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각수/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 · 전 주일대사

최근 이란 핵협상의 기본 틀이 타결되었다. 6월 말까지 세부에 최종 합의해야 하고 미국 의회 설득이 과제로 남아 있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중대한 외교 성과로 평가된다. 제재로 고립되어왔던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미 이라크, 시리아, 헤즈볼라, 하마스로 이어지는 영향권을 구축한 이란의 영향력 확대가 예상된다.

이렇듯이 세계는 지정학적으로나 지경학적으로나 혼돈의 와중에 있다. `지정학의 귀환`이라 할 만큼 우크라이나에서 중동을 거쳐 남·동중국해, 한반도까지 유라시아에서 불안정과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 한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둘러싼 미·중 대립,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중국 주도의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협정의 각축 등 지경학적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불가측성 시대에 진입했다. 이는 유일 초강대국 미국 주도의 질서가 약화되는 가운데 부상하는 중국, 옛 소련 영향권을 보전하려는 러시아, 강한 보통 국가를 지향하는 일본, 통합 추동력을 잃은 위기의 유럽, 인도·브라질 등 약진하는 신흥국 등이 변수로 등장하는 고차방정식의 국제 환경이 대두한 데 기인한다.

한반도가 속한 동북아는 `불가측성의 혼돈` 중심에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세계에서 드물게 다양한 지정학·지경학 지각판이 겹쳐서 전략적 충돌의 위험이 높다. 세계 국내총생산(GDP) 1~3위, 9위, 군사비 1~3위, 8위의 강대국이 포진하고 있다. 또한 핵무장과 군사도발을 멈추지 않는 북한도 동북아의 세력 전환과 겹치면서 우리 외교 환경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최근 AIIB 가입 문제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가 이를 잘 말해준다. 전자는 원가맹국 가입 마감 시한 직전 유럽, 호주와 함께 가입을 결정해 해결되었지만 후자는 현재진행형이다.

미국이 AIIB의 투명성과 지배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운신 폭은 좁았다. 외교에는 이르거나 늦어도 안 되는 적절한 시점이 중요하며, 과하거나 모자라도 안 되는 적절한 대응이 요구된다. 우리 정부의 결정 시점은 가입의 외교 부담을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적절했다. 다만 막대한 아시아 인프라스트럭처 수요에 비추어 AIIB 설립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우리가 유럽 국가들과 함께 미국과 중국이 상호 접점을 찾도록 가교 역할을 모색했다면 성사 여부에 관계없이 우리 외교 공간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사드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한 핵 억지와 관련된 군사적 사안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결정할 문제다. 우선 군사적 필요, 비용 대비 효과, 무기 체계의 완결성,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상 상층 방어와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아직 주한미군 배치 여부와 사드 시스템 내용이 정해지지 않았고, 중국과 러시아의 불만 제기도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섣부른 대응은 금물이다. 물론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이 군사적 필요 충족과 외교적 영향의 최소화를 위한 최대공약수를 찾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적절한 방법으로 언론,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 요구된다.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인 바, 다음 사항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한국은 중견 국가이지만 주변국과의 상대적 격차로 상황지배력에 한계가 있다는 현실 감각을 가져야 한다. 둘째, 한국은 동북아에서의 지정학적 충돌을 역으로 활용해 전략적 가치를 높일 가능성을 부단히 추구해야 한다. 셋째, 국제사회의 연결성 증대로 대부분의 외교 사안이 복잡다기하므로, 겹눈으로 분석하고 전체적(holistic) 관점에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단순명쾌한 해결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넷째, 국제 문제와 국내 문제의 연관성을 고려해 정부 내에서 긴밀히 소통하고 협업하는 가운데 통제와 조정에 신경을 써야 한다. 다섯째, 늘 주인의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외교 사안을 처리해야 하며,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불확실성 시대의 한국 외교에는 도전과 기회가 병존한다. 과도한 피해의식도, 지나친 자신감도 모두 옳지 않다. 차분하게 국익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와 원칙, 그리고 국제법 규범에 입각해 행동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