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식 / 부국장 겸 사회부장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8년 임기 말에 안보·경제 두 개의 위기 맞아
금융위기서 관전자로 머물다 참담한 재앙 불러…
'부시의 실패'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삼성전자 리스크와 현대차 파업, 수출 급감, 가계부채 문제, 지금 제기되고 있는 고용 불안, 조선·해양·철강·석유화학 등 우리 주력 업종들의 심각한 위기 등 이런 경제 상황 전반에 대해 대통령께 가장 최근에 보고 드린 게 언제입니까?"(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제가 직접…."(유일호 경제부총리)

"직접이든 간접이든?"(유 의원)

"아, 간접은 수시로(했습니다). 경제수석실을 통해서라든지. 직접 한 적은 요 근자에 없습니다."

"대통령께서 주재하고 부총리가 중심에 서서 지휘를 하는 그런 비상경제 대책 회의체가 구성돼야 합니다. 자주 회의를 열어서 대통령께서도 (우리 경제의 주요한 리스크와 문제 등에 대해) 아시고,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유 의원)

"경제 상황 보고나 (최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는 것은 지금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유 부총리)

며칠 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승민 의원과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주고받은 질의·답변의 일부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국감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대목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화제가 되지 못했다. 우병우 민정수석과 최순실 의혹, 미르·K 스포츠 재단, 송민순 회고록 파동으로 이어지는 여야 간 난투(亂鬪)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이 정부에서 총리나 장관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 대면(對面) 보고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이상 뉴스가 아니어서인지 언론도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런데도 국회 기재위 국감에서 오간 유 의원과 유 부총리의 대화가 며칠째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앞에 닥친 위기들이 예사롭지 않아서다. 다들 국가적 비상(非常) 상황이라고 한다. 대통령도 얼마 전 '복합적 위기가 겹친 비상시국'이라고 했다. 이번 위기는 크게 보면 두 축이다. 하나는 북한발(發) 안보 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다방면에서 터져 나오는 경제 위기 조짐들이다. 안보와 경제 위기가 동시에 들이닥친 것이다.

14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온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어느 나라나 큰 위기가 지나고 나면 국가 최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얼마나 많은 공개·비공개 회의가 열리고 이를 통해 어떤 결정들이 내려졌는가가 드러난다. 2008년 가을 미국을 강타한 금융 위기도 마찬가지다.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등은 수시로 모임을 가졌다.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직접 회의를 주재했고, 폴슨과 버냉키를 비롯한 고위 경제 관료들은 독자적인 해법을 찾아 동분서주했다.

미국 언론인 데이비드 웨설은 미국 금융 위기를 다룬 책에서 "부시 대통령은 금융 위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며 "(알카에다·탈레반 등의) 미군을 겨냥한 미사일 공격에는 즉각 대응했지만 금융 위기에는 '관객'의 자리에 머물렀다"고 전했다. 당시 미국도 안보와 경제, 두 개의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이 시작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어 금융 위기까지 닥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부친인 조지 H W 부시 전(前) 대통령이 마무리 짓지 못한 '이라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마치 가문(家門)의 숙원인 양 달려들었다. 그래서인지 부시는 안보 문제에는 즉각 대응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지만 미국 국민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 금융 위기에선 '관전자'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결국 부시가 속한 미국 공화당은 그해 11월 대선에서 패했다. 정권을 넘겨준 것은 이 금융 위기에서 미국인들이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사실 사소한 문제다. 수많은 미국 중산층 가정이 무너졌고, 국가적으로도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허용했다. 미국 쇠망론까지 나올 정도였다. 미국 공화당은 지금껏 그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부시의 실패'가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 요즘이다. 유승민 의원이 '대통령께 최근 경제 상황을 직접 보고한 게 언제냐'고 물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유 의원은 "안보와 경제, 두 방면에서 위기가 다가오는데 최근 대통령의 발언이 온통 '안보 문제'에만 집중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런 질문을 했다. 그에 대한 경제부총리의 대답이 '요 근자에 직접 보고한 적은 없다'였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의 업무 방식을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얼굴을 맞대고 의논하는 것보다는 보고서를 더 선호하는 박 대통령의 방법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문제는 어떤 결과를 내놓느냐다. 요 몇 달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이어지는 경제 악재(惡材)에서 정부는 사실상 아무 역할도 못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정의 중심(中心)이 무너진 듯한 걱정이 들 정도다.

4년 전인 2012년 대선 직전 박근혜 후보 쪽에 '국민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하나의 메시지를 꼽아달라'고 하자 '잘 살아보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박 대통령의 1년여 남은 임기 동안 이 다짐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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