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 전 호주국립한국학 연구소 수석연구원, 커뮤니케이션 박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 많이 배운 사람, 아닌 사람 모두 흔하게 입에 올리는 말입니다. 이 말의 기원은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그레샴 경(Thomas Gresham, 1519-1579)입니다. 그래서 그레샴의 법칙이라고도 불립니다. 영어로 하면 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

재무관 시절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영국의 은화인 쉴링(shilling)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고하느라 이 말을 썼습니다.

여왕의 아버지였던 헨리 8세는 통화의 40%를 일반 금속으로 대체해서 제조했습니다. 세금을 늘리지 않고 정부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자 대부분의 상인들은 은으로 된 좋은 쉴링은 감추고 질 나쁜 쉴링만을 유통했습니다. 결국 시장에서는 좋은 은화는 사라지고 나쁜 은화만 남아 유통된 것입니다.

화폐가 그 자체로는 단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종이 조각이 된 오늘날 그레샴의 법칙은 경제와는 무관하게 되었습니다. 악한 세력이 선한 세력을 퇴출시키는 잘못된 사회의 대세를 통탄하느라 쓰는 흔한 말이 된 것이지요.

한국과 한민족에게 문제가 많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문제가 없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무책임한 일입니다. 문제들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합니다. 그걸 종합적으로 다루자면 책 한 권, 아니면 적어도 긴 보고서를 써야 합니다. 그건 풍부한 연구비를 받는 내로라하는 학자들의 몫인데 그런 게 나오는 걸 못 봅니다.

오늘은 행태주의 입장인 사회과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한 가지 단상입니다. 고국과 해외 마찬가지, 오늘 한인이 모여 사는 사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바로 그레샴의 말 대로가 아닌가 합니다. 악한 세력이 선한 세력을 퇴출시켜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가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애국은 빈 말이고 온통 지도자와 사회에 대한 불신뿐이고 너 나 할 것 없이 자리에 올라앉았다면 자기이익 챙기기에 바쁩니다.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내세우지만 모래 위에 쌓은 성 (城)이 될 수 있습니다.

왜 악한 세력은 득세하고 선한 세력은 밀려날까요? 그걸 알면 해법이 보입니다. 대개 악한 세력은 억세고 선한 세력은 여리고 착한 게 한 가지 이유입니다. 사람은 모두 같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지난 시절 경험을 가지고 사례 연구를 해보십시다.

통 큰 사람

한 가지는 배짱입니다. 자동차를 함께 타고 어디를 가는 데 방송으로 기사가 울려 나옵니다. 부동산 투기를 강력하게 억제하겠다는 무시무시한 정부 발표입니다. 승객 중 한 부인의 말이 그럴 듯합니다. “저것 무서워하면 언제 돈 벌어?” 그런 통 큰 사람들이 한국에서 대부분 돈을 벌고 출세를 하였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하면 된다 정신(Can Do Spirit)’입니다. 그 정신이 정당한 의미의 적극성과 자신감, 또는 성취욕이라면 좋은데, 그렇지를 않고 잔꾀를 써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나 일확천금(一攫千金)을 노리는 것이라면 큰일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의 과거가 그래왔다고 봅니다. 물론 대세가 그렇다는 것이지, 착한 사람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과거 군사정권 아래에서 정부와 국영 기업체의 요직으로 옮겨간 많은 고위 장교들이 흔히 하는 불평이 가관이었습니다. “아무개 동기생은 장관 또는 국회의원인데 내가 이것을 해야 하는가?” 대부분 영어를 좀 하는 영관 장교들은 대사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과분한 자리는 사양하는 민족이어야 하는데 반대가 되어버렸습니다. 한국의 인사청문회를 보십시오. 한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전 현직 국무위원 31명 중 22명이 투기, 위장전입, 다운 계약서 등 부동산 의혹에 연루되었었다고 합니다.

편법이 될 수밖에 없는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잘못 된 가치관이 그렇게 만드는 것 아닌가요. 이것을 법에만 맡겨 고칠 수는 없습니다. 기도로도 안 됩니다. 그렇게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사람들에게 빌붙지 말고 뿌리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져야 합니다. 위에서 말한 행태적 입장이란 그런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