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커뮤니케이션 박사]

한국은 거기에 사는 한인들에게는 대한민국이고 거기를 떠나 해외에 사는 한인들에게는 고국입니다. 대한민국과 고국에 대하여 한국인이 갖는 시각과 감각은 넓게는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로 나눠질 것입니다. 부정은 모두 나쁜 건 아닙니다. 부정이 없고 긍정만 있었으면 세계나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했겠습니까?

곁에서 보면 대한민국과 고국에 대하여 긍정적 태도와 감각을 갖는 한인들은 대개 발전에서 자기 몫 보다 더 큰 과실(果實)을 따먹은 층이고 반대로 부정적인 한인들은 거기에서 소외된 층인 게 보통이 아닌가 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사물을 올바르게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국민 화해와 통합은 어렵고 반목과 분열과 갈등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된 나라와 사회를 영어로 Divided country 또는 Divided house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게 새로운 말은 아닙니다. 이미 한국은 남북으로 갈라진 지 오래인 진짜 분단국가(Divided country)입니다. 그런데 이 두 동강이의 반쪽인 대한민국 안에서도 종북이니 뭐니 하는 분리 세력이 있다고 들리고, 정치인들은 버젓이 국가가 아니라 호남, 영남, 충청 등 지역으로 기반을 나눠 권력을 잡으려 하니 잘못하면 나라가 둘이 아니라 셋, 넷으로 갈라질 수도 있습니다.

집안이 갈라졌을 때 합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완력이 아니듯 나라의 통일이나 지역간 화합도 무력이나 감정적 결단보다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말로만 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국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써 서울에 본부를 두고 세계 전 지역 한인들을 결집 시키는 민주통일자문협의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기구 자체가 평화통일을 앞당길지는 의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평화 통일은 누가 봐도 모든 면에서 우리의 체제우위가 절대적이어서 저들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눈 녹듯 스스로 무너져 내릴 때 (meltdown) 가능할 것입니다. 학자들의 견해가 다양하지만 저는 독일의 통일이 이렇게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물량에서는 몰라도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직 멀었거나, 아니면 영영 그렇게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힘있는 자, 가진 자들의 아집과 탐욕으로 빈부와 기회의 격차가 너무 커져 사회통합과 국민간 일체감에 있어 약체라면 북한에 대하여 상대적으로는 몰라도 절대적 체제 우위는 어림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한도에서 저는 고국에 대하여 비판적입니다. 고국의 발전으로부터 재미를 봤거나 못 봐 그러는 차원은 아닙니다.

해외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대한민국을 보는 외국인들의 시각도 서두에서 말한 것과 비슷합니다. 그들 가운데는 대한민국을 시장으로만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벌이가 잘 되면 한국은 잘 하고 있는 나라라고 추겨 세웁니다. 왜 한국인들은 시끄럽게 떠드냐고 말합니다. 또 그들은 한국을 자국의 국익과 안보를 위한 전략 면에서 이해합니다. 그들과 긴밀하게 협조하되 우리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잘 판단하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윤리적 행태가 관건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도 문제는 많으나 한국의 그것은 엉킨 실타래에 비유할만합니다. 이번 선거와 돌아오는 대선은 또 다른 시금석이 될 것이나 지금으로 봐서는 암울합니다. 단칼에 풀 도리는 없겠고 어디에서 출발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장기적인 안목입니다. 그게 잘 못되면 문제해결은커녕 갈수록 악화되기 마련입니다.

생뚱맞게 들리겠지만 해결의 열쇠는 국민의 윤리적 행태에 있다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아래에서 이 점을 집중적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한 사회의 장래를 결정하는 거시적 여건은 지정학적 위치, 부존자원, 인구, 제도(정책과 법과 기구), 전문 인력, 국민행태라고 생각합니다. 앞의 세 가지는 거의 바꿀 수 없는 상수이고 나머지 셋이 변수입니다.

앞의 불리한 세가지 주어진 조건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그간 경제만은 잘해왔다고 봅니다. 우리만이 경제를 언제까지나 잘 크게 성장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과거 민생을 돌보지 않은 정부가 어디 있었던가요? 잘 못 한 것은 너무 벌어진 부와 기회의 격차, 그에 따른 국민 간 연대의식의 부재인데 그건 경제가 아니라 양심과 분배의 문제이며 역시 국민행태의 문제입니다.

서구의 발전 모델을 그대로 도입한 한국은 정책과 법과 기구 등 제도는 거의 선진국 수준입니다. 전문성도 그렇습니다. 전문인 부족으로 친일 관료들을 영입해야 했고 우리대로의 법이 없어 군정청 포고로 일제의 법 규정을 그대로 써야 했던 해방 공간과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미국 박사도 넘쳐나고, 특히 사법고시라는 등용문을 거쳐 출세한 똑똑한 법관 출신이 대부분 나라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어 법 제정과 변론 실력은 1등입니다.

그리하여 한국에도 소득 격차를 좁히기 위한 세법과 다른 제어장치가 선진형으로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불어 살 마음이 없고, 이미 고지를 차지한 특권층이 거기에 올라서 한사코 재산증식을 하겠다면 별수가 없습니다. 이것도 사람의 문제, 행태의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 시켜온 부조리 하나가 부동산 투기입니다.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볼 수 있듯 나라의 지도급 인사들과 일류대학을 나온 대학 교수, 병원장 등 요직에 앉은 인사들과 그의 배우자와 인척들이 위장전입 등 벼룩의 간을 빼먹는 치사한 방법을 마다하지 않고 부동산 시장에 몰리는 사실은 서구 선진국에서는 보기 드뭅니다. 또 다른 국민행태의 문제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한국만큼 교육 제도를 많이 바꾼 나라도 드물지요. 규제 강화 아니면 자율인데 어느 쪽을 해도 잘 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달라지지 않으면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증거입니다.

세계지도를 펴보면 대통령 중심제와 내각책임제 중 어느 쪽을 해도 민주정치가 잘되는 국가군과 잘 안 되어 사회가 불안한 것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 민주주의를 아무나 하느냐고 말했는데 맞는 탄식입니다.

한국의 정당 정치는 더 좋은 사례입니다. 미국과 영국은 100년 이상을 양대 정당이 같은 이름으로 페어플레이를 해 왔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웬 당이 그렇게 많이 생겼고 그렇게 자주 바뀌었을까요? 정치학을 공부한 필자지만 어느 게 어느 건지 기억할 수도 없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공천을 못 받으면 금세 뛰쳐나와 장난감 하나 만들 듯 차리니 그렇게 되는 거지요. 이는 정당제도가 아니라 행태의 문제입니다.

문제의 기술이 아니라 처방

그럼 누가 어떻게 국민행태를 바꿀 수 있을까요? 먼저 지식을 제공하고 길을 밝히는 구심점이 생겨야 합니다. 많은 인문학자, 지식인, 종교인들이 한국병을 각자의 지식과 경윤을 가지고 이모저모로 진단해 왔습니다. 그럴듯한 진단들입니다. 문제는 신문 칼럼과 시론의 형태로 표출되는 그것들이 대부분 현상의 기술(記術)과 묘사와 구름 잡는 철학에 그치기 쉽다는 점입니다. 문제의 기술(description)이지 처방(prescription)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문제 기술의 백일장(白日場)과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인문학적 교양이나 한가한 독서가 아니고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라면 지식은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실증적 자료 수집과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것이어서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런 실천 방안을 대중매체, 특히 텔레비전이 대중에게 확산시키고 계도해 나가는 합동 작전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런 컨센서스가 한국에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태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사회과학자(영미 학자들은 행태과학/behavioral science이라고 부름)가 맡아야 할 몫입니다. 어느 개인 또는 문화 집단, 넓게는 국민의 행동 양식이 뭔가 다르다면 거기에는 그럴만한 과학적 이유가 꼭 있습니다. 행태과학은 그 이유와 원인을 찾아 규명(Explain why people behave the way they behave) 하려는 학문적 방법론입니다. 인간도 자연 현상 같지는 않아도 과학의 지배를 받는 이유는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막강한 한국의 대학과 학자들은 무엇을 하는지. 학자들은 시국 선언이나 단편적이 될 수밖에 없는 칼럼 기고, 방송 출현이나 심지어 정치 입문이 아니라 다른 전문가가 못하는 종합적 연구로 현실 참여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