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 전 호주국립한국학 연구소 수석연구원, 커뮤니케이션 박사]

언론(저널리즘)의 이론적 뼈대가 되는 인간 커뮤니케이션학의 역사는 70년이 넘지 않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과 직후 미국의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계가 주동이 되어 시작되고 발전된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분야 초기 학자들이 내놓은 아이디어와 개념들이 지금도 언론 연구의 주요 과제와 도구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1940년대 미국의 사회학의 거목이며 커뮤니케이션 학자였던 폴 라자스펠드(P. Lazarsfeld)의 ‘언론의 마취적 역기능’ (The narcotizing dysfunction of the mass media)이란 희한한 개념을 가지고 한국 언론의 한가지 실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솝의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가 이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똑 같은 건 아닙니다. 그 보다는 할머니들이 보채는 어린 아이를 보고 흔히 ‘저 호랑이가 와 잡아간다’고 겁을 주는 일상적인 말이 더 설명을 잘 할 것 같습니다.

‘호랑이가 와 잡아간다’는 엄포를 듣는 어린 아이는 처음에는 겁을 먹고 울음을 그칠 지 모르나 그 소리를 여러 번 들으면 더 이상 안 먹힙니다. 엄포의 약발이 떨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언론의 효과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신문과 그 많은 다른 간행물, 그리고 요즘은 더 가깝게 만나는 텔레비전과 인터넷 매체 속 사설과 영상 다큐와 강연을 통하여 ‘옳은 말씀’을 매일과 같이 읽고 들으며 살아갑니다. 거기에 소모된 종이만 전부 모아도 그 양이 트럭 몇 백 대 분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씀대로 따라 사는가요? 그렇다면 세상은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설교 메시지

언론의 효과를 메시지의 효과로 바꿔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워집니다. 기독교 국가인 대한민국(인구의 4분의 1 신자)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에 대한 지혜를 상당부분 기독교 메시지에서 얻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걸 매주 또는 매일 듣고 읽는 기독교인들은 자기는 성경을 잘 이해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며 신앙생활을 충실히 한다고 생각함으로써 오히려 실천은 안하는 오류와 타성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언론의 보도가운데 아마도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내용은 비리의 폭로와 질타가 아닌가 합니다. 그게 카타르시스와 함께 현상 타파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물론 비리의 폭로와 질타를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합니다. 어떤 문제들은 노출만 되면 곧 해결로 이어집니다. 감추어져 있어 해결이 어려웠지만 알려지면 금세 대안이 나올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박테리아를 햇볕에 쪼이게만 하면 모두 죽어 없어지는 경우와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회현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계속된 폭로와 질타가 사람들을 무디게 만들고 전혀 엉뚱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부패와 섹스 스캔들에 대한 폭로 보도가 좋은 사례입니다. 매일과 같이 터져나오는 메가톤급 뇌물이나 유명 인사들의 흔한 불륜사건 보도를 읽고 듣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될까요?

남이야 그럴지라도 나만은 올바르게 살아야겠다고 옷깃을 여밀까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내가 먹는 뇌물, 내가 하는 불륜은 ‘새 발의 피야’라며 오히려 더 못하는 것을 아쉽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이완구 총리가 뇌물로 받았다는 3천만원은 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 같이 간난한 사람도 그까짓 돈 가지고들 그러느냐, 그건 용돈, 여기 식으로 ‘petty cash’란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하도 많은 대어급 비리 보도에 마취된 결과리라 생각합니다.(물론 이 총리의 경우는 진실 공방이 핵심 이슈이긴 해도 말입니다.)

결론입니다. 사설을 쓰지 말라, 폭로 보도를 하지 말라, 설교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에 앞서 각 메시지는 어떤 효과를 수용자들에게 가져올까를 생각해보라는 말입니다. 메시지의 효과는 메시지 자체에만 있지 않습니다. 메시지를 접하는 수용자의 심리구조와 메시지가 전달되는 사회구조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 연구를 깊이 해야 할 때입니다. 그건 연구비를 받는 학자들이 밖에 나오지 말고 해야 할 일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the Art of Rhetoric) 이후 메시지만 잘 꾸미고 잘 전달하면 효과는 그대로 일어난다는 잘못된 전제 아래 많은 명 문장가와 명 웅변가, 명 연설가가 생겨났고 언론은 옳은 ‘말씀’을 매일과 같이 쏟아내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대로이고 세상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