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커뮤니케이션 박사]

“What happened then?”- 우리말로 옮기면 “그래 그 다음 어떻게 됐습니까?”이다. 영어사용 국가의 경찰, 검사, 판사, 변호사들이 가해자, 피해자, 증인 등을 심문할 때 예외 없이 먼저 묻는 질문이다. 그들은 사건의 경위에만 관심이 있지 뒤에 숨은 사회적 의미는 일단 알 바가 아니다. 사정 당국과 법정의 관심은 1차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혀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하는 일이다.

사건의 경위에 치중하는 언론의 사건보도도 비슷한 데가 있다. 기자는 사건을 좇아 이 분야에서 잘 쓰이는 말로 5Ws 원칙에 따라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등을 충실하게 취재해서 기사로 올린다. 행사를 알리는 행사보도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것만 잘 하는 언론을 우수한 언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건은 늘 일어나느니라. 영어의 “Accidents will happen”이란 말이 그 뜻이다. 그것들을 충실히 알리는 사건보도와 사람이 모이면 의례 하게 되는 행사의 보도는 중요하지만, 문제해결이나 개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 뒤에 숨은 사회과학적 의미, 즉 그것들을 일어나게 하는 여러 숨은 변수와 세력 간의 역학관계를 분석하여 알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언론의 궁극적 사명이며 역할이다.

모든 분야는 자체적으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영역이 넓고 정책적인 사항이라면 먼저 언론에 의한 공론화가 이뤄지고 그게 책임 있는 기관의 결정과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바로 이슈보도다. 그런데 이런 류의 보도는 대학이나 연구소와는 달리 체제상 하루, 주, 길어야 한 달 단위로 기사를 내보내야 하고 재정과 인력이 열악한 대부분의 언론사가 잘 해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특정 언론에 대한 우열의 평가를 사건과 행사 보도가 아니라 이슈보도의 질과 양을 보고 하게 되는 이유다.

기사의 공정성, 객관성의 논란이 늘 따라다니기는 하지만 사건보도와 행사 보도는 이슈보도에 비하면 훨씬 제작하기 쉽다. 신입기자들이 일정기간의 훈련을 거치면 전자에서는 거의 숙련에 달하는 걸 보면 안다. 큰 격차가 일어나는 것은 사설, 해설, 칼럼, 탐사보도, 기획보도 등으로 나타나는 이슈보도다. 사건과 행사의 나열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사회적 의미를 찾고 변화지향적인 언론 내용을 만들자면 글쓰기와 기사 작성과 말 재주는 기본이지만 그것만으로 안 된다. 이에 더하여 기자의 지식 체계, 경험, 통찰력 등이 바탕을 이뤄야 한다.

나는 왜 언론에 대한 원론적 글을 지루하게 여기에 쓰고 있는가? 세계한인언론인대회에 대하여 한마디 쓴 소리를 하고 싶어서다.

두 단체로 나뉘어 각각 매년 서울에서 시작, 지방의 휴양지로 옮겨 진행되는 이 대회는 벌써 10여 년째 이어져 온 것 같다. 해외 모든 지역에서 한국어 언론을 한다는 인사들을 정부 돈 (궁극적으로)으로 어렵게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그런 대회라면 적어도 척박하다 못해 참담한 현지 한인 언론의 실태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장기적인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터인데 그런 것 같지 않아서다.

직접 참석해보지 안았으니 결과가 나오는 언론의 보도를 봐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하다. 대회에 대한 머리기사는 언제나 국무총리의 개막 축사, 장관, 큰 언론사 사장, 기관장들의 국내 정세나 통일 관련 강연, 누구누구 실세가 주최한 만찬과 리셉션 이야기다. 이런 정보들은 SNS가 발달한 요즘 해외 어느 곳에서나 받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교포 언론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는데 어떤 토의와 의견이 오고 갔는지 별로 알려지는 게 없다. 여기에도 군사정권 시절 해외 인사들을 불러 하던 전시 행정의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해외 한인 언론의 척박하다 못해 참담한 실태라고 했으니 아래 몇 가지 짧게라도 써보겠다.

(1) 대부분 활자매체인 해외 한인 언론은 말도 못하게 영세하다. 좁은 시장을 보고 큰 투자를 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 지역에서 난립되어 있어 그렇다. 언론은 레스토랑이 아니다. 그 넓은 분야 사건을 다뤄야 하고 생활정보를 제공하며 이수를 제기해야 한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의 한두 개 비교적 큰 신문이 예외일까. 말고는 모두 제작을 맡는 기능직 한 두 명을 빼고 편집국 인원이 오너 포함 2, 3명의 기자면 잘 나가는 편에 든다. 그러니 신문의 내용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⓵고국 언론에 난 기사의 재판인 현지 실정과는 비교적 거리가 먼 뉴스, ⓶거주국 신문에 난 뉴스의 번역, ⓷커뮤니티 행사 기사로 거의 전면을 차지한다.

(2) 교포신문은 지역신문의 일종이므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행사들을 모두 알리고 보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인력이 모자라 비교적 쓰기 쉽고 광고주나 주최측에 선심용으로는 몰라도 내용 없는 행사 기사를 늘려 1.2면의 톱을 차지하게 하는 것은 그와 다르다. 유명무실한 단체장 선거, 리셉션, 체육과 놀이 행사, 대사, 총영사가 거주국 관리를 만났다는 게 매회 뉴스의 주요 메뉴이고 고국에서 정치 실세가 다녀간 게 그 해 10대 뉴스에 들어간다면 중고등학교나 기업의 회보 수준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혹자 왈 좁은 커뮤니티 안에 큰 아젠다와 이슈가 없다고? 그렇지 않다. 찾아낸다면 얼마든지 있다. 취재하고 쓰는 게 쉽지 않을 뿐이다. 두 문화 속에서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구성원에게 길을 밝혀주는 교육적 심층보도가 늘 필요하고, 그들이 모범 시민으로써 거주국 사회에 뿌리를 잘 내려야 한다면 그 커뮤니티에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그 역할을 잘 할 주체는 교포언론 말고는 없다. 그게 교포언론의 존재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리소스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고국에서 찾아오는 고위 관리나 학자들은 교민들을 모아 놓고 거주국에서의 정치 참여, 통일에 대한 여론 형성 등 고국에 대한 교민 사회의 기여를 역설하지만 그건 먼저 커뮤니티 안에 지적 구심점이 생겨야 될 일이다. 교포언론이 앞장서야 할 기능이지만 이 또한 어림 없는 푸념이다.

일본, 중국의 경우와는 달리 서방 지역 한인들은 현지 외국어가 약해 매체이용은 거주국보다 한국어 매체에 더 매달린다.. 그렇다면 어떤 학자가 말한 대로 이들은 고국과 거주국 어느 쪽에도 뒤떨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집단으로 전락 될 수 있다.

(3) 전문인의 양성은 더 심각하다. 교포신문은 고국의 언론의 일부이다. 하지만 훈련된 기자가 열악한 대우를 보고 해외로 올 리가 없고 현지에서 초보자를 영입하게 되는데 대부분 오래 머물지 않는 이들을 훈련할 도리가 없다.

교포언론의 실태에 대한 이때까지의 서술은 너무 부정적이라는 반박을 들을 줄 안다. 그러나 이 글은 3자의 입장에서 적당히 쓴 게 아니다. 실은 나는 1982년 호주에서는 처음인 한국어 신문을 만들어 광고부터 기사 쓰기와 운영을 전부 맡아 8년간을 고군분투하였다. 나중 지인에게 넘겨 준 후에도 편집고문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칼럼을 쓰면서 여러 교포신문의 후배 기자들과 동고동락을 해왔으므로 이 분야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게 무슨 자랑이겠는가. 우리나라에서 저명한 언론인이라면 몇 개 대 언론사의 간판급 시사평론가, 칼럼니스트, 앵커여야 한다. 군을 마쳐야 해 장교로 4년 반을 보내고 언론사에 늦게 들어간 게 60년대 중반이다. 처음 기자실을 나가 대명천지에 이런 곳도 있는가 깜짝 놀랐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어디 있나. 그러나 돈은 떳떳하게 벌어야 하는 것 아닌가?

먹고 살아야 해 한 동안 갈등을 겪다가 고국을 떠나게 되었고 밖에서 초라하게 보일지언정 배운 대로 언론을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교포신문을 시작했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한국인들은 속이야 어떻튼 힘이 있고 큰 것을 쳐주는 민족이다. 그래서 권력과 돈과 기술과 지식이 서울에 대거 몰려 있다. 그런데 중앙이 본받을 게 못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게 오늘 한국이 당면한 문제다.

5.16 이전은 잘 모르겠고, 이후 언론인으로서와 그 자리를 발판 삼아 출세한 인사라면 초년 시절 십여년은 기자실을 드나들었을텐데 이런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과거를 모두 덮어둔다. 뮬론 언론만이 아니다. 정치, 행정, 교육 모두 그렇다. 한국 사회의 개혁은 밖에서와 아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보는 이유다.

영세한 교포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적어도 언론인대회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는 모임이라면 그저 연례 ‘서울 나들이’나 잔치에 가는 게 아닌 냉정한 마음으로 참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