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실 / 재중동포 자유기고가 

일본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나는 늘 재일교포들한테서 이런 말을 듣는다. “중국에 살면서 어떻게 우리말을 이렇게 잘 할수 있어요?” 그리고 또 일본 친구들에게 자주 듣는 말은 “와! 사이상! 난가고쿠고 샤베레루?(정말 대단하네요,몇개국 언어를 할 수 있어요?)”

사실 중국에 살면서 조선족 학교에 다니면 3개국 언어의 구사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선어와 중국어, 그리고 영어 또는 일본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을 떠나보지 않았다면 스스로 갖고 있는 3개국, 4개국 언어의 구사가 얼마나 큰 달란트가 되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나는 재일교포인 남편과 일본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낸 아들의 우리말 공부에 지치고 있다. 어제는 남편이 "보잘 것 없다"는 말을 "보지랄 것 없다"고 하였고 아들은 조선어문 단어시험에서 “다짜고짜”를 “고짜다짜”로 써서 저녁밥상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남편과 아들의 우리말을 교정하면서 나는 중국 조선족으로 태어나 민족학교에 다닌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우리 중국 조선족은 선조들이 모국을 등지고 떠나 와야 했던 설음 많고 한 많은 민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도 차세대들의 교육을 놓치지 않고 우리 민족의 언어와 전통을 지켜왔다. 덕분에 오늘날 중국 조선족은 우수한 소수 민족으로 중국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물론 국제사회에서의 중국 조선족 영향은 아직 보잘 것 없지만… 그러나 중국의 강성과 세계무대에서의 지위 향상에 따라 우리 조선족 가치의 재검토와 활약이 기대되는 시대가 당도했다. 아울러 조선족 스스로가 각성하고 분발하고 성숙되어야 할 때가 왔다.

글로벌시대에 요즘은 “샐러드 문화”란 말이 뜬다. 즉 다민족, 다문화의 공생 공존을 일컫는 말이다. 야채샐러드는 독특한 맛과 향, 빛깔, 영양분이 있는 여러가지 야채들이 조화를 이루어 우리 식탁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글로벌시대는 정체성이 뚜렷하고 개성이 있는 사람이 인기가 있다.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것을 누가 쓰려 하겠는가?!

우리는 중국 조선족이다. 국적은 중국, 민족은 조선족, 이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우리는 중국에서 살고 있는 다른 민족들과 잘 어울려야 할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화와 언어를 지키고 계승해 나가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조선족 학교와 외면하면서 우리 언어와 멀어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고등학교때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프랑스 작가가 쓴 “마지막 수업”이 머리에 떠오른다. 작가는 “나라와 민족을 잃는다 해도 언어만 잃지 않는다면 모든 걸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민족의 언어를 지키는 것은 민족의 넋을 지키는 것이다. 민족의 넋을 잃어버리면 정체성이 불투명한 ‘고아’가 되어버린다.

글로벌시대라며 외국어 공부가 열풍인 현재, 자기 민족의 언어도 모르고 외국어 공부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닌가!

예로부터 한가지 언어를 더 구사 한다는 것은 세계를 내다보는 창이 하나 더 생긴 것과 같다고 하였다. 한가지 언어를 구사 한다는 것은 그 언어를 낳은 민족 문화를 터득 한다는 얘기가 된다. 어려서부터 조선어와 중국어 이중언어를 사용하고 조선족 학교에 다니며 영어 또는 일본어까지 3개국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조선족에게만 주어진 우월한 조건이다. 얼마나 기뻐해야 할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우리에겐 세계를 내다 볼 수 있는 창문이 남보다 많다. 우리는 이 창문들을 활짝 열고 진지한 태도로 세계를 내다 봐야 할 것이다.

다중언어 구사의 우선순위는 바로 우리 민족의 언어이다. 자기를 알고 남을 알아야 백전백승 한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우리 중국 조선족은 정체성을 확립하고 다중언어를 구사하면서 다문화의 공생 공존을 피부로 느끼고 견문을 넓혀야 한다.

다중언어를 구사하는 조선족이 글로벌시대를 이끌어 갈 선두 역할을 할 시대가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