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 방문 결정은 대한민국에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하나는 현재의 문제인 미·일 동맹의 강화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다음은 역사의 문제로서,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자 한반도 침략국인 일제(日帝)의 국가 범죄에 대한 면죄부 효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나라의 외교 행위에 대해 제3국인 한국이 이래라 저래라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과거 문제가 왜곡되면 한·미·일 3각 협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정부는 미·일 양측에 분명한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 정부가 10일 공식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2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해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한다고 한다. 미국 현역 대통령으로는 처음이다. 그 배경에는 미·일 양국의 이해가 걸려 있다. 전범국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참배는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처럼 비치는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마치 미국이 가해국, 일본은 피해국인 양 본말을 뒤집으려는 의도다. 이 때문에 아베 정부는 총력을 기울였고, 이번에 외교적 승리를 거둔 셈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지난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의 ‘핵무기 없는 세상’ 추구 선언 이후 비핵화 행보를줄곧 추구해 온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마무리하면서 극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 내부에서도 ‘전범국 일본’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은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상황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 당시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의 원폭 투하 결단은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많은 일본인을 비롯, 수천만 명의 추가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미국 측은 “원폭 사용 결정에 대해 다시 논의하려는 게 아니라 미래 비전을 제시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역사는 똑똑히 기억하되 힘의 논리에 의해 규정되는 국제정세의 흐름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힘을 기르고 외교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당위를 새삼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