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자주 듣던 한국 서울의 대림동에서 난생 처음 보름이라는 시간을 체류했다. ‘백문불여일견’이라더니 특별이 한족과 조선족들이 많이 집거하여 대림동은 명실공히 서울 도심 속의 ‘차이나타운’이다. 그리하여 거리낌없이 들리는 중국어, 연변 나그네들의 함경도 사투리, 심양지구 사람들의 평안도 사투리가 한데 뒤섞여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음식점, 중국슈퍼, 직업소개소, 환전소 등 한국사람보다는 조선족과 한족을 상대로 하는 크고 작은 간판들 속엔 심지어 스촨성의 마라탕에 동북 꽈배기와 만두를 판다는 간판도 있었다. 그밖에 노래방이나 노래연습장, 연변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연변노래방도 있었다.

대림동은 매우 자유로운 거리다. 법과 질서를 위반하지 않으면 소신껏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거리다. 어느 계선까지 동그라미를 쳐놓고 그 속에서는 중국인으로 살아보라는 것인가? 들리는 말에 대림동은 경찰들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무데나 뱉은 침과 되는대로 널린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많이 부끄럽고 유감스러웠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서도 새는 격인가? 중국에서 하던 습관을 못 버린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대림의 낮은 이렇다 하고 밤은 어떠할까? 알아보기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에 일부러 대림거리를 산책했다. 지금은 한국행이 아주 편하여 가족이 나가 함께 생활하는 가정이 많다고 들었는데 가족을 떠난 외로움과 그리움이 그래도 해소된 것은 아닌지 휴식날 밤 활동이 빈번했다. 처처에서 남성들이 술 마시고 좋은 기분에 큰 소리로 떠드는 장면과 부부가 아닌 남녀들이 한데 모여 다니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예전에 불법체류자 단속을 할 때야 어디 이런 풍경이 있을까? 이런 기회에 친구끼리 술을 마시며 직장이나 노가다 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확 풀어놓는 것 같아 조금은 무질서해보였지만 이해가 되었다.

이것은 또한 아무리 같은 민족이라 해도 오랜 세월 다른 체제에서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했기에 이질적인 차이 때문에 다년간 한국인들 속에 있지만 그들 세계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원인과도 연관된다. 그러니 한국에 살면서도 부득이 같은 문화권에서 오래 생활해온 조선족끼리 왕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에서 가족별로 사는 사람이 날로 늘어나 생일도 결혼도 환갑연도, 아기 돌잔치까지 한국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동창회요, 향우회요 하는 모임들이 따로 있어 그렇게 자주 만나 스트레스를 풀면서 우의를 돈독히 하는 것은 좋은데 소비가 늘고 술자리가 잦다고 한다. 축의금도 대국의 기질이 있어 통 크게 10만원, 20만원(한국인은 보통 5만원)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인의 생활패턴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점차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생활할 때의 그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때문에 돈은 한국인처럼 벌고 쓰기는 중국에서처럼 쓰게 된다면 돈을 벌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저런 단점이 있는 와중에도 이제 더이상 불법체류를 단속하지 않아(혹여 그 중에 불법체류자도 있겠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매우 쉬워졌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 역시 자유로워 그 어떤 불안이나 공포감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반가웠다. 이제 한국행은 조선족에게 거의 자유왕래라 해도 되지 않을까 거의 백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가 있다니 두 사람당 한사람 꼴로 한국에 정착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이제 한국땅은 서울을 위주로 어디가나 조선족이 섞여있는 곳으로 되고 있다. 전에는 월세나 고시원 등에서 거주했다면 이젠 점차 월세도 아니고 전세, 더 나아가서 형편이 좋은 사람들은 아예 그 비싼 집들을 사고 눌러 앉은 것이다.

대림동에서 필자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겠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젊은 계층들이 더욱 그러한데 만일 그렇다면 조선족의 미래는? 백 여 년 지켜온 우리의 민족공동체는 어떻게 될 것인가? 후계자가 없다면 그래서 누군가는 조선족의 한국에로의 이민설도 나오는데 그렇게 되면 조선족이 한국국적을 취득하여 한국에서 마음 놓고 정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다가 중국이 더 발전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요즈음 한국에 국적을 올린 사람들 중에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국적을 올렸다가 거액의 돈을 밀어 넣고서야 중국국적을 회복했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 노인들이다. 자식들의 장래야 어떠하든 자신들의 남은 인생을 편안하게 보내는데 중국이 훨씬 좋다는 것이다. 한국행은 날이 갈수록 세대 차이와 계층차이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행위들의 뒷받침은 바로 같은 민족이지만 국적이 다름으로 하여 받게 되는 차별에서 느끼는 자괴감으로 중국조선족은 지금 한국에서 오랫동안 정착하면서 한국문화에 많이 적응하여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평등하게 대하기를 바라지만 이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조선족들의 욕망과 달리 한국인은 엄연히 한국인이고 조선족은 조선족이면서 달리 붙여진 이름은 ‘중국동포’ 아니면 ‘중국인’이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 희망자들이 웃음을 지으며 선거공약을 발표하고 국민 앞에서 도와달라고 엎드려 절을 하지만 어느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어느 후보자들도 재외동포에 대한 공약은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그만큼 한국정치인들의 마음속에는 ‘재중동포’는 없는 것이다.

물론 중국동포들이 선거권이 없기 때문일 것으로 이해가 된다. “교포 국회의원이 나와야 한다”고 떠들어대지만 그렇게 좋은 말 잘못 믿었다가는 떡 줄 놈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조선족은 어디까지나 ‘중국의 조선족’이다. 때문에 물 위에 떠있는 기름이라고나 할까? 누가 기름이고 누가 물인지는 딱히 가릴 수 없으나 확실히 차별을 두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곳이 바로 서울의 차이나타운 대림동이다.

앞으로 한국정부로부터 그 어떤 획기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는 한,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남’인 것이다. 즉 싼 노동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면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돈만 벌면 되는 것인가? 사회적 인간으로써 공민권을 갖지 못하고 선거권과 피선거권도 없이 그저 세월 가는대로 살아 보는 것인가?

하면 언제까지 이런 상활이 지속될 것인가? 오랜 세월이 흘러가면 처음 우리가 한국 땅에 발을 디뎠을 때 그곳이 낯설었듯이 이제 중국에 돌아오면 중국이 낯설어질 것이다. 더구나 점차 중국의 정치제도 사회생활을 관심하지 않고 참여하지 않으면서 중국을 모르는데서 삶에 많은 불편이 제기될 것이다. 특히 가장 걱정되는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교육을 받는다. 그러므로 중국인이지만 중국어를 모른다. 중국어를 못하고 중국에 와서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는가? 때문에 왔다 갔다를 시계추처럼 반복하다보면 우리는 이도저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어찌해도 중국의 조선족으로 중국의 물을 먹고 중국에서 뼈를 키웠기에 중국문화의 영향이 깊이 배어 중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중국 사람이다. 물론 중국사람으로 산다고 하여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고 살아서는 안된다.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이 좋은 나라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지키면서 앞서가는 민족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문득 언젠가 한국 ‘동포문학’지에 발표한 필자의 시 한수가 생각난다.

두 사람사이에서

나는 지금 두 사람사이에 서 있다.
한 뿌리에 기생했지만
오랜 세월 헤어져 있으면서
그리움에 한껏 젖어있던 그 사람과
낯선 땅 인연은 힘들고 고되어서도
기나긴 날 함께한 정분 때문에 뿌리는 달라도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는 사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운명 때문에
쪽을 놓듯 어제는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유도 없이 미워해야했지만
지금은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것

그리하여 주어진 사랑에서 해방된 나는
어제의 금지구역을 넘어
이쪽저쪽 두 사람사이를
자유로이 오고가고 있구나
행운일가 불행일가
허지만 사랑하는것은 달라
이것이 방황이 아니라면
영원한 행운을 기대할수있지만
자칫 어느 한쪽으로 넘어진다면
모두의 사랑을 다 잃어버릴수있는것
두 사람사이에 량다리 걸친 운명때문에
나는 사랑의 고민을 해야하는구나
자칫 자신마저 잃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