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 / 논설위원

2011년 나미비아의 빈트후크 공항에 유골 20기가 107년 만에 독일에서 귀환했다. 1904년 독일 강점기에 학살당한 뒤 독일로 옮겨졌던 헤레로족과 나마족의 유골들이었다. 당시 헤레로·나마 부족은 독일제국의 착취에 견디다 못해 나미비아의 독일인 농장을 습격, 100여명을 살해했다. 이에 독일의 빌헬름 2세는 악명 높은 로타르 폰 트로타 장군이 이끄는 1만4000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트로타는 “그런 부족은 절멸돼야 한다”면서 무자비한 보복을 벌였다. 독일군은 헤레로·나마 부족을 사막 깊숙한 곳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독일군의 가이드를 맡았던 얀 크로에테의 증언은 끔찍하다. “갈증을 견디지 못한 민간인들은 저항할 능력도 없었다. 독일군은 그들을 끝까지 추격해서 총을 쏘거나 총검을 휘둘러 죽였다.” 어린 여성들은 강간한 다음 죽였다. 트로타는 “독일군에 질병을 옮길 가능성이 있으니 여성과 아이도 예외 없다”고 했다. 사막의 우물에는 독약을 풀었다. 2011년 귀환한 유골 20기는 유럽인이 아프리카인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독일로 가져간 것이다. 1907년까지 이어진 대량학살로 헤레로족 인구의 80%(6만5000명)와 나마족 인구의 50%(1만명)가 몰살당했다. 역사가들은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인종말살 혹은 인종청소)’라 이름 붙인다. 이것은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태인 대량학살의 모델이 됐다는 해석도 있다.

1970년 12월7일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는 바르샤바의 유태인 위령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치 독일에 희생된 폴란드 유태인들을 위한 사죄의 표시였다. “한 사람이 무릎 꿇음으로써 독일 전체가 일어섰다”는 찬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독일은 유독 ‘나미비아 사건’에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오죽하면 터키가 1915~1916년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 대량살상’을 비판한 독일에 ‘헤레로족이나 잘 처리하라’고 비아냥댔을까. 그랬던 독일이 정부 차원에서 나미비아 집단학살을 시인하면서 ‘제노사이드’란 표현을 썼다. 독일 언론은 “뒤늦게나마 잘못을 시인했으니 이제 사죄만 남았다”고 했다. 그래도 독일인들은 100년 이상 된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할 마음이라도 갖고 있는 게 가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