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종욱 / 워싱턴침례대 교수

북한과 쿠바는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지금 나타난 가장 두드러지게 닮은 점은 가난과 인권유린이다. 세계은행이 추산한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3년 기준 2,010달러로 세계 155위다. 쿠바쪽을 보면 같은 해 세계은행 공식발표지수는 6,985달러로 세계 65위다. 1950년 6.25전쟁 후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 한 북한 동포는 북한전체인구의 30%에 이르는 3백만이 넘으며 지금도 탈북자들이 계속 남쪽으로 넘어오고 있어 그 수는 3만 이상에 이른다.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혁명을 일으킨 후 미국 플로리다주로 피난 온 사람들은 지금까지 약 2백만을 기록했다. 이들이 나라를 떠난 가장 큰 이유는 가난과 인권유린이다.

북한에는 1945년 8.15광복 후 김일성 영도하에 공산주의 국가를 세웠으며 쿠바에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주도한 혁명에 의해 같은 공산주의 체재가 들어섰다. 이들의 체재는 전통적, 세습적 그리고 독재적인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이라는 말은 막스-레닌식 공산주의를, 세습적이라는 말은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김정은의 부자세습과 피델 카스트로→ 레오 카스트로의 형제 세습을, 독재적이라는 말은 수백만의 백성을 굶게 하거나 살해 또는 인권을 유린한 만행을 의미한다.

북한과 쿠바는 소련을 공동의 종주국으로 삼는 한편 미국을 공동의 적으로 삼았다. 미국은 이 두 나라를 ‘악의 4대 축’의 첫 두 나라로 규정하고 ‘용서 못할 철천지원수’로 삼아 왔다. 이 두나라와 미국과의 ‘원수 관계’는 얼핏 보기에는 도저히 무너질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는 원수관계는 인간 사이에도 단체사이에도 그리고 국가사이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리가 이번 미국-쿠바화해 관계에서 입증됐다.

북한과 쿠바는 종주국 소련에 정치 이념만 의존한 것이 아니고 국가 경제도 의존해 왔다. 쿠바는 1962년 소련의 핵무기 기지 건설을 허락하면서 미소관계는 전쟁직전까지 다다랐으나 쿠바의 경제는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 기지건설은 케네디대통령이 취한 소련과의 대결 결단으로 무산됐지만 쿠바는 국가 경제의 80%를 소련에 의존하게 되었다. 당시 국민소득은 10.796달러에 이르러 세계 30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카스트로가 쿠바 내 미국 기업들 재산을 국유화하고 독재적 공산주의를 감행함으로서 경제 사태는 악화됐다.

북한에 공산권을 설립한 김일성은 남한보다 1년 앞서 토지개혁을 감행하여 소작인들이 자기 땅을 갖고 농사를 짓게 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북한 내의 모든 토지들은 국유화됐으며 공산당 관리 하에 국민은 강제노동을 당 해야 했다. 그리고 정권수립 5년 후 1950년 김일성은 소련을 등에 업고 이른바 ‘통일전쟁’을 감행했다. 유엔결의에 의해 미국 등 16개국이 전쟁에 개입했다. 이로 인해 김일성의 통일의 꿈은 사라졌고 나라는 다시 두 동강이 났다. 북한의 경제는 정권세습제도와 소련정권의 붕괴로 인해 국민의 심각한 기아상태를 대면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탈북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지난 1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파나마에서 서로 마주앉아 있는 장면을 보면서 역시 이 세상에 ‘철천지 원수’는 없다는 진리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 라울은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이다. 이날 두 정상이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시티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의 연설이 끝난 뒤 자리를 옮겨 1대1로 대화를 나눈 것이다. 오바마대통령의 말대로 ‘역사적인 만남’이다. 오바마는 “적(敵)과도 손을 잡겠다”고 했다.

미국은 이란과 손잡기 위해 협의를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북한과도 손을 잡지 못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미국과 북한도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마주 앉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남북한이 아무 스스럼없이 만나기를 바란다. 그 길을 미국이 솔선해서 터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소련이 주도했던 냉전시대는 지나갔다. 누가 뭐라고 해도 ‘문제는 경제다’ 그래서 만나야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