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 국제부장

전후 체제 탈피하려 상임이사국 진출 집착
과거사 반성 대신 미화 유엔 헌장정신과 배치
사과 통해 거듭난 獨처럼 주변국 마음부터 얻길

▲ 김환기 국제부장

“세계 평화를 위해 공헌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가진 국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일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책임을 다할 용의가 있다.”

일본이 1993년 7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의사를 처음으로 밝힌 안보리 개편 의견서의 내용이다. 당시 집권 자민당의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은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에게 ‘안보리 의석의 형평배분과 확대’라는 제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일본이 제2의 경제대국 위상이 확고했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기대가 컸지만 돌아온 것은 국제사회의 싸늘한 시선이었다. 오다와 유엔주재 대사가 “유엔 회원국 중 일본을 지지하는 국가는 17개국뿐이다. 아시아 국가는 하나도 없다”고 본국에 보고했을 정도였다.

그는 서방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유엔 분담금을 많이 내면서 아무런 권리도 찾지 못하는 바보 국가”라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은 국가의 숙원사업이 된 지 오래다. 올해 10월 유엔 창설 70주년을 계기로 또다시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이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아베 신조 총리 정부를 비롯해 역대 보수 정권이 밀어붙이고 있는 정상국가화(보통국가화)의 주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정상국가화는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한다. 1945년 제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에 승전국인 연합국이 씌운, 평화헌법으로 대표되는 멍에를 벗어던지고 적극적인 외교·군사활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위대의 군대화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 중요한 이유다.

유엔은 일본 등이 일으킨 2차대전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기구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유엔의 리더국가로서 거부권을 갖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일본은 과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이 있는 걸까?

유엔헌장 제1조에 명시된 유엔의 설립 목적은 4가지로 요약된다. 국제 평화 위협의 제거, 국제 분쟁의 조정 및 해결, 인권과 자유의 존중 촉진, 국가 간 우호 관계 발전이다. 유엔 상임이사국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국가의 정체성과 외교·군사 활동이 유엔의 설립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그것도 모범을 보여야 정상이다.

그럼에도 아베의 일본 정부는 교과서 왜곡과 독도 및 센카쿠제도의 영유권에 관해 일방적인 주장을 늘어놓아 주변국과 갈등을 빚는다.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과 난징 대학살의 증거가 명백한데도 애써 눈을 감는다. 이것도 모자라 총리가 전범들을 영웅시하고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이처럼 유엔 헌장의 정신과 정반대 행보를 보이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은커녕 오히려 미화해 주변국과 얼굴을 붉히는 나라가 국제 분쟁과 갈등을 조정할 수 있겠는가. 일본이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모독이며, 국제적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과거사 반성 없이 일본은 결코 세계 지도국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일본은 역사의 치부를 지우거나 수정하는 것을 정상국가로 가는 지름길로 착각하고 있는지 궤도수정을 거부하고 있다.

나치의 전쟁범죄를 진정으로 사과한 독일과 천양지차다. 독일은 과거사의 반성을 통해 정상국가로 다시 태어났다. 2차대전 적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지 않는 배경이다. 일본은 국제사회의 점수를 따기 위해 아프리카 등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은 침략 피해를 본 이웃 국가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 아닐까.

주변국과 화해를 하지 못하면서 국제 평화를 지키는 유엔 상임이사국을 꿈꾸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일본의 정상국가화는 과거사에 대한 참회와 피해국들의 용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라고 했다.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지만, 그 잘못을 고칠 줄 모르는 것이 진짜 잘못이라는 뜻이다. 오늘의 일본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