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기자

우리나라에 중국인들이 집단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8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신식 군대(별기군)와의 차별 대우와 민씨 일족의 전횡 등에 불만을 품고 임오군란을 일으키자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청나라 군대 4천여 명이 인천을 거쳐 서울 용산에 주둔한다. 이때 부대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공급하기 위해 40여 명의 군역 상인도 함께 들어와 부대 인근에 자리 잡은 것이 차이나타운의 기원이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한 이듬해 4월 인천화상조계장정(仁川華商租界章程)이 체결돼 지금의 인천시 선린동 일대의 5천 평(약 1만7천㎡) 대지에 중국 조계지가 세워졌고, 그해 10월 청국 영사관도 들어섰다. 인천에 이어 1887년 부산, 1889년 원산 등지로 청나라 조계지가 늘어나고 인천의 조계지 터도 계속 확장됐다. 국내 화교들은 주로 무역업에 종사해 중국에서 식료품, 잡화, 비단 등을 수입해 팔고 조선의 사금 등을 중국에 수출했다. 1887년에는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 지방에 살던 왕씨와 강씨가 중국음식에 필요한 재료를 공급하려고 채소 종자를 들여와 농사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배하지 않던 양파, 당근, 토마토 등이 이때부터 전국 각지에 전파됐다.

한국식 중국음식의 대표격인 짜장면은 1890년대 부두의 하역 인부들이 손쉽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국수에 춘장과 채소를 섞어 비벼 준 것이 기원이라고 하는데, 이설이 분분하다.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의 효시는 공화춘으로, 1905년 산동회관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했다가 1912년 개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호떡은 1920년대 중국의 막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대거 유입되자 화교들이 이들을 대상으로 밀가루에 꿀을 넣고 번철에 부쳐 판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화교들의 타고난 장사 수완과 대국을 등에 업은 위세, 지리적 근접성 등으로 번성하다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성장세가 꺾인다.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인의 서슬에 눌려 지내긴 했으나 국내 화교 가운데는 무역으로 재미를 본 사람이 적지 않았다. "비단이 장사 왕서방/ 명월이한테 반해서…”라는 가사의 노래 '왕서방 연서'가 나온 게 1938년이다. 그러나 1931년에는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일어난 만보산 사건의 불똥이 튀어 상점이 습격을 당하거나 화교들이 학살되는 수난을 겪었고,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로는 화교 전체가 적국민으로 간주돼 핍박을 받았다.

1949년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자 국내 화교들은 대만으로 국적을 바꿨다. 6·25 때는 인천상륙작전을 펼치던 유엔군이 인천 차이나타운 일대에 집중적으로 함포 사격을 가해 건물 대부분이 파괴됐다. 이후에도 화교들은 사업이나 부동산 소유 등에 많은 제약을 받아 해외로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화교 하면 중국음식점을 떠올리는 까닭도 음식점 말고는 다른 사업을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자 국내 화교촌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1998년 외국인 부동산 소유 규제가 완화됐고 2001년에는 인천 차이나타운이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젊은이 사이에서는 '성지 순례' 코스의 하나로 꼽히고 있고, 중국 옷이나 각종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즐비해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삼국지 벽화 거리도 명물로 자리 잡았으며, 한중문화관과 화교역사관도 문을 열었다.

인천 말고도 서울의 명동과 연희동에는 화교학교를 중심으로 중국인 거리가 형성돼 있고, 대림동과 구로동 일대에는 중국동포(조선족)를 중심으로 중국인촌을 형성하고 있다. 부산역 맞은편에도 차이나타운이 있는데 1993년 부산시와 상하이(上海)시가 자매결연해 상해 거리라는 공식 명칭을 얻었다. 2011년 투자이민제 도입과 함께 중국인 영주권자가 급증하고 있는 제주도에도 중국 거리가 들어섰다. 제주시는 2010년 6월 연동에 '차 없는 거리'를 조성해 놓았는데, 2011년 9월 중국 10대 기업의 하나인 건강용품업체 바오젠(寶健) 그룹의 직원 1만1천여 명이 제주도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이 거리의 이름을 '바오젠로'라고 명명했다. 강원도 강릉시도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정동진의 50만여㎡(150여만 평)에 '차이나 드림 시티'란 이름으로 대규모 관광시설을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17일 중국 베이징(北京)의 칭화(淸華)대 도서관에서는 인천대 중국학술원과 칭화대 화상(華商)연구센터 주최로 '옛길 사이 작은 사연들'이란 주제 아래 인천 차이나타운 사진전시회가 개막했다. 짜장면의 원조 공화춘의 옛 모습, 인천화교학교의 1950년대 졸업식 사진, 주한 화교의 고향인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시가 기증한 패루(牌樓), 화교들의 관혼상제 장면 등 인천 차이나타운의 130여 년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과 자료 220점이 선보이고 있다. 내년 2월부터는 베이징의 중국화교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되는 데 이어 광저우(廣州)의 광둥(廣東)화교박물관과 일본 고베(神戶)의 화교역사박물관에서도 관람객을 맞을 예정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다문화 집단거주지인 인천 차이나타운은 한중 우호의 상징이기도 하다. 양국 관계가 밀접할 때 번성했고 사이가 소원해지면 침체기를 맞았다. 지난 20여 년간 두 나라는 상생 협력의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오다가 최근 들어 사드 배치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이번 사진전도 중국 측이 난색을 보여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성사됐다고 한다. 중국인 관람객들은 인천의 화교들이 한국인들과 정겹게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한국을 더욱 가깝게 느끼고, 한국인 유학생들도 차이나타운의 역사를 더듬어보며 양국 간 가교 구실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