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조 / 예루살렘 특파원

대사관은 주재국 수도에 위치한다. 주한(駐韓) 외국 대사관도 부산이나 광주가 아닌 서울에 있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있지만 한국은 물론 미국·중국 등 각국은 대사관을 예외 없이 텔아비브에 두고 있다. 텔아비브에 있는 외국 외교관들은 한 시간가량 차를 타고 총리·대통령실부터 외교부 청사 등 거의 모든 기관이 있는 예루살렘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며 불편하게 일을 한다.

외국 대사관이 예루살렘에 자리 잡지 않은 까닭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등 어느 나라의 수도도 아니다'는 유엔의 공식 입장 때문이다. 만약 어느 나라가 공관을 예루살렘에 두겠다고 결정한다면 이는 주변 아랍국들의 반발을 무릅쓰고서라도 이스라엘을 지지하겠다는 선언이 된다. 이스라엘에 핵무기 제조법을 비밀리에 전수해줄 정도로 돈독한 관계인 프랑스조차 공관만은 텔아비브에 설치했다. 그만큼 이는 민감한 문제이다.

하지만 최근 "텔아비브에 있는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말하며 국제사회에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 있다. 다름 아닌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하거나 선거 유세 때 "내가 대통령만 되면"이라고 외치면서 대사관 이야기를 꺼낸다. 유엔과 어떤 충돌이 생기건 말건 70년 가까이 계속된 이·팔 분쟁이 어떻게 되건 상관없이 두 눈 감고 이스라엘 편에 서겠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유대인의 마음을 사고 싶어 한다.

트럼프는 툭하면 동맹국들이 미군 주둔 비용을 충분히 분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돈 버는 기계인데 (주한 미군 주둔비는) 쥐꼬리만큼만 낸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엔 돈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는다. 미국의 최대 군사 원조 수혜국이 이스라엘인데도 그런다. 이스라엘은 2014년 미국으로부터 39억달러(약 4조5600억원)의 군사 원조를 받았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는 전체 미군 주둔 비용 약 2조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9320억원(2015년 기준)을 분담하고 있다. 방위비 명목으로 약 1조700억원을 미국으로부터 받는다는 건데 이는 이스라엘이 받는 규모의 약 23%에 불과하다.

'막말쟁이'라는 트럼프도 유대인의 눈치를 보며 입조심 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미 대통령으로 트럼프 같은 비상식적 인물을 포함해 누가 되더라도 국익을 지킬 수 있는 방어선을 구축해 놓았다는 의미기도 하다. 미 정치권의 분위기에 따라 국가 안보 환경이 오락가락하는 우리의 처지와는 참 많이 다른 듯하다. 미국 내 유대인의 수는 전체 인구(3억1800만명)의 1.7%다. 소수인데도 이들이 힘을 가질 수 있는 건 미 정계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의 치밀하고도 집요한 로비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누구 못지않게 미국과의 안보 협력이 중요한 우리도 이스라엘과 같은 로비력을 키울 전략을 이제는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