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성 / 국제부 기자

19일 저녁 베이징 시내 주중 한국 대사관저에서는 개천절과 국군의날을 기념하는 국경일 리셉션이 열렸다. 짙은 스모그에도 각국 외교 사절과 한국 교민, 기업 관계자 등 1700여명이 참석해 한류 문화 공연과 한식을 즐겼다.

이날 행사는 예년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가 인사말을 한 한옥동(棟) 2층 주빈석이 텅 빈 것이다. 이 주빈석은 주재국 중국에 배정된 자리로, 지난해엔 푸잉(傅瑩) 전인대 대변인, 그 전해엔 류전민(劉振民)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앉았다. 하지만 올해는 앉을 사람이 없었다. 중국 외교부가 부부장 이상을 보내던 관례를 깨고 참사관급인 과장 이하만 보내 참석자의 격을 확 낮춘 탓이다. 고위 인사들의 불참 사실도 행사 당일 오전에야 통보됐다.

중국 측은 "쿵쉬안유(孔鉉佑) 부장조리(차관보급)가 방한하는 등 현안이 많아서…"라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이날 중국 정부 다른 부처들도 약속이나 한 듯 줄줄이 과장급 이하만 보냈다. 한국 대사관은 결국 주빈 없이 행사를 치렀다.

지난달 26일 주한 중국 대사관이 서울서 개최한 중국 국경절 리셉션에는 우리 외교부의 임성남 차관과 이홍구 전 총리 등이 참석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중국의 이날 행태는 결례였다. 사드 갈등에 따른 분풀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날 리셉션에선 "자칭 대국이라는 나라가 소국 외교를 하고 있다"고 혀를 차는 이가 많았다. 한 참석자는 "미·일 같은 나라와는 아무리 갈등이 있어도 이렇게 치졸하게 굴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한국을 쉽게 본다는 의미"라고도 했다.

지난주 주중 한국 대사관 국정감사 때 한 야당 의원이 "사드로 갈등이 있어도 중국은 대국이다. 유연성이 있다"며 적극적인 대중 외교를 주문한 적이 있다. 대중 외교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건 맞지만, 중국이 '유연한 대국'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터무니없는 과대평가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