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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소중히 하는 나라가 우선이다!!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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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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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 교수

   
 

지난 2월18일, 학기말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서울의 학회에 참가했었다. 주최 측 배려로 오랜만의 고려대 캠퍼스에서 그동안 연구했던 ‘재일동포 민족교육 실상’에 대한 발표・의견 교환을 한 뒤, 지인들과 만찬회 만끽 중에 마침 토요일이라서 광화문으로 향했다. 신학기 수업에서 다양한 한국사회 모습을 소개하려고 택시를 불러서 서둘러 갔지만, 탄핵 반대 측 집회는 이미 끝난 것 같다며 기사는 광화문 근처로 달렸다. 헌법재판소 앞으로 가기 위해 낙원상가를 향하는 집회가 보였기에 내려서 그들과 같이 걸었다. 그 속에는 어린 아이나 학생들과 함께 참가한 가족들, 목소리를 높이는 연장자들, 승려 등 남녀노소를 막론한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하였고, 비록 혼자였지만 어색함이 없는 분위기였다.

운현궁 앞을 지나자니 1866년에 16세로 왕비에 간택되어 15세 고종과 가례(노락당)를 올렸던 민비(사후 명성황후)를 비롯한 수많은 운현궁의 역사가 뇌리를 스쳤고, 시민들이 외치는 목소리가 그러한 근대사와 겹쳐져 만감이 교차되었다.

옆에 걸어가던 참가자에게 물었더니 그 날의 집회는 헌재 앞과 청와대 쪽과 수상 관저 쪽으로 나눠서 집회 중이라고 한다. 빠른 리듬의 음악에 다양한 가사로 노래를 부르며 걷는 참가자들 양측에는 검은 필름으로 차 안이 보이지 않는 벤츠에서 국산차까지 검정색 경찰차(?)가 즐비했고, 집회에 익숙한 듯 한 사복 경찰들이 집회의 흐름을 보고 있었다. 운현궁 앞길에서 안국동 사거리와 마주치는 길목에는 경계선이 쳐졌었고, 앳된 얼굴의 경찰들이 방패 막으로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나 경찰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무엇 때문에 쉬어야 할 이 추운 토요일 밤을 이렇게 대치하며 고생을 하고 있나???

어른(?)들이 저지른 일 때문에 이런 국가 분열 구도가 한국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작년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나왔을 때 ABC, CNN, BBC 등 해외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컬트(광신 종교) 리더의 딸(cult leader’s daughter)에 좌우된 정부라고 조롱할 때, 필자는 솔직히 그 많은 희생을 치루며 일궈 온 대한민국의 국가 가치가 한 순간에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듯 해서 아찔했고, 한국의 스캔들 얘기가 나올 때마다 자부심을 잃어갈 재외동포들을 생각하자니 이런 상황을 상습화 시켜 온 권력유착의 비리 역사에 어떻게든 종지부를 찍어야만 정직하고 성실한 국민들이 격차의 모순에 고통 받지 않고 자긍심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지난달 18일 저녁 헌재 앞에서의 집회 모습. ⓒ 이수경

외신들은 분단국가에서 또 다른 분열의 갈등을 만든 최순실 게이트에 어이없다는 표현으로 도배했고, 지지율 4퍼센트의 정부와 실핏줄처럼 엮인 비리 내용들을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비판의 강도를 높이는 일본 우익 및 헤이트 스피치의 뉴스는 더더욱 참담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해외에서 사는데도 이렇게 절망적인 기분인데 국내에서 성실히 살고 있는 시민들이야 어떠한 느낌이랴. 게다가 대선이라는 강력한 정치적 움직임까지 맞물려 양극화된 이념 싸움으로 첨예한 대립 구도를 자아내고 있으니 이토록 슬프고 비극적인 사회를 만든 근원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제대로 하지 못한 역사 청산 결과, 사회는 ‘반공’ 대 ‘반일’이라는 극단적 포퓰리즘으로 이성을 잃고 있고, 생각 짧은 외교전략 결과가 초래한 한중 긴장 관계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상당히 심각한 상태다. 도대체 나라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나?

그런 자조적 기분으로 광화문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니 안국동대로는 경찰 버스 차량으로 덮여 있었다. 대한민국 경찰차는 모두 여기에 모였나 싶을 정도의 위압감에 한참을 보고 있었지만, 그 주변을 걷는 커플들이나 가족들은 대수롭지 않게 노래도 부르고 데이트를 즐기는 평안한 분위기였다. 이게 한국 시민 사회의 일상화된 모습일까? 아니면 포기일까?

광화문 세종대왕상 주변에 오니 여러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빴고, 세월호 관련 장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며 다양한 항의 표현을 여러 형태로 표출하고 있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국적 불문하고 많은 학생들이 내 연구실을 찾아와 물었다. 자식 잃고 가족 잃은 부모, 유족들이 저토록 울부짖는데 왜 한류문화 대국이라는 한국 정부는 세월호를 인양도 하지 않고, 가족들을 힘들게 하냐고… 아마도 일본을 비롯한 해외의 교단에 서 있는 한국계 교수들이라면 누구나 몇 번은 듣지 않았을까? 그 물음에 대해 무슨 이유로 피해자들의 시신을 그토록 오랫동안 해저에 방치해 두는지, 왜 유가족들을 지옥같은 세월에서 해방시켜 주지 않고 있는지 나 역시 정부의 속내를 알지 못하니 대답하기에 난감했다.

과학의 발달로 체세포 복제줄기세포로 죽었던 동물 복제도 가능하다는 첨단 과학국가 대한민국이 아니었던가?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설혹 단순 사고라 할지라도 청천벽력의 충격을 받은 국민들에게 최대의 성의를 보이며 유족들에게 하루속히 가족의 시신이라도 찾아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아닐까? 아무리 인권의식이 낮은 국가라 할지라도 납득가기 힘든 사례가 세월호 사고일 것이다. 극단적인 예지만, 만약에 대통령 같은 특권층이 그런 사고를 당했어도 선체를 해저에 가만히 두고 있을까??? 국가의 격차와 모순적 태도가 수많은 가족들을 미치도록 만들텐데 어떻게 가족과의 기억을 묻어두고 정상적인 삶인 척 태연히 살아가라 종용할 수 있을까?

필자에겐 세월호와 관련된 두 가지 사례가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고 있다.
하나는 세월호 참사 다음 해인 2015년 6월1일, 중국 호북성의 장강(양자강)에서 대형여객선 동방지성호가 악천후에 휘말려 침몰하였고, 결국 14명은 구출되었으나 444명이 사망 혹은 행방불명(아사히신문 참조)이 된 대참사가 있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사고 5일째부터 인양작업을 시작하였고, 유가족들의 불만의 감안과 그 전 해의 한국의 세월호 사례를 감안해서인지 선체 내부 조사 작업을 TV로 중계, 6월6일 오전에 선내 조사활동을 종료하고 3 대의 크레인으로 선체를 인양하였다. 강풍 등으로 조사 작업은 난항을 보였으나 중국 정부는 총력을 다 하여 유족들에게 성의를 보인 셈이다. 이런 점, 대한민국은 통영함 출동을 명령했다 저지당하고 해임되었던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가 무죄가 되자 짓밟힌 명예를 보국훈장으로 회복시키려 했다. 해군참모총장의 출동 저지권을 가진 자가 대한민국에서 과연 몇 사람이 있나? 분명 최첨단 해상 크레인은 우리도 갖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심해잠수능력을 확보한 최정예 심해잠수 특수부대’라고 자랑하는 SSU(ROK Navy Ship Salvage Unit)도 존재한다. 세계 톱 규모의 조선사업으로 국가 위상을 떨쳐 온 한국이다. 아무리 거센 조류와 탁한 시야라지만 분명 해양선박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어떻게, 왜, 무엇 때문에 아직도 대한민국의 세월호는 방치한 채로 바다 속에 놔두고 선체 인양을 하지 않고 있는가? 이런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납득할 수 있단 말인가?

또 다른 하나는 1942년 2월3일, 일본의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조세이(長生) 해저탄광에서 열악한 시설로 수압을 견디지 못한 갱도가 붕괴되면서 광부 183(그 중 한국인은 136명)명이 산 채로 해저에 수몰된 조세이탄광사고이다. 당시 전시노동자 근로 환경은 열악 그 자체였고, 식민지 출신의 동포들에 대한 학대와 착취 속의 현장 사고가 다발하였다. 그런 사후 처리 문제가 지금에 와서야 인권유린적 차원에서 한일 시민사회의 역사 청산의 과제가 되고 있다.

   
▲ 조세이 탄광 추모제 ⓒ야마구치현 강창헌 민단장

수몰사고 '소위 물비상(水非常)사고'가 발생하자 순식간에 들이닥친 헌병들이 갱구를 폐쇄하고 사람들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였다. 이 조세이탄광 문제는 필자가 아사히신문사에 재직 중이던 제자와 함께 조사를 하여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고(「宇部の長生炭鉱と戦時中の朝鮮人労働者」, 2008), 당시의 일본 측 감독의 눈물, 유가족의 불행했던 삶들, 그리고 갱구 근처로 돌아와서 노후를 맞은 조세이탄광주의 딸 등을 만나서 사고 관련 증언을 들은 적이 있다. 검은 다이아몬드라 불리며 전시 국책 산업으로 부상했던 탄광사업에 많은 식민지 동포들이 동원(초기 모집, 전쟁말기에는 강제 동원)되었으나 필자가 당시를 기억하던 90세의 지역 주민에게 인터뷰 했던 바, 한국인 여성이 부엌에 찾아와서 야채 좀 나눠달라고 하여 불쌍해서 줬지만 집안 어른들로부터 조선인들은 위험하니 가까이 가지도 말라고 했다 한다. 참 서글픈 민족이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망국의 약자들….

암울한 시대에 약소국 국민으로 태어나 이국땅서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목숨을 잃은 우리 동포들. 그런 그들의 억울한 한을 풀어주고 유족의 치유와 한일 관계개선을 위한 일본 시민들의 추모 운동이 재일동포들과의 협력 속에 전개되었고, 아직도 바다 속에 묻혀 있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우베 지역의 교회와 유가족이 매년 참가하여 추모제를 지내왔다. 2017년 2월의 75주년 추모제에서는 히로시마 총영사관 주최로 한국서 승려 36명과 신자 200명 이상이 참가한 총 400명 이상의 천도제가 행해졌다. 매년 추모제와 한일 역사청산활동에 주력해 온 ‘수몰사고(水非常)를 기리는 모임(刻む会), 井上洋子 공동대표’는 이번 추모회에서 “아직도 유골이 바다에 있지만 이대로 방치하지 않고 반드시 발굴할 것이다”는 유골 수습의 의지를 보였다. 제국주의의 압제 속에서 파생된 75년 전의 탄광수몰사고, 희생자들과 그 유족을 위한 추모제를 기리며 지금도 유골 수습을 과제로 삼고 인간의 양심을 관철하려는 움직임을 시민들의 한일 교류에서 본다. 

진정 묻고싶다!!
75년 전 군국주의 체제하에서 버림받고 죽어간 희생자들을 버렸던 제국주의 일본의 모습과, 글로벌 선진 문화대국이라 자칭하며 세월호 속에 버려진 자국민의 유골 수습은 커녕, 책임 전가에 급급하기만 한 오늘의 대한민국 모습은 무엇이 다른가? 국가권력이 앞서고 국민을 보호하지 않았던 무책임한 제국주의 일본과 오늘의 이 정권의 무책임함의 구조가 같아서야 되겠는가? 책임지는 리더의 부재와 변명 같지 않은 언어의 유희만이 난무하는 이 모순이 범람하는 사회!!

양심불량은 자신들의 이권에만 집착하며 흉물스런 태도를 거침없이 보인다. 마치 몇 백년 호사를 누릴 듯한 우둔함이 더더욱 흉물스럽게 느껴진다.

일본의 양심어린 과거사 청산은 향후 한일 미래의 공생을 위해서는 절대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들이 문제를 추스리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화려한 깃털로 외관만 생각하는 까마귀가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여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시민 사회’기반을 다져야 한다. 시민이 권력이어야 하고, 민심을 천심으로 여기는 민주주의 사회가 구축되어야 한다. 국민의 아픔에 공감어린 성의로 다가갈 수 있는 선진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때 국민의 정체성도 올곧게 확립될 것이다.

늦었지만 우선 세월호 선체부터 인양하여, 잘못된 그 날의 역사부터 바로 해 보자. 정쟁이 우선되는 정치 비즈니스 국가보다 사람의 아픔을 달래주는 복지 국가, 사고 처리・위기 대처에 강한 정부 수준이 국가 위상이다. 하루속히 이성적인 시민사회를 되찾고, 더이상 흑백의 색깔 논리로 혼란스런 모순의 구덩이에 허덕이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숙소로 향할 때, 그토록 많았던 집회 참가자들이 돌아간 광화문 대로에는 쓰레기 하나 없었기에 성장한 공공의식에 감동조차 일었다. 비폭력 집회를 뿌듯하게 느끼며 [한국은 분명히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이 우선되는 선진 시민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얻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따스하게 배려하며, 이기적인 사욕보다는 공공성이 존중되는 시민 사회를 향하는 역사의 기로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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