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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정 / 아시아세미나하우스 이사장
오오우치 가를 이은 모오리 가는 상인(山陰・한반도 쪽), 상요(山陽・태평양 쪽) 10개 국(지역)을 지배하는 추우고쿠 지방의 맹주로서 히로시마를 거점으로 하는 전국시대(戦国時代・보통 1467-1590)의 대영주가 되었다. 모오리 가는 광대한 지역의 지배는 물론, 무역과 해운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강대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세토나이카이 수군을 거의 다 장악하고 있어서 그 서슬푸르던 오다노부나가도 바다의 모오리에는 대적할 수 없었다. 오다노부나가는 결국 생전에 모오리를 굴복시키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케치미츠히데(明智光秀)의 반란으로 오다노부나가가 죽자 모오리를 공격하던 토요토미히데요시는 급거 모오리와 화해를 성립시키고 교토로 돌아간다.
그리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아케치 미츠히데 군을 진압한 후 오다노부나가를 함께 받들던 경쟁 세력을 모두 굴복시키고 천하를 거머쥔다. 모오리도 토요토미 체제하에 들어가 서일본 최대의 영주로 군림한다.
그러나 토요토미가 죽고 토쿠가와 바쿠후가 성립하면서 모오리 가를 둘러싼 상황은 급변한다. 토쿠가와 바쿠후는 지방의 영주를 토쿠가와 가의 혈족이나 처음부터 그 산하에 있어온 “후다이(譜代)”와 그 외의 ‘토자마(外様)’로 구분하여 철저히 관리하였다. 토자마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영지를 부분적으로 몰수하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영지를 송두리째 박탈하여 영주의 자리에서 몰아내기도 했다. 모오리의 경우, 끝까지 토요토미 편을 든 토자마였으니 온통 미운털이 박힐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근거지 히로시마를 비롯해 3분의2 이상의 영지를 빼앗기고 쵸오슈로 밀려나야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영지가 줄어들었을 때(혹은 송두리째 박탈 당했을 때), 제일 먼저 닥치는 시련은 지금까지 거느리고 있던 식솔(무사)들이 길바닦에 나앉아야 하는 실업문제였다. 모오리 가는 식솔들을 잘 돌보아 왔던 것 같다. 아무런 관직도 받지 못한 실업 상태로 쵸오슈까지 따라온 무사도 꽤 많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오리 가는 더더욱 분발해야만 했는지 모른다. “밖에서 잃은 땅을 안에서 찾는” 지혜 짜기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토나이카이 방면에서 대대적인 간척 사업을 일으켰고 특히 미타지리(三田尻・지금의 호오후) 근방에는 염전도 만들었다. 여기서 만든 소금은 일본 각지에 수출했다. 봉건 체제하에서 다른 한에 상품을 파는 것은 ‘수출’이었다. 북쪽 루트(동해-일본해)를 통해 홋카이도(北海道)에까지 수출했다고 한다. 오오우치 시대부터 계승해 키워온 무역과 해운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경제력을 축적시킨 것이다. 시모노세키는 오사카와 겨눌 만큼 물류의 중심지가 되어갔다.
모오리 가가 이렇게 경제적으로 다시 부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제염(製塩)과 같은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고, 해운 기술을 발전시켜 무역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땅에만 눈이 어두워 영지의 대소에 웃고 울며 농업적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다른 영주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바쿠후의 정점에 있었던 토쿠가와 가 역시 농업적 차원의 영주였다.
모오리 가의 상업적 혹은 자본주의적 성향은 오오우치 가로부터 계승되었을 거라는 얘기는 앞에서 이미 비쳤다. 인위적인 계승 절차를 밟았다기보다 오오우치 가의 산하에 있으면서 자연히 그 성향이 몸에 배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 연구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 나로서는, 부담없이 대담하게도 양가의 관계는 단순한 주종관계가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야마구치에 루리코오지(瑠璃光寺)라는 절이 있다. 절 문을 들어서기 전에 조그만 연못이 있고 그 옆에 오오우치 시대에 목조로 만들어진 훌륭한 오중탑이 서있다. 절보다 탑이 더 크고 무게 있게 느껴진다. 조화가 잡히지 않은 초등 학생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다.
본래 오오우치 시대에는 여기에 코오샤쿠지(香積寺)라는 큰 절이 있어 오중탑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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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리코오지 목조 오중탑 앞에서 |
이 절에는 조선 왕조로부터 보내온 대장경이 보관되어 있었고 절의 승려가 조선에 보내는 사절이 되었다 하니 사찰로서의 지위가 짐작된다. 그런 코오샤쿠지가 모오리 가가 하기로 밀려갈 때 함께 뜯겨져 가는 재난을 당했다. 오중탑만 외롭게 남아 서있는다. 모오리가 하기에 성 등을 만들 때, 재정이 핍박하여 이 절을 다 뜯어가 재목으로 썼다는 것이다. 모오리 가가 재정적으로 안정을 되찾자 코오샤쿠지 자리에 원래 요시키군 니호(吉敷郡仁保・현재 야마구치 시의 일부)에 있던 루리코오지를 옮겨다 놓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루리코오지 바로 옆에 모오리 가의 보다이지(菩提寺・ 조상의 넋을 모시는 절) 토오슌지(洞春寺)가 있다. 이 절의 뒷산에는 모오리 가의 묘가 있다. 이 묘들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이토록 한반도의 봉분 묘와 닮은 묘를 일본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봉분 위에 나무가 한 그루 서있는 묘도 있었지만, 흙을 동그랗게 쌓아 올려 만든 대부분의 봉분이 한반도의 것과 똑같았다. 묘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고분 이외에 일본의 어떤 자료나 현실의 묘에서 봉분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모오리 가 조상의 묘들은 ‘훌륭한’ 봉분이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묘는 한 집안의 조상-뿌리의 상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묘에 집착한다. 그런데 모오리 가는 한반도의 것과 똑같은 봉분 묘를 만들고 있다. 이는 모오리 가가 오오우치 가와 함께 한반도에 뿌리를 갖는 집안임을 말해 주는 증거가 아닐까. 모오리와 오오우치는 단순한 주종관계가 아니라 뿌리를 같이하는 특별한 동맹관계에 있었던 게 아닐까. 모오리 가의 묘 앞에서 이런 대담한 상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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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오리가의 한반도식 봉분 묘. |
모오리가 오오우치가를 멸망시켰다고 하지만 정확히 말한다면 모오리가 토벌한 것은 오오우치가 아니라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있던 스에하루가타였다. 모오리는 스에하루가타를 “정의롭게” 토벌하고 스스로 오오우치 가를 계승한다고 선언하여 오오우치와의 특별한 관계를 어필했던 것이다.
모오리 스스로 한반도에 뿌리를 갖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겐지의 일파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본의 무사들은 대부분 겐지 아니면 헤이시로부터 자신들의 원류가 시작되었다고 하니까 모오리의 겐지 뿌리설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대대로 경작할 땅도 변변히 갖지 못했던 농민 출신 토요토미히데요시 조차도 자신이 헤이시의 후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모오리가 오오우치로부터 계승한 것은 영지만이 아니었다. 대륙적 기풍을 이어받아 적극성・개방성・합리성에 토대한 상업적 나아가 자본주의적 영주로서의 기질과 능력을 갖고 나라를 경영했던 것이다. 그러했기에 다른 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부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모오리 가가 변질한다. 토쿠가와 바쿠후에게 영지를 박탈당하고 구석진 쵸오슈로 쫒겨나면서 패배의 컴플렉스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토쿠가와에 대한 미움과 복수의식이 뼈속 깊이 침전되어 간 것이다. 토쿠가와 바쿠후 260여년 간 순종하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세계 정세의 변화의 파도가 일본열도에 몰려오면서 바쿠후의 제도적 모순이 드러나고, 약체화가 눈에 띄기 시작하자 모오리 가의 쵸오슈 한은 복수의 칼을 빼들었다. 도막(倒幕;바쿠후 타도)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260여년 동안 품어온 패배의 열등의식, 원한의 복수의식이 오오우치 시대부터 계승해온 모오리 가의 성격을 변질시키고 말았다. 개방성・공생성・합리성 대신에 폐쇄성・배타・과격성이라는 쵸오슈의 내셔널리즘이 체질화되고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모오리 가가 쵸오슈에 갇힌 소영주로 전락한 다음에도 상업적 혹은 자본주의적 나라 경영은 계속되었다. 그랬기에 앞에서 본 것처럼 쵸오슈 한은 부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공은 정신적 배경 없는(mindless) 기술적 차원의 것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메이지 유신의 추진 과정 혹은 그 결과에서 그러한 사정을 읽을 수 있다. 모오리 가-쵸오슈 한의 두 개의 얼굴 윤곽이 선명해지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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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4.4.25 목 17:04 
재외선거, 의료보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