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김 | 미국 럿거스대 역사학과 교수

연구차 지난여름 서울에 있을 때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 중 하나는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의혹이었다. 이 논란은 그가 표절한 것으로 의심받았던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읽은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공개 사과를 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한국은 또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새 국가브랜드였다. 2002년부터 사용된 ‘다이내믹 코리아’를 대체할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브랜드가 프랑스의 ‘크리에이티브 프랑스’와 유사하다고 야당 의원이 지적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대학 중 하나인 럿거스대는 1766년에 설립되어 올해 250주년을 맞았다. 이 대학의 유학생들 중 한국 학생들은 중국, 인도 다음으로 많다. 여기서 가르쳐온 지난 4년 동안 내가 표절 문제로 징계한 학생은 3명인데 모두 한국 학생들이었다. 논문 표절을 식별해내는 온라인 기업인 턴잇인(Turnitin)이 후원한 조사에 따르면 40% 이상의 한국 대학생들이 표절을 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나는 지난해 여름 한국에 있으면서 한 한국인 동료가 내 책을 표절하지 않았나 의심한 적이 있다. 다른 한국 동료와 의논한 뒤 나는 해당 학술지에 표절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근 1년간의 공방 끝에 지난봄 표절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 일을 겪으며 알게 된 것은 한국의 국가브랜드 표절 논란과 유사한 점이 많다. 내 책 표절 건에 대해 한국 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하자 대부분은 그런 사례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한탄했고, 몇몇은 자신들의 표절 피해 경험도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내 사례가 흐지부지된 것도 그들이 예상한 대로였다.

내 문제제기에 한국의 학술지는 이렇게 응답해왔다. 그 개념은 다른 논문에서도 광범위하게 볼 수 있는 것이고, 내 표현을 자구 그대로 재생산한 것도 아니며(내 책은 영어로 썼고 그 논문은 한국어로 썼으니 자구 그대로 옮기기는 힘들다), 내 논증에 쓰인 출처와 소재는 다른 연구자들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문체부가 이번에 ‘크리에이티브 코리아’가 표절이 아니라며 비슷한 논리를 폈다는 게 흥미롭다. 문체부 성명에 따르면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는 한 국가만 독점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빨간색과 파란색은 태극기의 일부이기 때문에 예전부터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표절의 정의는 간단하다. “다른 사람의 단어나 생각을 사용하면서 그 사람을 언급하지 않는 행위”이다. 특정 단어나 색깔이 누군가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문체부의 얘기는 맞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밝히지 않고 남의 생각을 가져다 쓰면서 독창적인 듯 행세하는 것이다. 하나 혹은 몇 개의 단어를 조합했다 해서 표절인 것이 아니라, 생각 전체의 묶음이 표절을 이룬다. 프랑스와 한국의 로고에 사소한 차이는 있지만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에서 독창적인 부분이 뭔지는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문체부의 해명이 문자 그대로는 맞을지 모르지만 표절 문제는 지적, 창의적인 작품에 담긴 윤리와 맞닿아 있다. 문체부도 프랑스 로고를 이미 알고 있었으니, 그들의 해명은 지적으로 정직하지 못하다.

지난주 뉴욕타임스는 2012년 표절 시비에 휘말린 한 미국 작가의 신간 서평을 실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본다면, 당신은 그가 책 곳곳에서 남들의 주장을 구조나 내용 면에서 재탕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출처를 밝힐 때도 있고, 그러지 않을 때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이들이 사용한 연관성과 연결관계들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제니퍼 시니어, 2016년 7월7일자 뉴욕타임스)

더 빨리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부담이 늘어나고 컴퓨터로 잘라붙이기를 쉽게 할 수 있게 된 탓에 어느 때보다 표절의 압력과 유혹이 크다. 표절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한국처럼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표절은 앞서 나가기 위한 빠르고 손쉬운 해결책이며 때로는 생존을 위한 비극적인 수단인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이 정말로 혁신과 우수성을 높이려면 ‘로고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그 로고가 아무리 ‘창의적’이라 해도 말이다. 진정한 독창성은 결과물의 양에 대한 끊임없는 압박감 없이 시간을 두고 만들어진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한국 학계의 양적 평가 시스템은 그 적폐의 대표적인 사례다. 표절의 기준은 독창성을 높이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번역 |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