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삼 / 재중동포 작가

지진 소식을 또 들었다. 6.7의 강진이라고 한다. 보도에는 사망자수와 부상자수가 쳔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순간 나의 마음은 졸지에 그 곳에서도 나의 딸이 살고 있음직한 곳에 먼저 눈길이 갔다. 혹시 지진이 딸아이의 가족들에게까지 덮친 것은 아닐까.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듯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나는 곧바로 딸아이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받는 사람이 없다. 어찌된 영문일까? 그렇다면?! 갑자기 등골에 식은땀이 쭉 난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연속 전화를 하다가 딸아이에게서 자기네 있는 곳에는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니 괜찮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지금 ‘날마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면서 자연재해 앞에서 인류는 모두 하나라는 의식이 날로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한다면 그 많은 나라의 재난 중에서도 내 자식이 사는 나라의 재난일수록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 나라에 내 가족이 살기 때문이다. 때문에 생명의 기본이나 다름없는 피를 나눈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이제 세계가 글로벌세계로 변하면서 국경 밖을 벗어나 가족이 살고 있는 그 어디든 글로벌 사랑으로 뻗치고 있다.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소고삐에 얽매였던 우리네 삶이 비행기 나래를 타고 전 지구촌으로 향할 줄이야! 전엔 체제가 다르고 이념이 다르다고 하여 같은 족속의 혈연들조차 원수 취급을 하면서 만나기는커녕 서신거래조차 제대로 못했었는데 지금은 같은 민족은 말할 것 없고 피부색과 말씨 다른 나른 나라 사람들과도 친척관계를 맺고 살고 있지 않는가.

지금 내 한가족뿐 아니다. 개혁개방을 맞이하면서 수많은 중국조선족가정의 아들딸이 해외에 나가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누구네 집 딸은 일본에 가 살고 있소.” “누구네 집 아들은 미국에 가 정착했소.”하는 말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하여 이제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다문화가족관계는 한 나라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이란 울타리를 뛰어 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란 의미는 쉽게 말해 혈연으로 맺어졌다는 의미다. 일단 가족만 되면 그가 중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미국인이든 상관없이 나와 한 가족이라는 믿음, 소망. 사랑 때문에 한번에 가까워진다. 하물며 같은 민족이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체재나 사상을 넘어 그 누구보다 가깝고 친한 것이 가족관계라는 의미를 나는 남북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통해 더욱 감안할 수 있었다. 비록 몇십년을 떨어져 편지 한 장 주고받지 못하여 생김새도 말소리도 그렇게 많이 변했지만 왜 서로가 서로를 만나는 첫눈에 정확하게 알아보는 것인가. 가족의 체취가 따로 있는 것인지, 따뜻하고 익숙한 체온을 한번에 감지하고 부둥켜안고 그렇듯 정겨운 대화를 나누면서 반가움의 울음을 터트린다.

한 달 전이였다. 미국에서 사는 딸이 출산을 하여 갓 태어난 손자의 사진을 이메일로 여러장 보내왔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라는 생각을 까맣게 잊었다. 내 딸이 배 아프게 낳은 자식, 그 천진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오로지 내 혈육이라는 감정 외에 다른 감정은 가질 수 없었다.

누구의 말처럼 자녀를 보는 즐거움은 가장 성스런 즐거움이며 내 가족이라는 안도감과 훈훈한 사랑의 끈으로 이어져 있는 가족애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빛나는 기쁨이며 인류가 공생할 수 있는 확일적인 기초라더니 그 말 틀린데는 것인가ㅡ(페스탄로찌)

물론, 이렇게 같지 않는 나라, 같지 않는 민족과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면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족은 가까이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하는데 피를 나눈 가족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면서 아무리 지구가 촌이 되어간다고 해도 만나기가 쉽지 않는 것이다. 여느 날은 몰라도 우리민족에게서 가장 큰 명절이라 손꼽는 추석이나 설 때만이라도 자유롭게 한 자리에 모여 앉을 수 있으면? 아무리 교통이 발달했다 해도 아직 먼 거리의 만남은 너무 많은 대가를 치러야하기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헤어져 사는 가족이 만나고 싶은 기대와 그리움으로 사는 밖에 민족이라는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할 때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이 있다면 자식들이 다른 나라, 다른 민족 속에 정착하여 그 나라 국민으로 잘 살고 있는 것은 좋으나 삶에 적응하면 할수록 ‘조선족’이란 근본을 상실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태어나는 후대들이 더욱 그러하다. 이런 현상을 좋게 해석하면 이는 순발력 있는 우리 민족으로 말할 때 봉폐된 세상을 뿌리치고 보다 넓은 판도에 진출한 것으로 우리민족 삶의 반경이 어젯날의 작은 고향으로부터 점차 전 세계를 고향으로 얻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해도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쉽다한들 누가 이런 조류를 막을 수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가족이 한데 모여 살면서 가난 때문에 티격태격하는 것보다 비록 떨어져 살아도 가난을 해소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해서 그 나라 그 민족의 풍토에 적극 적응하면서도 태어나는 자식들에게 다만 얼마만이라도 우리말과 글은 물론, 우리민족의 풍속습관을 배워주어 그네들이 자신 몸에 절반 피는 조선민족임을 알게 한다면?

우리는 가끔 생활 속에서 “우리는 한가족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또 듣기도 한다. 한 가족이란 말은 웬지 듣기만 해도 따뜻하고 친절하여 안도감을 느낀다. 그래서 가장 친하고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을 말할 때 “가족같이 자내자, 혹은 가족과 같다”고 말하는 것인가. 가족같이 지나는 이런 관계가 하물며 같은 민족이라 해도 대립관계에 놓여있던 사람들을 화해와 단합으로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되고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성원과도 단란하게 지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인류의 평화와 화해. 협력을 촉진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가족이란 정치적 집단이나 사회군체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존재 같지만 가족이 모인 것이 민족이고 민족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 국가라 할때 기족은 국가와 민족의 고임돌이다. 그러므로 가족이 잘 돼야 민족도 잘되고 가족이 행복해야 국가도 행복하다고 한 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닐 듯싶다. 이제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비는 것을 그 무슨 협액한 민족주의니 가족주의이니 하고 질타할 이유가 없다.

해서 오늘 나의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근심과 걱정까지도) 내 가족이 살고 있는 그 나라로 뻗어간다. 한국에 물난리나 폭염이 들씌울 때면 그곳에 가 있는 아들의 안전을 걱정하게 되고 일본 땅에 지진이나 쓰나미가 덮쳤을 때는 큰 딸 가족의 안전을 걱정하게 되며 미국에 혹시 산불, 토네이도의 강타에 삶의 터전들이 삽시에 쑥대밭이 되었을 때 늘 그곳에 사는 작은 딸 가족을 생각한다.

어쩜 아직까지 국부적으로 전쟁이 지속되고 있고 테러의 위험이 가셔지지 않는 이 지구에서 가족의 행복을 위해 온 세상의 태평을 원한다는 것이 너무 시기상조일지 모르나 반목질시 비정한 죄악과 증오, 분쟁과 테러가 기승을 부릴수록 더욱 더 인류가 평화와 화해를 이루는 가족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무엇보다 친근하고 가까운 이 가족이란 매개를 통해 인류가 하나 되여 반복과 질시를 극복한다면 가족은 위대한 것이다. 가족이 위대하기에 가족사랑은 더욱 위대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소망한다, 나의 딸 가족만이 아니라 재난이 들어도 절망하지 않고 극복하면서 낙관적으로 사는 그곳 국민들이 함께 세계에 널려있는 우리 중국조선족 모두의 가족들이 다 화목하고 행복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