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초등학교 6학년이던 양금덕 할머니(85)는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중학교에도 보내 준다"는 일본인 교장 말만 믿고 1944년 5월 31일 여수항에서 연락선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그것은 굴곡진 삶의 시작이었다.

좋은 학교에 보내 준다는 것은 거짓이었다. 10대 초반 어린 소녀들은 이국땅에서 온종일 삼엄한 감시 속에 혹독한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임금은 없었다.

일제강점기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에서 강제노역 피해를 본 소녀들의 일본 소송 기록을 담은 자료집이 나왔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소송자료집 '법정에 새긴 진실(선인출판사, 704쪽)을 출간했다고 29일 밝혔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강제노역에 동원된 지 72년 만이다.

자료집은 근로정신대 피해 원고 8명이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1999년 3월 1일부터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가 확정되기까지 10년간 재판 자료를 모은 것이다.

미쓰비시중공업에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는 광주·전남 150여명, 대전·충남 150여명 등 300여명으로 파악된다.

일본에 다녀온 사실만으로 일본군 위안부로 여겨져 결혼도 힘들었고, 어렵게 가정을 꾸렸더라도 배우자 구박과 폭력을 견디지 못해 이혼하는 사례도 많았다.

피해자들은 주변 편견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 수십년 만에 소송에 나셨다.

광주·전남 강제노역 피해자 6명과 도난카이(東南海)대지진으로 숨진 피해자 가족 2명 등 원고 8명은 뜻있는 일본 시민단체 도움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양심 있는 일본인들은 '나고야 소송 지원회'를 꾸려 10년에 걸친 재판 동안 일본을 오가는 원고들의 항공료와 체류비용 일체를 지원했다. 변호사들도 공동 변호인단을 꾸려 무료 변론을 펼쳤다.

그러나 1심과 2심에 이어 2008년 11월 11일 일본 최고재판소에서마저 패소해 10년에 걸친 법정 투쟁은 좌절을 맞이했다.

'법정에 새긴 진실'은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통한의 세월이 담긴 진술서와 나고야 시민모임 활동도 소개한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2013년 초 일본 소송을 물밑에서 지원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과 공동변호인단에게서 소송 자료를 넘겨받고 번역해 책을 출간했다.

시민모임은 책 판매 기금을 모아 7년째 미쓰비시중공업 도쿄 본사 앞에서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금요행동(원정 시위)을 펼치는 나고야 소송 지원회에 투쟁기금으로 전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