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필 / 논설고문

미국에도 '박사모'같은 광적인 팬카페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었다'가 답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아주 오래 전에. 역사책엔 성공한 예가 한 차례 기록돼 있다. 장본인은 마틴 밴 뷰런(1782~1862).

앤드루 잭슨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에 이어 부통령을 지냈다. 잭슨에게서 대권 수업을 받았으나 상대 후보가 좀 버거웠다. 측근이 아이디어를 냈다. 선거 전략이라기보단 꾀에 가까웠다. 밴 뷰런의 별명 '올드 킨더후크(OK)'를 캠페인에 써먹은 것. 킨더후크는 뉴욕주의 한 작은 마을로 밴 뷰런이 태어나고 묻힌 곳이다.

선거 캠프가 닉네임의 첫 글자를 따 슬로건을 지었다. "OK is OK." 쉽고 재밌어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곳곳에 'OK 클럽'이 생겨나 밴 뷰런의 당선을 도왔다. 'OK를 사랑하는 모임'이니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OK사모'라 부를 만하겠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밴 뷰런은 상대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제 8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럼에도 재임시절 각종 스캔들에 연루돼 지지율이 바닥을 쳤다. 역대 최악의 대통령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불명예를 안은 것. 그래도 한번 권력의 맛과 멋에 길들여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모양이다. 재선에 도전했으나 결과는 굴욕적이었다. 그것도 처참하게. 고정 지지층만 믿고 정치를 했으니 망신살이 뻗칠 수밖에.

제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1856~1924)은 결재를 할 때 꼭 'OK'를 써넣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를 인디언 원주민 말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윌슨은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 가운데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당대 최고의 엘리트가 어찌 이런…. 그럴 만도 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윌슨의 아내 에디스에겐 인디언 피가 흘렀던 것. 옛날 옛적 추장의 딸 포카혼타스가 조상이었다.

밴 뷰런이냐, 윌슨이냐. OK의 최초 사용자를 놓고 엇갈린 주장이 나오기도 했으나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건 당시 동부의 유력 일간지 보스턴 모닝 포스트. 1800년대 중반 몇몇 기자들이 뉴스룸에서 줄임말 게임을 즐겼던 데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로 굳어져 있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의 사명은 '정확한' 보도일 터. 장난삼아 'All Correct'의 약자가 OK라며 이를 기사화했다는 것이다. 어느 학자는 OK를 일컬어 미국의 혼이 담겨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가장 미국적이고, 가장 진취적이고 가장 긍정적인 철학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미국엔 OK가 있다는 우스개가 나올 만큼 미국인들의 자부심은 각별하다. 하기야 세계 어느곳을 가더라도 통하는 지구촌 유일의 공용 낱말 아닌가. 반세기 전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은 닐 암스트롱은 감격에 겨운 나머지 OK를 되뇌었다.

가장 울림을 준 건 지난 2001년 9·11 테러 참사가 벌어졌을 때. 운명의 그날 UA93편에 탑승한 토드 비머는 비행기가 납치된 직후 기내 전화기로 뉴욕에서 벌어진 상황을 전해들었다. 살아날 가능성은 없었다. 그는 다른 승객들과 맨손으로 테러범들에 맞서기로 했다.

"준비됐습니까. OK!"라는 말과 함께. 백악관을 향해 돌진하던 비행기는 결국 펜실베이니아 들판에 떨어졌고 생존자는 없었다. 비머가 유언처럼 남긴 말은 온 미국을 뒤흔들어놨다. 그의 희생으로 여론이 하나로 뭉쳤지 않은가. 테러와의 전쟁은 급물살을 타고. 매년 3월 23일 오늘은 'OK의 날'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큰소리로 한번 외쳐보자. "나도, 당신도, 그리고 매일의 일상도 OK." 삶의 에너지가 샘솟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