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형 /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기말시험을 코앞에 둔 학교는 분주합니다. 책과 자료를 수북하게 책상 위에 쌓아놓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스터디를 하고, 도서관 혹은 카페로 바삐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접하게 됩니다. 이맘때가 되면, 누가 ‘꼰대’ 아니랄까봐 연구실에 들른 학생들에게 거의 반자동적으로 이번 방학엔 무얼 할 거냐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러곤 관행적으로 인턴이나 자원봉사, 아르바이트, 외국어 공부, 자격증, 휴학 등의 화제로 옮겨가게 됩니다. 아주 소수는 ‘농활’이나 먼 이국땅으로의 자유여행 등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고학년인 경우는 졸업 후 어떤 영역으로 나갈 건지를 묻게 됩니다.

반면에 어떤 인상적인 책들을 읽고 있으며, 어떠한 유형의 새로운 경험을 쌓을 건지에 관해서나, 공적인 사안에 함의를 두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경우들은 돌아보니 적은 편입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결코 한가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신없이 바쁘고 경황이 없습니다. 정규 학기가 아닌 시간에도 여유나 생산적인 ‘잉여짓’을 향유할 수 있는 이들을 접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한국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 다양한 외국친구들을 만나고 혼자서 더 큰 세상을 접하는 체험을 하는 데 유용할 교환학생 등의 기회를 거머쥐는 이들도 소수에 그칩니다. 자신의 스펙을 올리거나 각종 자격증을 따고 차후에 수 없이 작성하게 될 자기소개서에 게재할 ‘번듯한 행적’을 만들기 위해 학생들은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경제적 사정이 안 좋은 학생들은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간택되기가 쉽지 않은 인턴의 좁은 문을 백방으로 두드리며, 자원봉사를 할 기회들을 찾기도 합니다.

청년층이 직면하는 지옥 같은 상황들. 그럼에도 청년들은 경주마로 훈육되는 게임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기에 온갖 노력을 쥐어짜며, 멍들어가면서, 혹은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의 가치와 경쟁력을 올릴 수 있는 갖가지 방편들을 추구합니다.

그러한 노력과 준비의 정도가 매우 집약적이고 일관되어서, 때로는 안타까움이나 연민을 넘어 두렵기조차 합니다. 사유의 폭을 넓히고, 자신이 아닌 타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삶의 두께를 근접해서 관찰하며, 그 과정에서 대안적인 앎을 얻을 여력도 시간도 젊음들에겐 거의 없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요. 누가 이런 괴이한 환경을 만들어놓고 방치하고 있는 걸까요?

이러한 대학과 청년들의 상황을 별로 여과하지 않고 짧게 기술하는 문장을 써가면서, 마음 한쪽에서는 이게 아닌 데라는 느낌들이 진하게 번져갑니다. 명색이 선생인데, 학생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다보면 무력감과 더불어 자신이 별 도움이 아니 된다는 생각이 마음을 할큅니다.

일견 안정된 교원으로 사회과학을 가르친다면서, 협소하게 설정된 전공지식을 기성품을 다루듯이 제공하거나, ‘스마트한’ 미디어 기술이 가져오는 순기능의 측면이나 풀어내는 데 노력을 과하게 소진하고, 정작 현안이나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종종 입을 닫고 충분히 고심하지 못하는 자신의 유약한 모습이 떠올라서겠지요.

최근 몇 년간에는 부쩍 이러한 상황에 대한 자성과 함께 제 몫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회한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현실의 요동치는 측면들을 냉철하고 세밀하게 조명하는 사회과학의 한 유형을 몸소 탐구하거나, 강단의 안팎에서 만나게 되는 청춘들의 피곤하고 내몰리는 상황을 강 건너 불처럼 구경하지만은 않는, 그런 정련된 더듬이와 살아 있는 감각을 배양하는 데도 종종 무기력하다는 자책감을 떨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각에서 연구에 진력하고 논문을 쓰지 않으면 임용과 승진이 매우 어려워진 경직된 연구문화와 기업을 닮아가며 갖가지 지표에만 민감한 대학의 실정이 상존하는 현실이 있기에, 강단의 연구자들도 대안에 눈을 돌리기보다는 팍팍한 ‘생존주의’의 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말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순진한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교육은 이래서는 아니 된다는 자의식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그러곤 ‘벌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학생들의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화답하는, ‘꿀빤’ 세대의 한 구성원이 모색할 수 있는 작아도 유의미한 것들을 찾아 실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소한 걱정을 나누면서, 함께 도모하고 지혜를 모을 일들이 분명히 있으리란 판단이 듭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헬조선’의 관망자만이 아닌, 참여자가 되기를 시도해 볼 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