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호 / 논설위원

국내 외국인학교에서 쓰는 교과서 가운데 동해 관련 내용을 담은 33권 중 24권이 일본해로 표기돼 있다고 한다. 9권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고 있다. 동해로만 표기한 경우는 한 권도 없었다. 2주일 전 열린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뒤늦게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국내 외국인학교 관계자를 초청해 설명을 하겠다고 나섰다. 정부의 인가를 받은 국내 소재 외국인학교 교과서를 놓고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교과서에 일본해로 표기한 국가는 10곳인 데 비해 동해를 단독 표기한 국가는 2곳에 그쳤다. 그나마 우리를 빼면 터키 한 곳이다. 미국 등 16개국에서는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고 있다. 2014년 미국 버지니아주 교과서에 동해 병기를 도입한 법안이 주의회에서 통과됐던 일은 민간 외교의 어마어마한 성과였다.

동해 표기의 결정적인 무대인 내년 4월 모나코 국제수로기구(IHO) 19회 총회를 앞두고 관계자들의 행보가 부산하다.

국제적으로 지명 표기는 IHO가 1929년 내놓은 '해양과 바다의 경계' 초판에 따라 유지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였으니 한반도 모든 지명은 일본 입맛대로 표기됐다. 우리는 1957년에야 IHO에 가입했다. 정작 동해 표기 문제 제기는 유엔에 가입한 다음해인 1992년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동해 단독 표기를 요구했지만 국제사회에서의 현실적 한계를 확인한 뒤 2002년부터는 동해와 일본해 병기로 선회했다. 2012년 18회 총회에서 병기를 관철시키지 못했으니 이번 모나코 총회 후 나올 `해양과 바다의 경계` 제4판 반영을 목표로 뛰는 중이다. 정부에서는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해양조사원이 전담하는데 총회가 열리는 내년 관련 예산을 20억원도 안 줬다니 답답하다.

민간에서는 1994년 결성한 동해연구회가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해 표기를 되찾자는 맹목적인 접근보다는 일본해 일색을 동해와 병기되도록 하는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어제와 오늘 제주에서 동해연구회 주최로 국제세미나가 열린다. 일본을 포함한 12개국 전문가들이 모여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자리다. 동해 명칭에 관한 국제세미나로만 벌써 22년째다. 영토 분쟁이나 지명 표기는 애국주의만 앞세워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되레 외면을 받는다.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해나가야 성과를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