 얌체였습니다. 유럽 전선에서와는 달리 이 ‘북극곰’은 태평양과 극동 지역에서 피 한 방을 흘린 게 없습니다. 일본의 항복 직전에 갑자기 북한에 진주, 그 지역을 공산화하고 자기 세력권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 앞잡이 노릇을 한 게 지금의 이른바 ‘백두 혈통’이 아니었던가요. 구 소련 대신 나타난 중국은 또 다른 얌체입니다.

그 나라는 20세기에 와서는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버렸고 2차대전 중에는 미국의 군사 지원을 받아 간신히 일본의 침략에서부터 벗어났습니다.

저는 이번 피습사건은 굳이 한국사회의 반미주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앞으로 조사 결과에 따라 가해자는 응분의 처벌을 받겠지만, 사건은 오히려 ‘특정인의 행동’(an isolated incident)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의 풍토에서 반미주의가 득세할 수는 없습니다. 야권 유력 대통령 후보로 등장한 문재인 씨가 과거보다 더 미국에 유화적이 된 게 좋은 증거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대통령의 발언은 외교적 제스처로는 좋습니다. 하지만 사사건건 동맹관계에 대한 악영향 운운한다면 앞으로 사드 미사일 배치나 중국이 원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한일관계의 개선 등 많은 현안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을 좀 더 세부적으로 확실히 해둘 일이 많을 터인데 이게 가능하겠나요? 그리고 미군의 주둔 비용의 상당 부분을 감당할 뿐만 아니라 자주 국방을 위하여 매년 천문학적 액수의 무기를 사오는 세계 10위권에 육박하는 경제대국이면서 미군이 철수한다면 나라가 망할 것 같은 공포감에 빠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심리는 누구의 책임일까요?

얼마 전 도쿄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공개 강연에 나선 일본의 아베 총리가 한 말이 가관입니다. 그는 진주만 기습과 태평양전쟁을 이끈 도죠 히데끼 등 일본 정치인을 사형에 처한 도쿄 극동전범재판의 결정을 승자에 의한 단죄라고 말하였습니다.

벌써 한참 전이지만 일본의 정치인이며 소설가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쓴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인’이란 책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아베 총리가 뒤 늦게 이 가르침을 충실히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일까요? 중요한 사실은 이 무모하다고 할까 겁 없는 말 때문에 미일동맹관계가 손상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