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경옥 / 매일경제 논설위원]

한국전쟁 당시 미국 정찰기가 중국(중공)에 추락해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억류됐다. 미국은 유엔에서 조종사와 승무원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당시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던 중국은 이에 반발해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됐다.

그때 과감하게 중국을 전격 방문해 저우언라이 주석과 담판을 지은 이가 다그 함마르셸드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함마르셸드 총장은 유엔의 집단안보 체제가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유엔 사무총장이야말로 평화와 안전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법적 기구`라는 점을 행동과 결과로 보여줬다. 이른바 `베이징 법칙(Peking Formula)`이다.

함마르셸드 총장은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를 졸업하고 스웨덴국립은행 이사회 의장, 외무부 차관을 거쳐 1951년 제6차 유엔총회에 스웨덴 대표로 유엔에 입성했다. 1953년 트리그브 리 초대 사무총장의 뒤를 이어 2대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그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구도가 유엔까지 장악했던 암울한 시기에 국제적 분쟁의 중재자이자 평화와 안보의 수호자로서 유엔의 위상을 확립한 역대 최고 총장으로 평가된다.

함마르셸드 총장은 강대국들에 의해 좌우되는 단순 토론집단에 불과했던 유엔을 창조적이며 도전적인 국제기구로 탈바꿈시켰다. 국제분쟁이 발생하면 전 세계 언론들이 "다그에게 맡겨라(Let it to Dag)"고 공공연히 촉구할 정도로 국제사회의 신임도 높았다. 당시 소련의 당서기 흐루시초프가 `우리는 함마르셸드를 신뢰할 수 없다`며 신발을 벗어 유엔 회의장의 책상을 두들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함마르셸드는 1961년 9월 콩고 분쟁 협상에 나선 길에서 의문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는데 노벨위원회는 역사상 최초로 그에게 사후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공무원의 꽃`이자 `국제 분쟁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조정하고 해결해나가는 권한을 위임받은 자`이다. 이러한 복합성 때문에 초대 사무총장 트리그브 리는 유엔 사무총장직을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이라고 했다.

반기문 현 유엔 사무총장은 평소 함마르셸드 총장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곤 했다. 반 총장이 중국 전승절 참석 후 연일 일본 정치권의 맹공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 측은 반 총장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에 대해 아베 신조 총리부터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 이르기까지 유감을 표명한 데 이어 엊그제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총재특보는 "한국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할 국가가 아니었다"는 망언까지 내뱉었다.

일본의 `반기문 때리기`가 도를 넘었다는 평가다. 일본 스스로 국제사회에 협량(狹量)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반 총장이 함마르셸드식 리더십을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