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환/전 한인문화원장

멕시코에 이민생활한지 어언 18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치안이 불안한 이곳에 살다보니 밤낮 가슴 졸이며 여러 가지 비상사태에 대비해 경우의 수를 상상하며 살아가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날도 비가 많이 오길래 평소 같으면 처남이 주로 운전하는데 '오늘 같이 비 오는 날에 강도라도 달려들면 어떡하지, 처남보다는 내가 경험이 많으니 내가 운전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나 막상 실제상황에 맞닥뜨리다 보니 머리가 하얘지는 게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2016년 6월 29일 수요일 저녁 6시 퇴근 무렵, 비가 무척 오길래 보통 때는 가게 앞을 지키는 경호 경찰과 함께 주차장을 가는데 차를 가게 앞으로 가져와서 바로 떠나는데 약 30미터 정도 달리다 신호대기에 걸려서 정차를 하니 앞에 오토바이 한대가 가로막고 3인조 권총강도가 달려드는 것이다.

창문을 부술 듯이 권총으로 세차게 두드려 대길래 처음에는 안 열려고 하다가 일전에 어떤 교민이 창문을 안 열려고 버티려고 하다가 강도가 진짜 발사하여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창문을 조금 열고 "돈 줄게 기다려" 하는데도 권총을 두발 갈기는 것이었다. 그러니 옆에 앉은 아내가 놀래서 얼른 지니고 있던 백팩을 던져주었다.

그러니까 한명은 이만 가자 그러고 다른 두 명은 더 내라고 하는 찰나 총소리를 듣고 인근에 있던 경찰들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두 명은 도망가고 차 바로 앞쪽에 있는 한명이 미처 도망을 못가고 주춤하기에 신호도 바뀌었겠다 순간 이놈을 차로 받아버리고 도망 못하게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부처님 믿는 사람이 산 생명 다치게 하면 되겠나 싶어 참자하고 마음을 다스리는데 뒷 자석에 앉은 처남이 "누나, 총 맞은 것 같애" 하는 게 아닌가?

돌아보니 허벅지에 피가 펑펑 쏟아지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강도 잡는 장면을 끝까지 지켜보았을 텐데 그럴 틈도 없이 재빨리 차를 몰고 파라과이 길에 있는 파출소로 가서 총상을 당했으니 앰뷸런스를 불러달라고 했다. 사람이 다쳐서 발을 동동 굴리는데 그놈의 앰뷸런스는 왜 그리 늦게 오는지, 그 와중에 가방 안에 있는 가게열쇠까지 다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어서 경찰을 붙잡고 상황 설명을 하면서 가게 앞에 밤샘 경비를 상의하니 마치 무슨 대목 장날 만난 듯이 만나는 이마다 돈, 돈, 돈을 외쳐대는 것이었다.

마침 가게 앞을 지키는 경찰이 연락이 되어서 뛰어와 병원까지 구급차로 동행하고 밤샘 경비문제를 도와주었다.
이웃의 불행한 소식을 접할 때 마다도 함께 울며 안타까워했는데 막상 친동생이 총상을 당했으니 아내는 더욱 기절할 듯이 울어대는 것이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다. 위로 쏘았으면 바로 즉사이고 상체보다는 하체가 낫고 안 죽기 천만 다행이다"하며 달래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조치를 하고 밤 10시쯤 병실로 옮겼는데 의사가 와서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은 것 같다고 하길 래 우선 안심을 하였다.

그날 평소대로 앉았으면 아내가 다치는 장면이었는데 환자인 처남이 오히려 우리를 달래면서 혼사 앞두고 자형이나 누나가 다치질 않고 자기가 맞아서 다행이라고 말하여서 숙연한 분위기에 마침 면회 와있던 이웃사람들을 모두 울렸다.
금요일 아침에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토요일 퇴원하여 집에서 안정 중이다.

이런 사고가 생기면 정신적인 상흔이 깊은지라 아내는 자다가도 깜짝깜짝 놀란다.
멕시코에까지 데리고 와서 이런 일을 당하게 하는 게 너무 미안한 노릇이지만 한편으로 인생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나하며 여러 가지 상념에 젖는다.

중국으로 출장길에 비행기 탈 때마다 나는 기도한다. '부처님, 하느님, 고맙습니다. 이 나이에 아직도 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요즘 경제가 엉망이고 직장에 다니던 친구들은 거의 은퇴하여 놀고 있는데 이 나이에 아직 현역으로 일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예전에는 한국 가면 친구들이 멕시코 후진 나라에서 고생한다며 술 사주고 밥 사주고 했는데 요사이는 주로 내가 낸다.

그리고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치면 이런 생각도 한다. '이대로 추락하여 죽으면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살까? 큰아들, 작은 아들 대학 졸업 시켰고 장가도 보냈고 며칠 후면 작은 놈도 결혼하고 애비 노릇 다했으니 이젠 죽어도 되나. 그러나 아내가 미망인이 되기에는 아직 젊으니 조금 더 살아야하나 어찌되었든 이곳에 와서 자식 교육시키고 장가보내니 멕시코가 굳이 나쁘다고만 할 수 없지'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한국 가면 산에 가서 오이나 깎아먹으며 은퇴한 친구들과 세상 푸념이나 하며 하루를 소일할 텐데 위험하기는 해도 좋은 점도 많은 것이다. 당분간 못할 바엔 멕시코에 사는 한 이런 일이 또 있지 말란 법이 있나?

그 상황을 복기하면서 재발 방지를 생각해보자.
강도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권총으로 위협하면 소지하고 있던 가방을 빨리 줘 버려야한다.
돈을 여러 군데 분산하고 잔돈 뭉치가 많이 담긴 가방을 운전석 옆에 항상 두고 있다가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빨리 줘야겠다.

이들도 마음이 바쁘고 주로 마약 복용을 하고 강도 행각을 하기 때문에 꾸물거리면 바로 쏜다. 그리고 가게 열쇠는 가방에 넣지 말고 주머니나 차 바닥에 따로 놓는 게 좋겠다. 나도 이번에 총을 맞은 이유가 처음에는 현실감이 나질 않았고 두 번째는 권총이 장난감 같이 생겼고 세 번째는 신호가 바뀌거나 경찰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게 번 돈을 선뜻 주기가 쉽지 않았다.

작년에 센트로 거리에서 사망한 교민 K 모씨도 빨리 가방을 주지 않고 반항하다가 그런 참변을 당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4년 전 실리콘발라시오 인근에서 퇴근길에 사망한 교민 P 모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그날 고액의 곗돈을 갖고 있었는데 막상 아까워서 쉽게 주지 못하고 시간을 끌다가 참변을 당했을 것이다.

갓난 어린아이가 으앙하고 태어나서 한 生을 살다가 객지에서 제 명에 죽지도 못하고 '여보, 나 총 맞은 가봐' 라는 말이 이 세상에서 뱉은 마지막 유언이라는 게 얼마나 비참하고 허망한 人生인가?

처남이 퇴원한 날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더 많이 남지 않았겠지만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더 잘 살자.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기도 많이 하고 남에게는 베풀며 자신에게는 성찰, 겸손, 절제하며 살자.

待人春風 持己秋霜
사고가 나기 전 독일에서 통일운동가 선생부부, 한국에서 선배, 친구 네 분 오셔서 함께 쿠바 여행을 하고 돌아왔는데 떠나기 전 날 이런 사고가 터져서 네 분 모두 가시방석으로 안절부절 하셔서 정말 송구했다. 더구나 생태환경 운동가이자 詩人이신 如流 선배께서 "이렇게 목숨 걸고 번 돈으로 쿠바 여행가서 호사스런 접대를 받았구나"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데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오히려 못 볼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서 초청한 의미가 무색하게 되었다.

끝으로 아름답지도 않은 사고 소식으로 교민사회를 불안하게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욱 조심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매사에 신중하겠습니다.

걱정과 안부를 물어주신 모든 지인들께 감사드리며 병원까지 문병 오셔서 위문하신 김현욱 한인회장님, 우리교회 박석훈 목사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멕시코 교민사회의 무사와 안녕을 위해서 많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