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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교포정책포럼 : 제3주제남북협의기구와 10.4 남북선언 제8항의 추진방향에 관해서
박병윤 소장  |  admin@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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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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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협의기구와 10.4 남북선언 제8항의 추진방향에 관해서

주제발표 ㅣ 박병윤 (일본 한민족연구소 소장)


서 문

(1)본론에 앞서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왜 -재일 동포를 중심으로-인가를 설명 할 필요가 있다. 10.4 남북선언 제8항(注1)은 “…국제무대에서 …해외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이라고 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무대’라 하면은 주권을 가진 국민국가(國民國家)로 구성된 국제질서를 말하고 ‘해외동포’라 하면은 한국 또는 조선국적을 가지고 한반도 밖에서 살고 있는 ‘국민’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한국 외교통상부가 발표한 재외동포 약 700만 중 거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동포들은 제8항에서 제외된다. 민족적인 차원에서 보면 참으로 불공평한 일이다.

재일동포와 역사적 배경을 같이하는 소위 식민지 산물인 중국 조선족, 재러 고려인들도 거주국 국적 때문에 당연히 제외된다. 동시에 그들도 모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점에서 제8항에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실로 아쉬운 일이다. 또 한국과 조선의 정부 수립 후, 독립된 국가여권을 가지고 출국, 세계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동포들도 오랫동안 ‘한국 국적’ ‘조선 국적’을 가지고 살아온 까닭으로 지금 새삼스럽게 남북이 ‘권리와 이익을 위하여 협력’한다 한들 갑자기 그 내용이 얼마나 좋아 지는지 남의 일 정도로 받아 드리고 큰 관심사가 아닌 것 같다.

결국, 1965년 한일수교와 동시에 한국과 조선국적으로 분할된 재일동포가 남북이 협력해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최우선 순위가 된다. 그래서 ‘재일동포를 중심으로’이다.

(2) 협의 기구
작년 본 포럼에서 필자에게 주어진 주제는 ‘일본의 재일동포에 대한 동화정책’이었다.
일본 정부의 외국인 청책은 상호주의이며 재일동포에 대한 민족정책은 추방·관리·동화이며 지금은 동화정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사단법인·해외교포문제연구소 발행 OK TIMES 2006년 12월호 참조) 논문에서 필자는 동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한국민단과 조선총련은 입장을 초월해서 화합을 이뤄야 하고 동포들에게는 어렸을때의 가정교육을 중시하고,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본명사용을 강조하고, 항간에서 들리는 민족명 일본 국적 취득 방향은 과도기적 한국계 일본인으로서 당분간은 존속하나 결국 “바닷물에 생수를 한 컵 부었을 정도로 언젠가는 바닷물에 섞여서 소금물이 되어 버린다.” 라고 바이올린 제작가 진창현씨가 지적하고 ‘한국계 일본인’을 민족운동으로 추진하는 데는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결국 재일동포는 일본에서 한국 사람으로서 살아나가느냐, 일본 사람으로 동화되어 가느냐의 문제다.
본 논문의 첫번째 큰 목적은 재일동포의 동화를 막는 것이고, 두번째는 지금 한국·조선 국적은 피할 수 없음으로 앞으로 통일된 조국 국적을 가지고 사는 것을 염원하면서 일본에서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모색한 결과 10.4남북공동선언 제 8항 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협의기구·남북공동위원회의 설치를 제언, 세번째로는 현 시점에서 협의기구를 촉매제로 남·북·재일동포 삼자의 바람직한 관계를 어떻게 구조해나가느냐 라는 것을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다양화된 삶의 형태注2)


지금까지 많은 학자 관계자가 재일동포문제를 ① 인구동태 ② 이민사 문화인류학 ③ 사회학 ④ 민족운동 등의 시점에서 접군한 연구 발표가 많았다.
① 인구동태는 1세는 사망, 2세는 고령화, 3·4세가 주류 벌써 5세까지 태어났다. ② 이민사 문화인류학은 1세는 거주사회에 부정적인 태도, 거주사회가 차별을 확대할 경우 저항, 2세는 1세를 원망 현실 도피, 3세는 뿌리를 찾고 민족재생운동 (revitalization movement)을 한다. (이광규 저 ‘재일한국인’382-383페이지. 일조각 ) ③ 사회학은 재일한국민단과 조선총련의 대립 반목은 냉전구조의 산물이며 본국의 분단 모순의 축도이다.(도쿄대학 강상중) ④ 민족운동은 “재일동포가 일본에서 통일모델을 분단조국에 제시해야 된다.” 라는 것이 주된 내용들이다.

그런데 필자는 선거권도 없는 재일동포가 경제적 기반도 없고, 문화적 소외 영역에서 민족차별을 받으면서 끈질기게 살아오고, 민족을 찾고 이어가기위하여 투쟁해온 선인들의 발자취에 자부심을 느끼고 경의와 사의를 표하면서도 재일동포 100년사를 맞이한 지금, 이제 재일동포들의 국가관 민족의식이 흔들리고 생활양식이 많이 달라진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관은 어느 나라 국적을 가지고 어떠한 국가체제를 생각하고 있는가. 민족의식은 민족 감정과 뿌리의식이 얼마나 뚜렷한가. 생활양식은 자녀들의 가정교육에 우리말 우리글 우리노래 등 민족적인 정소를 얼마나 가르치고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시점에서 10.4 남북선언 제8항을 논하기 전에 삶의 형태로 본 재일동포의 다음 6가지 형태를 살펴보기로 한다.

ⓛ 마요네즈 형
요리를 할 때 쓰는 마요네즈는 계란에 식초를 넣어서 섞어서 만들어 낸다. 계란과 식초는 처음에는 서로 배척하여 잘 어울리지 않지만 인내성 있게 시간을 두고 섞으면 서로의 배척력이 약화되어 나중에는 계란도 식초도 아닌 완전히 다른 식품인 마요네즈로 된다.

장기간 일본에서 일본사람과 섞여서 사는 재일동포를 최종적으로 완전히 다른 인간, 즉 백의민족의 후손이라는 것마저 잊어버리게 하는 마요네즈 형의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일본 동화정책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학교에서 일본아이들과 어울려서 똑같은 교육을 받은 후세들은 뿌리의식이 모호하고 한국 사람으로서의 민족감정과 국가의식이 희박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결국 이 마요네즈 형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국적을 일본으로 바꾸는데 별로 큰 의문을 느끼지 않고, 그 대부분이 이름까지 일본식 이름으로 바꿔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동포로서 판단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들은 순조롭게 일본사회에 동화되어서 매몰되어가기 쉬운 사람들이다. 돌이켜 반성해보면 우리들이 민족교육을 빼앗기고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반목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에게 민족교육을 충분히 시키지 못한 가슴 아픈 결과이기도 하다.

② 사라다 형
사라다에는 여러 가지 야채가 섞여있지만 실은 야채마다 나름대로의 맛이 있는 것이다. 여러 야채의 나름대로의 맛을 살리면서 보다 맛이 좋고 영양분이 있게 만든 것이 사라다의 특징이다. 서로가 자극을 받고 영향을 주면서 보다 좋은 것을 창출해나가는 정책을 복합문화정책이라고도 하는데 캐나다 등에서 취하고 있는 민족정책이 바로 이에 속한다.

재일동포 지식인, 문화인들 중에는 재일동포의 바람직한 삶의 형태가 바로 이 사라다형이라고 강조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공존(共存)’, ‘공영(共營)’, ‘공생(共生)’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취지에서 나온 것이며 지방참정권운동도 바로 이러한 조류에서 일으킨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다문화다민족공생사회’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옛날 한국민단신문에는 ‘민족단체’, ‘민족운동’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지금은 ‘생활 집단’, ‘공생사회’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강조해야 할 것은 재일동포가 사라다 형의 삶을 유지하면서 한국 사람의 존재가치를 발휘하려면 우선 재일동포 자신이 뚜렷한 국가관을 갖고 일본사람과는 다른 독특한 민족의 ‘멋’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재일동포가 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갖춤으로써 일본 사람과는 ‘공존’, ‘공영’, ‘공생’도 가능하다. 만약 민족의 독특한 ‘멋’을 갖추지 못한다면 일본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사람으로 될 것이며 마지막에는 일본에 흡수되어버릴 우려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도 민족의 ‘멋’을 갖출 수 있는 민족문화 진흥정책과 활동이 재일동포사회에서 보장되고 활발해져야 한다.

③ 고철 형
제철소에서 강철을 만들 때에는 일정한 비율의 고철을 섞지 않으면 질이 좋은 선철을 만들 수 없다고 한다. 일정한 비율의 고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소위 소수가치론이다. 예를 들면 중국의 소수민족정책, 연변조선족자치주와 같이 일정한 지역에 자치권을 인정하는 민족자치제도 그리고 캐나다·미국에 있어서의 장애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 또는 민족적인 소수자를 일정한 비율로 채용하는 고용제도가 소수자의 존재 가치를 살리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한국국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국가관과 뚜렷한 민족관을 갖춤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국(異國)인 일본 땅에서 소수자로서 일본 정부의 동화정책과 민족차별의 복잡한 환경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일본 사람과 더불어 살기에 앞서 먼저 한국 국적과 한민족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한민족의 우량한 전통과 찬란한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며, 또 이로 인해 일본사회를 보다 건전하고 풍요롭고 성숙된 사회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삶의 형태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사라다 형태의 삶과 비슷하거나 일부 중복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고철 형의 삶에 속하는 재일동포는 재일동포의 존재의의와 민족성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기 때문에 사라다를 만드는 재료인 일종의 야채라기보다는 사라다 전체의 맛을 살리는데 꼭 필요한 드레싱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한식 비빔밥에는 여러 가지 서로 맛이 다른 나물이 들어가야 하지만 비빔밥의 맛을 살리려면 꼭 고추장이 들어가야 되는 법이다. 이 고추장과 같이 맵고 끈질긴 것이 재일동포의 고철형 삶의 형태가 아닐까! 어쩌면 이런 사람들을 ‘민족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국제화시대에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본 땅에서는 일본 사람과 더불어 살기 위한 한국 사람으로서의 독특한 ‘멋’을 갖추려면 바로 ‘민족주의’라고 불리 울 정도의 확고한 민족 관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재일동포사회에는 이 고철 형 삶의 형태도 매우 중요하다.

④ 경계선 형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 현해탄에는 한류와 난류가 부딪치는 해협이 있다. 한류와 난류가 부딪치는 해협에 사는 물고기는 한류에서도 난류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물고기들이다. 즉 환경이 다른 여러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소위 계절마다 피부색이 달라지는 카멜레온(동물명)과 비슷하다.

이와 같이 여러 환경에서도 떳떳이 살아갈 수 있고, 보다 다각적인 사고방식을 갖추는 것도 재일동포의 하나의 삶의 형태라 할 수 있다. 시즈오카(靜岡)현립대학 김양기 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겹치는 이중공간(재일 공간)에서 사는 재일동포는 두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경계선에 서 있다고 지적하였고 또 이 경계선에 서 있기 때문에 두 나라 어느 쪽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복안사고(複眼思考)를 가질 수 있다고 하면서 이 경계선형의 삶이 재일동포의 가장 바람직한 삶의 형태라고 하였다.

이러한 발상에서 내년(2008년 4월) 코리아국제학원(이사장·강상중(姜尙中), 학원장·김시종(金時鐘)이 개교 예정인 바, 학교의 표어는 ‘경계를 넘나드는 우리’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재일동포 중에는 경계선에 서서 복안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적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교육을 받고 두 나라의 문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갖춰짐으로써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어렸을 때 민족적인 환경 속에서 자라나고 민족교육을 받은 후에 일본대학에서, 반대로 어렸을 때 일본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후 대학을 본국에서 교육을 받은 2, 3세들 중에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경계선에서 실력을 발휘하면서 보다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동포들이 나타나고 있다.

⑤ 통일 지향 형
재일동포가 일본에서 어떤 삶의 형태를 취하는가 하는 것은 결국 동화냐 민족이냐 라는 두 가지 사고방식에 의해 갈라진다. 상술한 ① 마요네즈 형은 동화를 수용, ②③④는 동화를 거절하는 삶의 형태다. 어쨌든 간에 상술한 네 가지 삶의 형태는 일본에 거주하는 다른 외국인들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면에서 적용이 된다. 그러나 분단된 조국을 등에 지고 외국인 일본 땅에서 둘로 갈라져야만 하는 재일동포에게는 일본에 거주하는 기타 외국인과 다른 특수한 삶의 형태가 있는 것은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바로 일본에 있어서의 재일동포의 통일, 즉 재일한국민단과 조총련의 화합과 통일을 위하여, 나아가서는 조국의 남북통일에 까지 연결시키려는 통일을 지향하는 삶의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해방 후부터 오늘날까지 남북통일 (재일동포 사회속의 통일까지 포함해서)온 가까이 가면 멀어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일은 ‘언제 통일하는가?’ 하는 시간문제가 아니고, 통일을 이룸으로써 남북은 물론 주변국가와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가치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재일동포사회에 있어서 남녀노소, 그 누가 조국의 남북통일과 재일동포사회의 화합과 통일을 원하지 않겠는가! 동서 냉전체제가 붕괴되어 더 이상 남북이 갈라지고 재일동포사회가 재일한국민단과 조총련으로 갈라질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주류(主流)는 아니였지만,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공동성명 발표에 앞서 일본에서도 한국민단과 조선총련의 화합과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세대가 교체되었지만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고베(神戶)·오사카(大阪)·교토(京都)지역에서는 한국청년·학생, 조선청년·학생, 한통련계 청년, 재일코리아청년연합계 청년, 여섯 단체가 소속과 사상을 초월해서 재일동포사회를 하나로 하기 위한 의견 교환을 수시로 하고 있다. 필자는 농담으로 이 모임을 재일동포의 6자회의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은 하나가 될 재일동포사회에서 활약할 예비군이기도 하다.

재일동포사회가 하나가 되면 남북에도 좋은 영향이 미칠 것이며 당연히 본국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이며 많은 일본사람들도 이를 환영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재일동포가 일본에서 어떤 삶을 취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다가올 21세기의 통일된 조국을 전망하여 먼저 재일동포 사회로부터 3·8선을 없애고 하나로 하는 삶의 형태가 현 단계로서는 가장 솔선적이고 가장 바람직한 삶의 형태라는 것을 필자로서는 강조 하고 싶다.

⑥ 동화(同化)와 이화(異化)
그런데 재일동포의 삶의 형태와 민족의식을 상기 5가지 형으로 딱 잘라서 구분해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횡단보도를 건너 갈때, 꼭 파란신호를 보고 건너감으로서 교통사고를 피할 수 있듯이, 겨울이 오면 따뜻한 내복으로, 여름이 오면 얇은 내복으로 갈아입는 것과 같은 사회동화는 민족의식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민족감정, 일상생활을 즐겁게 보내는 문화활동, 정체성과 깊은 관계가 있는 뿌리 의식은 사회동화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 사회의 기본 민족과 잘 어울리지 않은 이화현상(異化現象)이 보이고 민족동화에 강한 거절반응을 나타낸다.

결국, 재일동포 한사람의 몸 안에서 그 사회에 적응하려고 하는 적응의식과 일본민족과 어울리기 어려운 민족감정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적응의식과 이화현상(異化現象)은 개인의 출신, 자란 환경, 받은 교육에 따라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이 이화현상은 같은 민족 사이에서도 있다.

필자의 경우,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자란 환경이나 받은 민족교육이 거름이 되어 거주국보다도 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갈라진 조국과 내 자신의 운명을 결합시킴으로서 자연히 상기 다섯번째 형인 통일 지향형을 택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5가지 형이 필자의 민족의식의 전부는 아니다. 필자 자신의 자녀와 재일동포 후손들의 놓여있던 실태를 생각할 때 상기 ②③④까지는 이해를 하고 때로는 그들과 민족·인권운동까지 함께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삶의 형태 ① 형은 이해는 할 수 있지만 행동까지는 같이 할 수 없다.

결국 필자의 민족의식도 ⑤, ③ 형의 의식이 강하고 그 다음에 ④, ②로 비율이 낮아진다. 이것은 필자를 예로 말한 것이지만 재일동포사회 여러 개인의 민족의식도 상기 ① 부터 ⑤까지 한사람 몸 안에 구별 없이 전신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재일동포의 의식 구조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상기 5가지 형으로 딱 잘라서 해부하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 재일동포 한사람 몸 안에는 그 지역에 적응하려고 하는 동화의식과 민족의식이 통째로 몸 안에서 대립·공존·갈등을 반복하면서 삶의 형태도 변해진다는 것을 삶의 형태 여섯 번째 형으로 추가한다. 변화의 키워드는 환경·교육·통일조국 상이다. 철학자 칸트 “인간은 교육으로서 인간이 된다.”라고 했다. 그러나 재일동포는 민족교육으로서 소생(蘇生)한다. 그러므로 재일동포사회 최후의 요새는 민족교육이다.


동포사회의 화합


(1) 이가(伊賀) Korea 협의회
삶의 형태 다섯번째 형과 같은 통일지향적인 움직임이 최근 한국민단사회에도 있었다. 2006년 2월 24일 ‘재일동포사회의 화합과 통일’을 공약으로 내세운 하병옥 집행부가 출범. 5월17일에는 오랫동안 반목 해오던 한국 민단과 조선총련이 중앙차원에서 동포사회의 화합을 위한 공동성명(이후 5.17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당선 후 준비작업도 없이 너무나 갑작스런 합의였다. 동합의서 8번째는 양조직의 ‘창구설치’와 ‘수시협의’를 약속하고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반목 대립해온 한국민단과 조총련의 중앙차원의 합의인 만큼 ‘수시협의’가 아니고 정기적으로 심도 있는 대화 교류를 쌓아 올리면서 양조직의 공통분모와 의견 차이를 정리하여 합의한 것을 먼저 이행하면서 점차 교류 대화확대→오해해소→신뢰구조→대화합에로 이르렀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한편, 5.17 성명발표와 동시에 경과보고 및 내용을 설명한 별도문서가 보충되었으면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것인데, 그것도 없었다. 사실 10.4 남북공동선언은 있었다.

그런데 5.17성명을 자세히 검토해보면 본국에서 개최되는 6.15민족 대축전에 한국민단과 조총련이 일본지역 위원회 대표단 일원으로서 참가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두 조직 중앙차원의 화합행위로서 본국 6.15축전에 공동참가 하는 것은 바람직한 경사라 하더라도 그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6.15정신을 재일동포지역사회에 어떻게 알맞게 적용하느냐. 즉 재일동포 지역사회에 알맞게끔 6.15정신을 밑바닥에서 꾸준히 쌓아 올리는 노력이 아니었던가. 결국 하 집행부는 5.17공동성명 발표 후 민단조직 내부와 상공회의소(회장 최종태) 등 산하 단체의 불신으로 퇴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민단 조총련 중앙차원의 화합은 부활을 이루지 못 하고 있다.

일설에는 일본공안당국의 간섭 압력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다. 우리가 한민족으로서 일본에 살고 있는 이상 일본 공안당국의 정보활동은 각오를 해야 되고 간섭과 압력은 항상 주의해야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민단 총련이 화합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민족자결권을 행사한다는 자각과 민족관을 튼튼히 해야 된다는 것이며, 아울러 우리민족 내부에서 이를 미리 알고 방지를 못했다는 점을 깊이 반성해야 된다.

동서독일이 하나가 될 때까지 각계 각층의 폭넓은 교류가 있었고 끈질긴 대화와 협의를 쌓아 올린 결과 큰 갈등도, 실수도 없이 통일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한반도 통일이나 재일동포 화합·통일에 좋은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동서독사이에는 오랫동안 전화와 우편물이 자유롭게 교환되었고 특히 1980년대 이후 해마다 8~9백만 명의 사람들이 거의 자유롭게 왕래하였다. (통일부 통일연구원 연구개발팀발행, 주제가 있는 통일문제 강좌 15호 39페이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재일동포 사회나 한국민단 조총련 조직은 지역에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화합과 교류는 아무런 갈등도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그것은 동포사회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들도 환영하고 있다. 한국민단과 조총련이 경직된 어려운 시기 1985년(전두환 군사정권시대)부터 오늘날 까지 동포사회의 화합과 미래를 위하여 거행해온 One korea 페스티벌 (실행위원장 정갑수), 금년이 23번째로 성대하게 끝마쳤다. 매년 만(금년은 삼만오천명) 명이 넘는 우리 동포와 지역주민들이 한반도가 하나가 될 것을 갈망하고, 통일된 한반도에 미래의 꿈을 보고 모여들고 있다. 꿈이 있는 대는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꿈은 이루어진다.

14년 전 (1993년)부터 오사카(大阪)에서 시작한 one korea 바둑대회는 지금은 각 지역에 확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치(愛知)현 민단 상공인과 총련 상공인이 공동으로 ‘아이치코리아기업목록’을 발간, 오사카(大阪)에서는 한국민단과 조총련이 오사카부립대학에 대학입시시험과목에 ‘한국어’를 요구. 이렇게 지역에 내려가면 갈수록 민단·총련이 함께 하는 화합·협력사업은 늘어나고 있다. 벌써 동포지역사회는 대립과 반목은 사라지고 있으며, 화합과 협력이 보통일로 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일본에 있어서의 ‘조그마한 민족화합’이며, ‘조그마한 통일조국’을 지역동포들이 밑바닥에서 쌓아올리고 있는 것이다.

미에(三重)현 이가(伊賀)시에서는 한국민단과 조총련이 협력한 결과 ‘이가(伊賀)Korea협의회’를 결성, 공동으로 사무소를 설치, 일본 법무국에 법인등록까지 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에 있어서 조그마한 남북협의·남북공동위원회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세계화 시대를 맞이한, 또 하나의 패러담(Paradigm)의 시작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반면 당사자의 인식은 별도로 하고 탈정치(脫政治)지향이면서도, 실은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다. (이가(伊賀)Korea협의회의 설립경과·설립목적·사업내용·문제점·과제·전망에 관해서는 다른 기회에 논함)

그러면 여기서 국제무대에 있어서의 남북의 협조 자세를 살펴보자.
경주 불국사, 석굴암, 종묘, 고구려고분의 유네스코 등재 등에서 볼 수 있었던 문화적인 협력자세부터 안중근의사 유해 발굴, 내년에 예정되고 있는 베이징 올림픽대회에서의 통일 응원, 국제대회에서의 남북공동입장,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당선, 여수 박람회 유치에서 볼수 있었던 비정치적인 문제에 대처하는 남북협력자세는 아무런 갈등 없이 순조로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북·미,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하여 국제무대에서 남북은 정치적인 협력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민족내부에서는 통일 국가 상(6.15 남북공동선언 제 2항,(注3))까지 제시하고 있으며 11.16 남북총리합의문 제1조 3항(注4)에서는 그를 위한 남북의 법률과 제도까지 협의하기로 합의를 보고 있다.


노력에서 협력으로


독창과 합창
사실은 필자도 1989년부터 재일동포사회, 특히 민단과 총련 사이의 화합·통일을 위한 협의기구의 필요성을 절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호소해 온 적이 있었다. 별도로 첨부한 자료 1부터 7까지의 각종 신문 및 건의문은 일본 국내에 있어서의 재일동포사회의 화합을 목적으로 하는 협의기구, 별도로 첨부한 자료 8,9,10 및 건의안(해외교포문제연구소)(注5)은 남북 정부에 대하여 해외동포를 위한 협의기구·남북공동위원회의 필요성을 호소한 문장들이다.(신문자료·건의문 참조)

지금부터 19년 전 해외교포문제연구소(당시 소장 이구홍)와 국제문화연구소(당시 소장 김복동)가 공동으로 ‘해외동포의 현실과 정책과제’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개최, 필자는 ‘재일동포의 현실과 정책과제’로 주제발표를 한 바 있었으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1965년 한일수교와 동시에 체결한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이하 65년 법적지위)는 ①재일동포 전체를 하나로 다루지 못하고 한국국적과 조선국적으로 분할한 분단협정, ②재일동포가 식민지 소산인데 대한 일본의 반성과 책임의 결여, 그러므로 65년 법적지위협정을 파기(破棄)→재일동포의 과거청산 현재 해결·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새 협정 체결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한국국회에서 ‘재외동포기본법제정위원회’(注6)와 ‘재일동포법적지위대책위원회’(注7)를 설치, 동시에 “65년 법적지위를 백지화하여 재일동포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하여 남북이 공동으로 대일교섭을 할 용의가 있다”라는 자세를 북에 제시할 것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자료 8 참조)

즉 19년 전에 발표한 내용이었지만 이번 10·4 남북선언 제8항 정신을 말한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민단중앙본부를 중심으로 한 관계자의 반응은 “현실성이 없다. 너무 극단적이고 과격한 생각이다”라는 것이였다. 사실 그 당시 남북관계는 냉전체제를 유지, 필자의 제언은 먼 훗날 검토과제로 미뤄졌다. 그러나 문제는 시기가 아니고 남북의 해외동포를 보는 시각이 중요한 것이었다.

남북이 해외동포를 남북의 공동자산으로 보느냐, 남북의 대치 책으로 활용하느냐. 가진 자는 해외동포, 없는 자는 짐이 되는 해외동포정책. 남북이 분단을 유지한 채 해외동포를 어떻게 공동자산으로 할 수 있는가…?
즉 남북이 협의기구·남북공동위원회를 구성해서 재외동포 관을 공동으로 창출해야 된다는 희망·요망 사항을 말한 것뿐이었다.

마침 2년 후인 1991년 12월 13일, 남북은 화합과 통일을 위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조인, 제6조에는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하여 공동 노력(·은 필자)한다.”고 하였으며, 1992년 9월 17일 조인한 ‘부속합의서’ 제24조에는 “해외동포의 민족적 권리와 이익을 유지하고 그들 간의 화해와 단결이 완수될 수 있도록 노력(·은 필자)한다.”는 노력 목표를 세웠다.

15년 전의 약속이지만 대결관계였던 남북이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해외동포를 위한 남북 합의사항이다.
그런데 그동안 해외동포를 위한 단독 노력은 있어도 공동노력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10.4공동선에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자세가 보인다. 즉 기본 합의서와 부속 합의서에서 ‘노력’이었던 것이 15년만에 10.4공동선언에서는 남북의 자세가 ‘노력’→ ‘協力’으로 되어 있다.
해외동포로서는 참으로 주목할만한 공동자세가 아닌가.

‘노력’은 단독행위, ‘협력’은 공동협조행위, 음악으로 말하면 ‘독창’과 ‘합창’의 차이다. 독창은 개인의 개성이며, 합창은 두 사람 이상의 협동 작업이다. 단독행위·독창은 때로는 독선적일 때가 있다. 소위 해외동포를 자기편으로 흡수하는데 비해 협조행위·합창은 남북이 해외동포를 자기편으로 흡수할 수 없음은 당연하고 오히려 필연적으로 어떻게 하면 “공동자산으로 할 수 있을까”라는 사고방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멀지 않아 남과 북은 해외동포를 위하여 어떠한 합의를 할 것인지, 해외동포로서는 큰 관심사다.

멀지않아 남과 북은 해외동포를 위하여 어떠한 합의를 창출할 것인지 해외동포로서는 큰 관심사이다.
10·4선언 제8항 ‘협력을 강화(·은 필자)’, 결국 강화하기 위하여 남북이 협력·협의기구로서 ‘남북공동위원회’의 설치가 필요하고 그것은 약속된 예정 사항이다. 해외동포를 위한 남북의 합창은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탈냉전(脫冷戰) 구조


국권(國權)과 인권(人權)
2004년 12월 8일, 교포정책포럼(해외교포문제연구소 주최)에서 ‘중국조선족사회의 현실과 바람직한 미래상’에 관해서 주제 발표한 연변대학 박금해 교수는 “조선족사회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튼실한 구심점이 없으므로 조선족의 응집력에는 한계가 있다.

조선족사회는 유태인과 같은 종교가 없고 한족과 같은 민족 우월주의 의식도 없으며 회족과 같은 강력한 민족의식도 없다”라고 조선족의 민족의식을 분석했고, “중국이라는 강력한 정치제체 속에서 자주적인 민족정체성 추구보다는 중국국민으로서의 입지 구축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모국과의 한계성을 지적한 후 “조선족은 중국이나 한국의 그 어느 시각에서 보아도 여전히 변두리 민족이었고 ‘경계민족’이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벌써 40년 이상이나 지난 일이지만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귀화한 청년 야마무라 마사아키(山村政明, 귀화 전 이름 양정명-梁政明)군은 “나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다. 다음에 태어난다면 한국인으로서 한국 땅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고 싶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야마무라군이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깊이 관계하고 있었을 때 일이다.

같은 시기 5.16군사 구테타를 반대하면서 같은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2세작가 이희성씨는 1972년 일본 아쿠다가와 문학상(芥川賞)을 수상하고 조총련 조직을 탈퇴하면서 ‘북도 남도 내 조국’이라는 수필을 발표(1972년 문예춘추)했다. 그로부터 세월은 35년이 지났다. 지난 5월 제1회 ‘세계한인의 날’ 초청강연에서 이희성씨는 지구촌 곳곳에서 살고 있는 해외 700만 한겨레의 입지 조건을 설명하면서 “우리들은 21세기 세계에서 부끄럽지 않은 위대한 문학을 지구 상에 내 놓을 수 잇는 가능성이 크다”라고 남북을 등에 지면서 지구적 발상을 할 수 있는 한민족의 존재의의를 지적했다.

지금부터 15년 전(1992년) 재일동포 3세 남태응군은 일본 건축잡지 쇼고구샤(彰國社)가 주최한 일본건축문화상 시모이데상(下出賞)을 받았다. (논문 제목·지구환경시대의 건축방향). 남북군사지역의 자연환경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데까지 연결시킨 논문은 아니었지만 남북이 통일하는 과정에서 군사분계선을 평화적으로 활용하는데 시사하는 점이 많은 논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일본과 싸우고 아버지는 숨어 다니는데 손자는 상을 받고 있다.

지금부터 30년 전 재일동포 시인 송두회(宋斗會)씨는 “나에게 일본국적을, 일본에는 원자폭탄을”이라고 웨치면서 일본법무성 현관 앞에서 본인의 외국인등록수첩을 불태우고 체포당했다. 일본 지방선거권을 달라고도 하고, 주지 말라고도 하는 재일동포가 함께 살고 있는 일본사회, 남북은 이렇게 복잡한 해외동포는 물론, 지구적 발상을 하면서 세계평화와 일뉴발전사에 기여하려고 노력하는 재일동포, 더욱이 지구촌 뒷 골목에 흩어져서 끈질기게 살고 있는 해외동포까지 포함해서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북은 도대체 어떠한 통일국가 상과 재외동포 관을 가지고 협력하려고 하고 있는가. 협력을 강화한다는데 어떻게 무엇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일까. 때로는 정치적 동맹관계로 묶을 때도 있을 것이고, 경제적 공동체, 문화적 공감대, 민족동질성까지 포함해서 한꺼번에 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 합쳐서 묶어도 남과 북, 해외동포가 납득하는 관계를 내세우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화교정책, 이스라엘의 유태인 정책, 인도의 교민정책, 본 포럼에서 자주 화제가 되는 헝가리의 해외동포정책, 그 어느 것을 다 합쳐도 한반도의 해외동포정책에 알맞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통일에 이르렀던 독일은 통일과정에서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었던 것인가.

유럽-아시아-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남북 예멘이 통일에 이르렀을 때 해외동포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었던가. 제2차 대전이 끝나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난 베트남공화국이지만, 그 후 공산정권인 북쪽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남쪽이 오랜 분쟁 끝에 결국 공산국가로 통일되었지만, 공산주의의 해외동포관은 과연 어떤 것이었으며 통일조국과 어떤 관계를 맺었던 것인가. 자유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사이에는 해외동포정책에 어떠한 차이점이 있고 또 공통점은 무엇인가.

분단된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진 해외동포를 통일된 모국과 바람직한 관계로 연결시키고자 할 때 그 어느 나라의 경험이라도 남북의 해외동포정책에 참고·교훈이 될지언정 한반도에 딱 맞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자유주의 국가로 통일된 독일, 공산주의 국가로 통일된 베트남 공화국, 두 나라는 국가체제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하나가 됨으로서 우여곡절은 있어도 사상과 이념을 초월해서 세계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렇게 남북으로 갈라져서 원수와 같이 싸우던 예맨도 지금은 얼마나 안정되고 발전하고 있는가. 통일 후 손해를 본 나라도 없고 다시 갈라진 나라도 없으며, 또 가르려고 하는 나라도 나타나지 않는다. 세계경정 속에서 국가 발전에 뒤떨어진 나라도 없다. 오히려 앞서고 있다.
유럽공통체의 경인역할을 하고 있는 통일 독일,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통일 베트남, 안정된 통일 예맨, 모드 세계질서 창출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질서의 경쟁과 공존 속에서 분단은 열등생, 통일은 우등생의 길이라는 것을 왜 한반도는 깨달지 못하고 있는가. 지금 한국은 일본과 중국사이에 끼어진 샌드위치(삼성회장 이건희,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발언-OKtimes 2007년 10월호)를 한탄하면서 멈추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세계의 천연 가스’를 등에 없고 발언권을 강화하고 있는 러시아, ‘세계공장’을 유치하여 약진하고 있는 중국, ‘세계 IT혁명’을 꿈꾸고 있는 인도, ‘세계첨단기술’을 점유하려고 꿈꾸는 일본, 계속 한반도를 노려보고 있는 ‘세계의 보안사령관’의 위신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그러나 그 보안사령관도 인덕으로 존경을 받지 못하고 힘으로 위신을 끌어 올리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국은 세계온난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CO2) 를 대거 배출(세계 9위)하면서 세계경제 13위 국으로 성장했다. 그것도 다리를 절면서 (분단) 짧은 기일에. 그러나 21세기를 맞이한 국제 질서 속에서는 여전히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정확한 나침반을 가지지 못한채, 사면초가(四面楚歌)상태에 빠져있다.

왜! 그것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까닭으로 먼 훗날이 잘 안보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약 100년 전에도 집안 싸움만 하다가 국제 정세를 내다보지 못한채,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때가 있었다. 나라를 빼앗겨 고향을 떠난 일제시대의 난민들, 나라가 갈라져서 고국을 등지고 떠나 분단시대의 이민들, 이제 그들의 후손들인 우리가 ‘제2차 세계대전 페막식의 주인공이 되어야 된다’라고 재촉하는 선조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것은 아주 먼 옛날 광야를 달리던 고구려 무사들의 말 발굽소리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계질서, 영구평화 창출의 발산지가 한반도이며, 거기에서 울어 나오는 목소리가 바로 새 질서 창출의 새 지침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평화대국의 길이며, 아세아·아프리카 그리고 여러 발전도상국의 뻔보기가 될지 모른다.

결국 21세기 세계화를 맞이한 국제질서 속에서 국권과 타국에 거주하는 자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바람직하고 조화롭게 창출할 수 있는 나라는 오로지 금세기 지구상에서 마지막 분단국인 한국과 조선뿐이며, 그것은 여러나라가 부러워하는 통일국가를 창출하는 통일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분단을 통일로, 통일은 평화적으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마태 목음서 5장 9). 그럼으로 통일은 이루는 것이지 기다리는 것은 아니며 재일동포의 화합도 재일동포가 이루는 것이지 조국이 해주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남과 북은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나라가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실례를 창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 조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구라파를 포함해 세계 4대강국(중국·미국·러시아·일본)에 거주하는 식민지 난민(일제 지배하)의 후손(注8), 분단시대의 이민(냉전통치 하)(注9), 그리고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여러나라로 흩어지기 시작한 한민족(注10)의 종적(縱的)·횡적(橫的) 네트워크다. 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내다보고 있는 종적 네트워크(역사)는 횡적 네트워크(현재)와 결합하면서 멀지 않아 천만명 한민족 네트워크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필자는 그 시기를 한일합방 100년을 맞이하는 2010년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 음지에서 몸부림만 치던 한반도가 양지에 나타나 아침 햇빛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유대인과 같은 종교가 없고, 한족(漢族)과 같은 민족 우월 의식도 없으며 회족과 같은 강력한 민족의식도 없으므로(연변대학 박금해 교수), 오히려 모든 것을 초월해서 종교공존과 민족평등, 인권존엄과 인류발전의 경인차가 될 수 있는 존재로서 천만 한민족(韓民族) 네트워크의 시대적 책임과 역사적 사명을 세계사 적 시각에서 생각할 때가 아닌가.

지금부터 203년 전, 독일철학자 칸트(1724-1804)는 세계영구평화를 위하여 “인류는 국가연합과 같은 국제기구를 만들어야 된다.”고 제창하고 돌아갔다. 금 세기 인류에 대한 유언과 같은 칸트의 제언은 칸트 사망 후, 116년만에 제1차 세계대전 후, 전승국을 중심으로 국제연맹이 결성(1920년) 되었다. 그러나 국제연맹은 국가 간의 이해 충돌로 붕괴, 제2차 대전 후, 같은 목적으로 결성(1945년)된 국제연합 역시 미국을 위주로한 대국중심으로 운영되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국제 질서이며 국제연합의 내막이다.

이와 같은 국제기구의 한계와 약점을 보완하고, 대국의 이기주의·패권확대를 견제하면서 ‘지구보다 무거운
인간(인류)의 존엄(신약성서 마르코 8장 36)’을 위하여 힘을 모으고 발휘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조국을 떠나 지구촌 곳곳에서 살고 있는 여러 난민· 이민·유민들의 네트워크라는 것을 예측한 것도 철학자 칸트였다.(칸트 저 ‘영구평화를 위하여’) 덧붙혀서 말하면 “21세기 한국인들이 전 세계적인 블로그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한국은 전 세계 곳곳에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높이는 입소문 확성기를 배치하게 될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장차 전 세계 60억 외국인들의 여론을 좌우지하며 세계를 변화(·는 필자)시키는 나라가 될 것이다”(재외동포신문 2008년 1월15일)라고 흥분하고 있는 사람이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단장 박기택씨이다.

과연 그때는 언제이고, 누가 그것을 맡게 될 것인가. 인권과 국권의 상호보완과 세계적 규범(철학자 칸트), 21세기 부끄럽지 않은 위대한 문학작품(재일동포 2세 작가 이회성), 군사분계선의 평화적 활용(일본 교토(京都)대학 南泰裕군의 졸업작품·군사분계선에 남북통일 기념관 건축), 세계를 변화시키는 나라(사이버 단장 박기택)까지 창출할 수 있는 지역의 하나가 멀지 않아 하나가 될 한반도이며 내외 7000만 한겨레가 그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세계관과 역사의식·사명감을 가질 때가 아닌가.

역사의 새 주인
세계 화약 창고를 안고 있는 남북이 평화적이고 민주적이고 자주적으로 하나가 됨으로써 세계평화 질서에 기여하듯이, 식민지 산물인 재일동포가 통일된 조국과 가장 보편적이고 타당성 있는 관계를 창출하는 것은 인류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는 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재일동포야말로 식민지 산물인 재일동포이기 때문에 식민지 후손으로서 식민지를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바람직한 질서를 창출·개척해 나갈 수 있는 역사의 새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재일동포가 다가오는 통일조국과 재일동포와의 바람직한 관계를 창출·개척하려고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분단을 유지하고 있는 남북의 헌법이며, 하나였던 재일동포를 한국과 조선으로 분할한 65년 법적지위이다.

남측은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거항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국헌법 전문), 북측은 ‘조선은 김일성동지의 사상을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 조국’(조선헌법 전문)이라고 하고 있다. 며칠 전(11월14~16일)서울에서 있었던 남북총리회담에서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하기 위하여 상호 간의 법률·제도를 정리하는 문제 등을 협의하기로 했다.”라는 합의문(제1조 제3항)을 발표했지만, 이 엄연한 남북의 법통 대립을 세계가 납득하고 평가를 받을 수 있게 어떠한 절차를 밟아서 만인이 부러워하는 세계적인 통일헌법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 제안에 공통성이 있음을 인정’, 이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한다고 했지만, 물과 기름과 같은 국가체제의 차이를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통합한다는 것인가. 이미 ‘북진(北進)’·‘적화(赤化)’라는 말이 살아져서 오랜 세월이 지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의 세계전략과 중국의 패권확대가 부닥치는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우리끼리’만 흡수인지, 접목인지, 융합인지, 포용인지, 아니 이대로 교류만 계속 하다가 흡수되어버리는지, 접목되어버리는지, 융합되어버리는지, 실로 포용하는지, 그 종점은 불확실하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고 우러러 보는 아름다운 종점을 만들어 나가야 된다.

흡수도 수지계산(收支計算)이 맞을 때도 있고, 적자가 나올 때도 있다. 접목도 잘못하면 가지가 썩어서 꺾어질 때가 있다. 융합도 잘못하면 죽도 밥도 안될 때가 있다. 포용도 사이즈가 맞아야 보기 좋지.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피곤하고 부담이 될 때가 있다. 남북이 언제 어떻게 접근해서 어디서 궁합(宮合)이 딱 맞아 드는지, 동시에 어떻게 해서 7000만 내외 동포가 만족하고 만민이 환영하는 헌법으로 이루어지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세는 복잡하고 통일헌법은 어렵고 멀어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 교류협력은 날로 확대·정착, 내외 7000만 한겨레의 통일을 갈망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그러므로 정세가 어떻게 변해도 남북과 내외 7000만 겨레의 공통분모는 ‘우리 힘으로 평화적이고, 민주적이고, 자주적으로 하나로 해보자!’는 것이다.

동서독일이 통일할 무렵, 통일 교섭의 담당자였던 우르후간구·쇼이프리-西獨內務相은 “통일은 갑자기 거대한 땜이 무너지는 것과 같이 한 번에 온 것 같다.”라고 회상하듯이 우리도 항상 준비를 해놔야 된다. 남북헌법을 통일헌법(注11)으로 이어가는 문제는 별도로 논의하기로 하고, 결국 65년 법적지위는 분할된 재일동포를 하나로 묶지 못한 채 1991년 1월 10일 한일외상각서(91년 각서(注12))는 정치타결로 결착을 보게 됐다. 사실은 전술한 1989년 11월 30일(1989.12.11 신세계신문) 학술회의에서 65년 법적지위 파기→새 협정을 위한 협의기구의 설치는 ‘91년 각서’의 정치 결착을 우려해서 제언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91년 9월 12-14일 한국정신문화원이 제1회 세계한민족학술회의를 개최한 바가 있었다. 그 때 필자는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 91년 문제의 정치결착과 금후의 운동방향”에 관해서 발표했다. 그 내용을 8년 전(1999년 1월) 교포정책포럼에서 다짐하는 의미에서 다시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본 포럼에서 그 당시의 내용을 재차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본 논문의 목적과 취지에 너무나 알맞기 때문이다. 그 내용 요지는 다음과 같다.

“남북이 분단국가를 유지하면서 일본과 제각기 법적지위를 체결하여 서로가 재일동포를 억지로 끌어 들이려고 할 것이 아니라 통일국가를 수립하기 전부터 남북이 공동으로 재일동포를 보호하는 공동 작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통일 후의 재일동포정책을 사전에 검토, 협의해야 된다.

동시에 종래의 ‘한일(韓日)’ 대 ‘조일(朝日)’이라는 분단구조 속에서 벗어나 분단 모순을 극복하는 ‘일본’ 대 ‘남북협력체제와 재일동포’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재일동포의 과거를 청산하고 동시에 현재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아가서는 장래까지 보장한다는 남북 및 재일동포의 확고부동한 자세 확립이 요구된다. 아울러 그것은 남북과 재일동포 전체의 공동이익이 되고, 통일된 조국의 공동자산이 된다는 민족사관과 통일사관이 결합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재일한국민단과 조총련이 민족적인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확인하고 공통과제인 재일동포의 장래를 위해 사상과 이념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화해하고 협력할 것을 공동으로 내외에 선포해야 한다. 일본에 살고 있으면서 일본에 있어서의 화합을 소홀히 한 채, 본국의 통일만을 강조한다든가, 반대로 본국의 통일만을 기다리는 자세도 문제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3·8선이 없는 일본에서 한국민단과 조총련의 화해가 이루어져야 된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동포사회 내부에서도 저절로 재일동포의 화합과 통일을 위한 협력자세가 우러나올 것이다.

재일동포사회의 이러한 화합과 협력을 전제로 한국 정부는 우선 일본 정부에 대하여 재일한국인의 65년 법적지위 협정을 파기(注13)할 것을 통보하고 65년 법적지위 백지화 선언과 동시에 재협의 교섭을 요구해야 된다. 금후 가령 조·일 국교정상화 교섭을 추진하더라도 재일동포 문제만은 별도로 남북이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일동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기구 ‘남북공동위원회’의 설치를 남측이 북측에 제의할 것을 검토해야 한다. 그에 앞서 재일동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구를 한국 국회 내에 설치하자는 구체적인 제의도 검토해야 된다.”(1992년 1월 31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발행, 제1회 세계한민족학술회 논문집, 해외교포문제연구소 1999년 1월29일 교포정책포럼 논문집 참조)

빼앗아 갈 수 없는 것
이상은 16년 전에 발표한 내용과 제언(재일동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기구의 설치)이다.
결국 통일조국을 염두에 두고 재일동포문제만은 남북과 재일동포의 협력강화를 구축하면서 대일교섭을 해야 된다는 탈냉전 구조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다행이도 10·4 선언 제8항은 ‘해외동포를 위하여 협력을 강화(·은 필자)’해나가기로 했지만 일본 당국이 끈질기게 한국민단과 조총련의 분활 통치를 꾸미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남북의 협력 자세에 대한 기대감보다도 일본정부의 재일동포에 대한 분할책동이 더 우려된다. 남북관계가 가까워지고 재일동포사회의 화합이 이뤄지면 질수록, 일본 정부의 분할통치가 강화·교묘해진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 된다.

사실 재일동포의 화합을 도모한 민단·총련 5·17공동성명이 2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백지화된 것은 한국민단과 조총련, 그리고 우리 민족사회 내부에도 문제가 있지만 오히려 일본 공안 당국의 간섭·개입이 더 문제가 있는 것이다.(자료 15, 16- 2006년 5월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 회의록 참조). 상기 회의 기록에는 “이번 민단·총련의 동향에 구체적 위법행위가 있을 경우, 엄정한 대처를 하겠다”(일본정부 공안당국 고바야시(小林)답변)고 하고 있다.

총련은 일본의 파괴활동 방지법(破壞活動防止法)의 적용 대상 단체로서 민단과 화합한다는 것은 때로는 민단도 같은 파괴활동 방지법의 대상 단체로 취급한다는 압력이다. 오랫동안 갈라졌던 가족들이 오랜 만에 함께 모여 화목하게 살아보려고 하는데 그 가족이 테러 가족도 아니고 자식들을 알카이다 협력자로 키우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일제 통치하 민족자결권을 충분히 행사하지 못한 것은 지나간 일로 하더라도 독립된 지 벌써 환갑이 지난 지금, 자결권 하나 올바르게 우리의 것으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은 나라와 민족이 갈라지고 있기 때문에 그 틈을 타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간섭하게 되는 것이고 재일동포역시 일본의 분할과 동화정책을 이겨내지 못하고 몸부림치게만 되는 것이다. 일본의 국익 앞에 재일동포는 길거리의 개미처럼 일본이 결심만 하면 언제라도 짓밟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차 가령 재일동포가 일본에 영주하고, 또는 반대로 세계 어느 나라에 마음대로 이사할 수 있고, 국적과 이름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고, 모든 민족이 화목하게 공존할 수 있는 풍요롭고 성숙된 국제사회를 맞이해도 통일된 조국국적을 가지고 뿌리와 정체성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성씨(姓氏)’를 사용하고, 한민족으로서 생활하고 살아나가겠다는 튼튼한 국가관, 개방된 민족관, 흔들리지 않는 뿌리 의식을 가져야 된다. 재일동포가 가정이나 학교·사회에서 올바른 교육을 받고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나가면 새삼스럽게 민단과 총련이 재일동포의 화합을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않아도 재일동포가 일본 땅에 살고 있는 그 자체가 벌써 화합이며 통일인 것이다.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시인 이상화)라고 빼앗긴 다음에 한탄하지 말고 빼앗기기 전에 ‘빼앗아갈 수 없는 것, 빼앗지 못하는 것’을 우리 자신이 온 몸으로 갖추어야 된다.

그것이 바로 일본 공안 당국의 탄압·간섭·개입을 막을 수 있는 길이며 오히려 공안 당국의 활동이 일본 사회를 나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고, 일본 사람까지 살기 어려운 사회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의 동화교육·분할정책·재일동포를 둘러싼 동화 환경이 심각한 까닭으로 반동화·민족교육이 10·4선언 제8항에서 구성될 협의기구·남북공동위원회에서 진지하게 검토될 것을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육지의 ‘개’와 바다 ‘게’


육지의 ‘개’
6자회의·북핵문제가 풀어지게 되면 정치일정은 북미·북일 수교교섭으로 옮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계속 이대로 한일 양국이 재일한국인의 65년 법적지위를 유지한 채, 조일(朝日) 수교 시 재일조선인의 법적지위가 체결되면, 결국 재일동포의 동향은 재일한국인과 재일조선인, 그리고 양쪽에 납득하지 않는 흐름, 소위 통일을 지향하는 사람으로 갈라지게 됨으로써 오히려 남·북·일이 재일동포의 분단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자료10 재외동포신문 2005년 1월1일 참조)

또 하나의 흐름은 남과 북 모두와 인연을 끊고 일본으로 귀화하는 동화동포가 늘어나는 현실을 직시해야 된다. 벌써 귀화 인구가 30만 명에 이르고 있다. 100% 가까이가 일본식 이름으로 바꿔 살고 있는 까닭으로 한민족의 표시가 나타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성’을 바꾼 사람을 “개보다 못하다”라고 비웃지만, 일본에서는 “개는 사흘을 기르면 은혜를 잊지 않는다”라고 귀여움을 받는다. 도쿄(東京) 중심지를 달리는 철도 시부야역(澁谷驛)앞에는 ‘추깬아찌꼬(忠犬八公)’ 동상이 세워있는데 주인에게 충성을 바친 동물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 귀화동포들은 귀화한지 수년이 지났으니 그들은 일본에 큰 은혜를 느끼게 된다.

일어사전에는 ‘개’는 앞잡이·첩자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 일본 이름으로 귀화한 동포 30만 명은 일본의 ‘개’→‘앞잡이’가 되어버린 것인가. 귀화동포가 아직 우리 ‘동포’인지, 일본 ‘개’가 되어버릴 것인지 일어사전에도 우리 국어사전에도 답이 없다. 답은 본인 마음속에 숨어 있다.

바다의 ‘게’
1965년 한일수교와 동시에 체결한 한일어업협정을 계기로 현해탄에 그어놓았던 ‘평화선’은 철폐되었고 한·일간에 어선나포사건은 없어지고 한·일간의 어업질서는 확립되었다. 물론 한·일 양국은 어종·어획할당량·조업구역 등에 관해서는 어업협정 및 한일어업위원회의 협의결과를 존중, 해양 생물자원의 보호에 관해서도 한·일간에 별다르게 큰 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1998년 1월 일본 어민들의 이익과 권리를 대변하여 1965년 체결한 어업협정을 한국정부에 파기하겠다고 통보하고 그 후 수차례의 교섭을 통해 새로운 어업협정(신 어업협정)을 체결하였다.

일본은 UN 해양법조약에 비추어서 신 어업협정을 요구했다고 변명하지만, 문제는 아무런 분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 측이 먼저 65년 어업협정 파기 선언을 하고 신 어업협정까지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재일동포는 1985년 직접 지문거부운동(1985년 8월까지, 한국민단·조총련 합쳐서 15000명 거부)을 통해 지문제도를 철폐하고(지문제도는 2007년 11월20일 부활했음), 91년 문제에 접어들면서 65년 법적지위 파기→신 협정 체결을 요구했지만 결국 ‘91년 각서’로 정치타결 됐으며, 재일동포의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후일로 미루어졌다.(注14)

우리는 일본 정부가 어민들의 생활권을 중시하고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에 살고 있는 해양 자원 바다 ‘게’를 확보하기 위하여 65년 어업협정을 파기하고 신 어업협정까지 체결시킨 일본의 외교 교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는 바다에서 살고 있는 ‘게’까지 나라의 외교력을 동원해서 보호했으나 한국은 자국민이 60만 명이 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외교력을 충분히 행사하지 못하였던 것인가. 지금도 그 자세는 변함이 없다.(자료 17 통일일보 2005.2.23 참조)

재일동포가 ‘게’보다 맛이 없었던 것인가. 한국이 외교경험이 부족했던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일본정부가 재일동포의 동향과 바다 ‘게’의 생태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유가 있었다. 한국이 재일동포를 국가안보차원에서 보는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일동포가 남북의 공동자산·해외의 ‘우리 공간’, 현해탄이 한일공유자원·공동개발·우호해협, 서해가 남북이 공동으로 지켜야 되는 평화바다라는 사고방식으로 발상 전환을 할 때가 아닌가. 재일동포가 일본의 ‘개’가 되지 않고 바다의 ‘게’ 이상의 대접을 받는 날이 언제 올까? 10·4선언 제8항이 제일 먼저 할 일이 아닌가.
왜! 그들은 과거도 한민족이고 지금도 한민족이고 미래도 한민족이니까.


제언


일본위원회와 재일동포
재외동포를 위한 협의기구·남북공동위원회는 거주국마다 사정이 다름으로 지역위원회(이하 일본위원회)가 필요하다. 일본위원회와 한국민단·조선총련의 협의기구, 두 협의기구의 협력 강화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디딤돌이며 또한 징검다리며 초석이 될 것이며 역사에 남는 이 위업은 일본위원회와 재일동포사회, 특히 한국민단과 조선총련이 맡아서 할 일이며 우선 다음 6개의 항목의 합의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1. 재일동포의 정의를 정립
2. 재일동포의 국적과 남북국정참여에 관한 합의 강구
3. 남북자유왕래 실천에 관한 합의 작성.
4. 재일동포민족교육에 관한 합의(통일교과서 작성)
5. 일본정부에 대한 남북공동 대처에 관한 연구
6. 베이징 올림픽 재일동포 통일 응원단 구성에 관한 합의.

경매문제
지금 일본에서 조선총련 사태(경매문제)와 일본사람 납치문제는 조, 일 두 나라의 가시가 되고 있지만, 재일동포의 65년 법적지위문제는 한·일·조 세 나라의 가시라고도 볼 수 있다.

세 나라를 둘러 싼 정치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가시는 뽑아내야 된다. 65년 법적지위의 해결방안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언급해왔다. 일본사람 납치문제는 일본국내 채무·채권 문제이며 조·일 수교와 동시에 해결할 수 있지만 조선총련 건물 경매문제는 조·일 수교와 관계없이 남북의 협력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大東文化大學 나가노신이지로(永野愼一郞)교수는 “김정일 총서기가 재외동포문제 중에서 가장 골치가 아픈 것은 조선총련문제다. 일본정부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 해결에는 한국의 협력(·은 필자)이 필요하다”라고 한국의 협력 자세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면 한국의 협력은 무엇인가. 이 협력에 관해서 조선총련 건물(경매)과 연결시켜서 남북이 공동으로 대처·해결할 수 있는 필자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남북협의기구·남북공동일본위원회가 남북공동기금으로 경매물건 낙찰(또는 매입)후, 일본위원회와 한국민단·조선총련의 삼자 협의 하, 낙찰(매입)물건을 전 재일동포가 비정치·범민족 적이며 일본지역사회와 우호·친선을 도모할 수 있는 건물로 활용할 수 있게끔 긴급 협의할 것.


남과 북은 오랫동안, 재외동포를 보호(한국헌법 제2조, 고려연방제 10대 시정 제8항)해 왔다.
보호 한 것도 많았지만 가지고 간 것도 많았다. 때로는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려고 국가이기주의가 우선 했을 때도 있었다. 재일동포는 ‘보호’보다도 ‘자립’을 원했던 것이다.
보호 받는 것보다도 공출한 것이 훨씬 많았을지도 모른다. 조선청련 건물의 경매 사태는 그 결과 일지도 모른다. 일본 속담에 “ 자식은 부부의 꺾쇠 (집을 지을 때 나무와 나무를 연결시키는 건축재료)” 라는 말이 있다.

재일동포가 남과 북의 꺾쇠가 될 수 있게 경매물건을 남북협력으로 해결, 전 재일동포가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재일동포의 화합과 통일 그리고 갈라진 남북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구축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실례가 된다. 김구 선생은 통일조국의 문지기가 되고 싶다는 말씀을 남기고 돌아가셨지만, 나는 남북의 꺽쇠가 돼서 죽고 싶다. 그것도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꺽쇠가 아니고 양쪽 손을 꼭 잡아서 칼이 들어와도 끊기지 않는 그런 꺽쇠가 되고 싶다. 왜? 남북은 재일동포의 부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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