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가와 유키코 / 와세다대 교수

"껌 씹을래?" 갑자기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방이 껌을 반으로 잘라 나에게 주었다. 남은 껌이 한 개뿐이라 혼자 씹기는 미안했던 모양이다.

과거 민주화 선언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는 이런 따뜻함이 있었다. 이후 물질적으로는 압도적으로 풍부해졌지만 서로 나누는 문화는 사라지고 사회의 상처는 깊어졌다. 거의 20년이 지난 외환위기 이후에도 리먼브러더스 쇼크나 유럽 재정위기, 지난해부터는 세계 무역 수축 등이 어지럽게 이어져 눈앞의 성장을 우선해 온 한국의 경쟁사회는 패자나 약자를 향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결여되기 시작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없었다면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놀라움이 이렇게 순식간에 분노로 돌아섰을까.

2016년 9월에 1228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는 최근의 경제적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가계부채의 50%가 소득 및 순자산 상위 20%층에 집중됐으며 금리 인하의 여지도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통제돼왔다.

그러나 점차 질이 떨어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 소득 최하층 20%에 대해서는 이미 순자산이 2010년 이후 감소로 돌아섰고 저축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생계형 대출이 늘어났을 가능성도 높다. 이 계층은 은행보다 규제가 느슨한 비은행금융회사 대출에 의존하기 때문에 금리 부담에도 취약하다. 가계부채에는 분류되지 않는 자영업자 대상 융자도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조기퇴직 관행이나 공적연금 및 기업연금 부족, 자녀 교육비 대출 등으로 인해 퇴직 후 자영업으로 활로를 모색한 베이비붐 세대는 많지만 장기화·구조화하는 개인 소비 침체는 그 목을 조여가고 있다.

또 부유층부터 하위층까지 자산이 지나치게 부동산에 집중된 것이 한국의 특징으로 당연히 가격 하락에 대한 취약성이 높다.

특히 2014년 이후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완화에 금리 인하와 재개발 지원이 더해지면서 부동산 쏠림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주택대출의 대부분은 단기융자로 일정한 원금상환 유예기간을 둔 것이 여전히 많아 부동산 가격 하락 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위험이 높다.

부동산 가격이 높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결혼을 앞둔 젊은 층에 주택난을 가져오고 교육비 급등과 함께 출산율 저하로 이어져왔다. 베이비붐 2세 세대의 출산율 반전에 정책 노력을 집중해야 하는 시기인 만큼 가계부채와 세트가 된 부동산 시장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가계부채를 실정과 무책임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쉽다.

그러나 아픔을 동반한 개혁보다도 정치인이나 정부와 함께 눈앞의 성장을 칭찬해온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

또 욕심의 덩어리로 변한, 혹은 이데올로기에 좌지우지돼 정치화된 개혁에 반대하는 여러 조합과 시민단체, 대기업과 공기업 부채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자녀만은 대기업 근무나 공무원을 바라는 부모 등 국민의 모순도 크다. 최순실 본인은 물론이고 그 이권에 모인 사람들은 예외적으로 이상한 부도덕자이며 보통 국민 전체는 결백하다고 과연 단언할 수 있을까.

한국에 남아 있는 개혁 시간은 적고 정책 여지도 크지 않다.

재정건전성은 높아 보이지만 불투명한 공기업·지방정부 부채, 기업 구조조정에 투입된 지원금 등을 제외할 경우 겉보기만큼 여유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미 부가가치세율은 일본의 소비세율보다 높고 증세 여지도 적다. 수출 전망에도 어둠이 자욱하다. 결국 차기 정권은 고통스러운 구조조정과 노동개혁을 추진해 기초연구개발의 위험 감수를 포함한 혁신이 주도하는 선진국형 성장으로 대전환을 굽히지 않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 기점은 사회적 합의의 형성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복잡하거나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경영자가 노동자나 종업원에게, 도시가 지방에, 입시 등 그 밖의 여러 경쟁에서의 승자가 패자에게 "껌 씹을래?"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 말하는 것이 바보 취급을 받지 않는 사회, 그것만으로 충분히 한국은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