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일본의 양심적 언론지 중의 하나인 『도쿄신문(東京新聞)』의 1월 28일자 조간에 일본 축구팀의 리오데 쟈네이로 올림픽 출전 결정을 두고 1936년에 ‘베를린의 기적’을 일으킨 것처럼 80년 뒤의 리오데 쟈네이로 기적을 기대한다는 논설이 실려있었다.

‘베를린의 기적’이란 단어를 본 순간 눈에 반갑게 들어온 까닭은 바로 필자가 몇 년 전에 한일 양국에서 출판했던 책 『한일 교류의 기억』속의 칼럼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가움도 잠시, 베를린의 기적에 대한 소개는 있어도 정작 그 기적을 일으켰던 중요 멤버 중에 조선인이 있었다는 내용은 없었다. 물론 그를 얘기하면 리오데쟈네이로 올림픽 출전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수 없었기에 회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좀 씁쓰레했던 것은 아무래도 필자가 근대사 연구를 통해 그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도쿄신문(東京新聞)』에 게재된 내용을 소개하기로 하자.

“베를린의 기적. 그렇게 전해지는 축구 시합이 있다. 1938년 8월, 베를린 올림픽의 일본 대 스웨덴전. 누구도 우승후보인 스웨덴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당시의 일본은 국제대회경험도 없었고, 전술, 기술에서도 세계 수준은 아니었다. 전반전 일본은 2대 0으로 리더를 빼앗겼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추월하여 5분을 남겨놓고 드디어 역전. 그대로 승리하였다. 엄청난 이변이 일어난 것이었다. 스웨덴 방송 아나운서는 이렇게 중계를 했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일본인! 일본인!...’ 그 아나운서는 그 뒤 ‘야파-나(일본인)’라는 별명이 붙었다. 『ベルリンの奇跡　日本サッカーの煌きの一瞬』（竹之内響介・小社刊）에서 교시를 받았다. 이 시합도 종료 직전의 결승골이었다. 남자 축구의 아시아 선수권. 일본은 이라크전에 승리하고 리오데 쟈네이로 올림픽 출전을 정했다. 멋진 게임이었다. (중략) 베를린의 기적을 일으킨 일본 대표도 본실력을 드러낼 때 까지는 고전이 계속 되었다. 직전의 독일 2류 팀과의 연습시합에서도 연패. 거기에서 수비를 크게 고쳐서 기적으로 이은 것이다. 어느 세상에서도 승리의 뒤에 있는 것은 대응, 수정. 덧붙여서 진취적인 발상일 것이다. 80년 뒤의 리오데 쟈네이로의 기적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2016.1.28, 筆先에서)

물론 이 기사는 올림픽 출전 아시아 우승팀으로 결정나기 전까지 아사히TV 기자조차 역대 일본 올림픽 대표팀 중 최약체라고 말했던 이번 일본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며, 기적을 꿈꾸는 한 사람의 팬의 간절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베를린의 기적에는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일궈 온 실력을 발휘하며 맹활약을 했던 한국 축구의 선각자의 활약도 있었음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베를린의 기적이 일어난 것은 1936년 8월1일.
히틀러 정권이 아리아 민족의 위신을 걸고 개최한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는 인지도도 기술도 낮았던 일본 축구팀이 참가하였는데, 하필이면 그 첫 상대가 강호 스웨덴 팀이었다. 우승 후보라고 평가받던 팀과 시합을 하게 된 약체 일본팀의 승리란 기대할 수 없던 터라 일본의 신문기자들조차 취재를 단념하고 구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강한 정신력과 결속력으로 이겨야 한다는 의지로 3-2의 역전승을 거두며 소위 ‘베를린의 기적’이라는 이변을 일으킨 배경에는 한국 축구의 대부라 불리며 Starters로 활약한 김용식(金容植、1910~1985)의 투혼어린 활약이 있었고, 그의 투지력은 팀 전체에 강한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베를린 올림픽 출전 선수 선발이 있던 1935년 당시, 전일본종합축구선수권 대회 겸 올림픽 파견 선발전, 메이지진구 대회에서 경성축구단이 우승할 정도로 조선의 축구 실력은 아시아 정상에 올라 있었으나 민족적 차별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던 당시, 조선축구협회장 여운형의 민족차별 시정 항의에도 불구하고 일본축구협회는 화려한 기술과 뛰어난 실력의 축구 천재라 불린 김영근(金永根)과 김용식 두 사람만을 선발하였다. 그러나 김영근은 경성축구단이 “우승한 조선 팀에 있어서도 개인적으로 우수한 플레이어는 겨우 김영근, 김용식 등 2~3명 뿐”(일본의『제11회 올림픽 대회 보고서』)이라는 최강팀에 대한 비하에 불만을 표하였고, 중국 텐진에 평양대표팀원으로 원정을 가야한다며 올림픽 대표팀 합숙을 사퇴하였던 것이다.

한편, 김용식은 육상경기, 피겨 스케이트 분야에서도 우승하는 등 끊임없는 노력으로 명성을 날렸고, 자신의 축구를 통한 세계적 플레이를 보이며 베를린의 기적을 일으키는데 주요 멤버로 활약하였다.

당시 일본의 축구는 주로 대학간 경기였고, 올림픽 축구 대표로 대학생 선수를 선발하였는데, 일본 내의 관동 지역과 관서 축구협회의 대립이 이어졌고, 아시아 정상의 실력을 보이던 조선 축구협회와 일본 축구협회도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렇기에 관서지역 학생들이 전원 사퇴를 하였고, 민족적 차별로 우수한 실력을 보였던 경성축구단에서도 김용식 한 사람 만이 선발되게 되었던 것이다.

최종 대표를 정하던 1936년 4월, 와세다대 학생 10명, 도쿄대 3명, 게이오대 1명, 문리대 1명이라는 관동지역의 대학생 15명에 조선 보성전문학교 김용식이 출전 대표선수로 확정되었다. 그렇기에 김용식의 어깨에는 개인의 축구 실력은 물론, 일본팀에서 빛을 발해야 하는 조선인 축구선수로서의 민족적 사명감도 실려 있었다. 김용식의 불굴의 투지에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은 물론, 가정적 환경도 큰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용식은 1910年7月, 황해도 신천에서 김익두 목사의 3남1녀의 셋째로 태어나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당시 일본은 신사 참배를 통한 일본 제국주의에 동화를 강요하였고, 김익두 목사는 일본의 조선신궁 참배를 거부하다 1925년에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고문 등을 받으며 옥살이를 반복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항일 의식의 종교인이었던 김 목사가 서울로 부임하게 되자, 김용식은 조선 최강의 축구실력을 떨치던 경신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축구를 하게 된다. 하지만 1929년에11월에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한 일본인에 분노한 광주학생운동의 여파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경신중학교에서도 김용석과 김영근, 채금석 등의 축구부 선수들 중심으로 항일 데모가 전개되면서 경찰에 지명수배를 받게 된다.

그 결과, 김용식과 김영근, 채금석, 김성태 등의 축구부 10명이 퇴학처분을 받고 명문 경신중학교 축구부는 해체하기에 이른다. 김용식은 퇴학 후, 1930년 당시 광주학생운동 관계로 퇴학된 조선인 학생들을 대거로 받아들였던 일본 교토 중심가의 료우요우(両洋)중학교(현재의 료우요우 고등학교 전신)에 2개월간 다닌다.

이 학교에는 당시 약 100명에 가까운 퇴학생들을 받아들였는데, ‘동심초’ ‘산유화’ 등의 작곡자이자 서울대 음대 교수를 지낸 요석 김성태 역시 경신중학교 축구부 멤버로 항일 데모에 참가했다 퇴학을 당하여 료우요우중학교에서 졸업을 하였고, 소설가 안수길도 경신학교서 만세운동으로 퇴학을 당한 뒤 료우요우중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이 학교는 1915년 당시의 제국대학교 입학 예비학원으로 설립했다가 1925년에 료우요우중학교로 개설하면서 학교 운영상 필요했던 학생 확보를 광주학생운동으로 인해 퇴학당한 조선인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었다.

필자가 광주학생운동 직후의 료우요우중학교 입학 조선인 학생들 조사를 위해 학교 부근의 상점에서 당시를 기억하는 몇 분들과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는데, 1930년 전후로 조선말로 떠드는 학생들이 학교 주변에 꽤 있었다는 증언을 들은 바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광주학생운동을 계기로 일본에 대한 저항운동이 강해지면서 퇴학을 당한 학생들이 교토로 모이게 되었고, 그들 중에는 일본의 노동운동에 참가한 학생들의 움직임도 당시의 신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료우요우 학원 앞에서 필자 ⓒ이수경

김용식 역시 퇴학당한 축구부 친구들과 교토의 료우요우중학교에 잠시 학적을 뒀으나 축구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어서 평양의 숭실전문학교 축구부에 입학한 뒤, 경신의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1932년에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전신)에 재입학하여 1937년까지 재적하였고, 1935년에 전경성축구단 멤버로 출전하여 제15회 전일본종합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

또한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로서 1,500미터 및 10,000미터 2종목에서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그의 스포츠 선수로서의 투지력과 노력의 배경에는 나라를 빼앗긴 민족으로서, 압제를 횡행하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 지배정책에 대한 강한 저항심이 저변에 깔려있었음은 그의 발자취에서 쉬이 찾을 수 있다. 그러한 의식이 그를 일본 대표팀으로 뛰게도 만들었고, 비록 승리는 Nippon으로 표기되었으나 나라 잃은 약소민족으로서 세계에 존재를 알릴 수 있는 베를린의 기적에 혼신을 다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이리라.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에서 스웨덴전 및 이탈리아 대표전 2 시합의 주전 멤버로 활약하였고, 베를린 올림픽 후에도 일본 대표로서 축구 실력을 발휘하였던 김용식은 해방 뒤, 1948년의 런던 올림픽 한국대표 선수 겸 코치로 출전하였으며, 1952년 10월의 고려대 OB팀에 참가한 시합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를 했다.

2년 뒤엔 FIFA월드컵 한국대표 코치를, 그 뒤엔 프로 팀인 할렐루야의 감독 등을 지냈고, 제1회 대한민국 체육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1971년에 퇴학처분을 받았던 경신중학교로 부터 명예졸업생 졸업장을 받았고, 1985년의 사후에는 체육훈장 맹호상을 받았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 월드컵 기념관에는 그의 흉상이 세워져 있고, 현재 그는 경기도 포천군 내천면의 서능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다.

비록 공 하나를 뺏고 뺏기는 축구 경기지만, 그 시합에 약소국가들은 민족의 역사와 자존심을 걸고 축구전쟁을 치뤄왔고, 지금도 국가간, 특히 한국은 오랫동안 식민지로 삼아왔던 일본과의 시합에 있어서는 마치 대리전쟁에 임하는 듯한 자세를 보인다.

물론 양국의 언론이 내셔널리즘을 부추키며 시합 관전에 앞서 여론을 아우르는 구조가 존재하지만, 아직도 역사 인식 문제로 외교 갈등이 끊이지 않는 만큼, 한일전 축구 시합은 다른 어떤 나라 보다 민족주의가 앞세워지는 국가전이 된다. 그렇지만 지나친 반일 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되려 배타적인 한일관계를 극대화시킬 우려가 있다. 해결해야 할 역사 문제는 절대적 대화를 통한 해법이 동반되어야 하고, 지나친 전체 부정의 태도는 되려 양심적 시민 교류조차 저해하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확대될 경향이 있다.

5000만 인구 대한민국의 2015년도 방일 관광객이 400만임을 감안한다면 한일 양국은 글로벌 파트너로 협력적 교류관계(시너지효과)를 유지하며 끈질긴 대화노선을 통한 역사 및 외교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눈 앞의 총선 때문에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쓰는 격은 되려 후유증을 증폭시킬 뿐이다.

언론 또한 강한 민족주의 조장으로 독자층 확보만을 염두에 두는 상업주의에 머물지 말고, 보다 의식있는 사회 수준을 조성하며 시대를 견인하고 한반도에서 세계를 잇는 글로컬 여론 형성에 공헌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 준다면 분명 지혜롭고 바람직한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을까? 공격만 해 대는 구조를 양산한다면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와 뭐가 다를까? 적어도 지구촌의 선진대열에 서 있는 한일 양국이라면 좀 더 세련된 상대 존중으로 자문화 존중을 이끌어내는 훈훈한 모습에 자긍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평소 양심적 언론으로 생각했던 『東京新聞』의 ‘베를린의 기적’의 글이 식민지의 울분을 억누르며 참가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 선수의 입장을 무시한 듯 하여 필자로서는 글쓴이의 배려 부족이 씁쓰레했던 것이다. 아직도 온갖 아픔의 기억과 모욕 속에 버티고 있는 위안부 여성들의 억울했던 삶을 은폐시키려는 아베 정권의 위안부 정책과 오버랩 된다면 필자가 식민지 공간에 지나치게 머뭇거리고 있는 탓일까?

적어도 축구 전문 블로거처럼 사실을 담담히 소개할 언론정신이 엿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시 조선의 축구에 대해 적은 축구 전문 블로거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1938년에는 전관동(全関東), 전관서(全関西), 전조선(全朝鮮)이 대전하는 3지역대항전이 치러진다. 전 조선은 12월 23일 전관서, 12월25일 전관동과 남쪽 고우시엔(甲子園)운동장에서 대전하며, 가운데 하루의 강행 일정에도 불구하고 전관서에 3-1, 전관동에게 3-0으로 압승했다(전관동 대 전관서는 다음 해인 1939년 2월 5일 진구우(明治神宮)에서 대전하여 3-2로 전관동의 승리). 2년 전의 올림픽이 실질적으로는 전관동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조선대표」는 세계 대회에서도 승부의 승산이 있었던 팀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상비군」방식의 대표선발이나 지역교류의 활성화는 일중(중일)전쟁의 발발과 그 수렁텅이, 게다가 계속되는 태평양 전쟁으로 인하여 모두가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렸다.]( 蹴球本日誌 공식 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