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나의 전공은 언론학 (저날리즘, Journalism)과 그 이론적 바탕이 되는 커뮤니케이션학이다. 이 분야 이론과 실제를 가장 오래 했다. 현장 경험 없이 학위만 가지고 강단에 서는 학자가 많다. 언론은 이와 좀 다르다. 발로 뛰어 보지 않고 가르치는 언론학은 타지 않는 나무가 되기 쉽다.

젊어서 한 때 나도 문학에 심취했었다. 작품을 써냈다는 말은 아니다. 그 당시 나온 시, 소설, 수필, 문학 입문 등 닥치는 대로 읽었었다. 실속 없는 이상주의자인 나는 어렵게 학교를 다니면서 다른 소년들처럼 저항심을 문학으로 나타내고 싶었다.

중3 때 6·25가 터져 서울의 중앙도서관에서 약탈한 책들이 지방에까지 쏟아져 나와 길거리에서 거의 종이 값으로 팔리는 서글픈 사태가 벌어졌었다. 보는 대로 사들이고 읽고 보관했던 책들 중에는 정지용, 김기림, 박태준 등 나중에 알고 보니 귀중한 월북작가들 것이 많았다.

대학 입학 때가 되어 담임이 묻기에 문학을 하겠다고 하니 “딱 가난하게 만 살려고 하는구나”하며 말기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쪽은 접었다.

개인 이야기가 길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달려온 언론과 문학의 길은 크게 다르지 않고 사촌(四寸)간이라는 사실, 이게 해외 한인사회에 갖는 잠재력을 살펴보기 위한 글의 전주곡이다. 먼저 왜 사촌간인가?

용어 선택의 전문가

미국에서 저널리즘 석사공부를 할 때 한 교수가 한 말이 떠오른다. 저널리즘은 ‘포에트리’(poetry, 詩)라는 것이다. 시와 언론은 서로 무슨 관계가 있어 그렇게 말했을까? 시는 작가의 사상과 정감을 독자에게 전달함으로, 넓게는 커뮤니케이션 행위임에 틀림없다. 물론 교수는 그런 의미로 언론과 시를 거론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저널리즘에서도 시와 마찬가지로 문장과 표현이 정교해야 한다. 따라서 문장력 또는 문장의 질(quality of writing)로 말하자면 기사도 시만큼이나 정성을 들여 다듬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글과 말재주가 언론의 본질은 아니다. 거기에 담긴 내용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내용을 담는 그릇인 문장이 조잡하다면 품위가 없고 독자를 끌 수가 없다. 음악이 소리와 다른 이유는 일정한 박자와 리듬을 따라 작곡 되어 아름답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음이다. 글과 말도 마찬가지다.

언론의 전문성, 또는 수준을 말할 때는 글쓰기와 말하기의 기교적 측면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저널리즘교육 과정에 기사쓰기, 사설쓰기, 잡지 글 쓰기 (magazine writing) 과목이 들어 있는데 내용이 좋아도 글이 서툴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방송과 SNS(인터넷 매체)도 일단은 글로 써야 하니 예외가 아니다.

고급스러운 글이 되기 위한 한 가지 조건은 언어의 경제성이다. 30개의 단어 대신 열 개를 써서 같은 정보, 지식, 사상과 정감과 현장 묘사를 훌륭히 전달했다면 언어의 경제성은 높아진 셈이다. 문장이 너절하다든가, 군말이 많다든가, 전문성이 떨어졌다면 언어를 경제적으로 쓰지 못한 탓이다.

시는 대중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메시지 중 언어의 경제성 원칙을 가장 잘 지킨 예이다. 시인은 최소의 글과 말로 최고의 사상과 정감을 전달하려고 단어 하나하나의 선택에 온 정성을 쏟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시인 등 문학가는 ‘고상한 생각’ (high thinking, plain living이란 시인 워드워즈의 말에서) 외에 글을 경제적으로 쓸 수 있는 용어 선택의 전문가이다.

근대화의 역군

우리나라 근대화 초기에 문학인은 탁월한 문장력 외에 그 당시 대표적 지식인으로써 민중계몽 활동과 사회 및 정치 평론에 적극 참여하게 되어 문학인과 언론인 간 역할의 구별이 어려울 정도였다. 많은 문학인이 신문사 편집인이나 주필을 맡았었다.

그런 사정을 일찍이 자세히 지적한 사람은 허버트 팻신이란 미국 학자 (Herbert Passin, Writers and Journalists in the Transitional Society, 1963)다. 그 전이나 후 이 과제를 연구한 우리나라 학자가 있었는지 리서치를 안 해봐서 모른다.

우리나라의 초기는 물론 요즘에도 신문, 잡지, 방송의 내용 가운데 문학 작품이 많고, 특집 취재와 보도를 문학가에게 맡기는 관행이라던가, 그 결과 언론에 쓰이는 문장 스타일과 표현이 문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사실은 이와 관계가 있다.

한 때 북한 문화 유적, 특정 탐색 보도를 잘 알려진 문학인에게 위탁하여 하는 연재, 역사와 사건의 현장, 여행 및 순례, 자연과 특정 고장에 대한 르뽀(reportage), 방송 다큐멘터리 등이 그렇다. 현실을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한 문학가의 재능과 지명도가 결합된 결과 언론은 많은 독자를 확보하는 이점도 갖는다.

미국 신문에서는 독자 대중에게 친숙하도록 기사에 통속적인 말(colloquial expressions, colloquialism)을 섞은 평이한 문장으로 쓰는 경향이 오래 있어왔다. 원래 그런 문학 전통이 강한 우리에게도 그 영향을 받은 듯 기사 중 구어체 선호 현상이 늘고 있다.

역작용도 만만치 않다. 문체의 저속화가 그 한가지다. 기사, 칼럼, 수필 문장에 이따금 나오는 ‘개판이다’ ‘조지다’ ‘까발리다’ ‘멋대로 찧고 까불어’ ‘홀라당 까먹다’와 같은 표현을 본다. 구어체라면 괜찮겠지만 글로 써서는 안 되는 것들이 많다. 과거 학생 시절 논문에 그런 말을 썼더라면 교수는 틀림없이 이게 뭐냐며 야단쳤을 것이다. 언어는 정체하지 않고 변한다. 하지만 유행에 너무 민감한 것은 주체성 없는 우리 국민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한다.

해외 한인사회에 풍부한 문학 재능

언론이 문학과 다른 점 하나는 사실 보도에 더하여 해법을 위한 분석보도를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사실 보도는 사건, 사실, 현장, 문제 등을 있는 그대로 수용자에게 전달하는 보도인데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기사 사례가 그런 것이다.

분석보도는 이슈보도라고도 불리는데 이와는 다르다. 단순한 현장이나 팩트의 전달이 아니고 그런 사실의 뒤에 숨어서 그것들을 일어나게 하는 많은 변수와 세력 간의 역학관계를 밝혀 사회문제 해결을 돕는 언론 장르다. 이론과 함께 가치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시시비비 보도이기에 보도자가 사회과학 지식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나름대로의 강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비교적 쓰기 쉬운 사실보도보다 이슈보도가 많은가가 권위지의 한 척도가 된다.

여기 필자가 사는 호주와 다른 해외 한인 사회도 마찬가지인데 공익 활동의 특징은 있는 건 너무 많고 없는 것은 너무 없다는 점이다. 이런 불균형이 이들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고 있지만 그런 걱정이나 논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아쉬운 일이다.

너무 많은 활동은 노래 (교회 성가대 포함), 문학, 골프, 스포츠 모임과 행사 등 이른바 문화 및 여가 활동이다. 한국인 교회와 한글학교도 많은 편이다. 원래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 많은 음악과 여가 활동은 어쩌면 당연하다. 공익을 내세우는 단체 조직과 활동도 많으나 재정과 전문인 부재로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위에서 많다는 건 여기 꼭 있어야 할 기간 활동은 없는 처지를 빗대서 하는 말이다. 모임과 행사는 고국에 비한다면 결코 많은 건 아니다. 빠져서는 절대 안 되는 기간 활동 한 두 가지 예를 든다면 한인사회 장래를 이끌고 갈 지적 구심점과 우리 대로 필요한 사회교육 기관이다.

밖으로 나온 한인들이 거주국이 원하는 대로 현지 사회와 문화에 완전 흡수되고 그 사회의 구성원이 것이 목표라면 그건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영미사회의 경우 1세대가 그렇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늘 사회적 약자다. 그렇지 않다면 한인회나 코리안이 붙는 그 많은 단체가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고국의 재외동포정책 담당자와 방문해오는 고국의 위정자,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한인회장과 많은 한인 단체 장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들은 마이크 앞에 섰다면 민족 정체성 유지와 거주국 정부와 사회에 대하여 자체 사회를 대변할 능력, 모범적인 소수민족이 되기 위한 우리 대로의 발전 전략과 화합과 결속을 부르짖는다. 그런데도 문제는 무엇이 그런 발전과 화합과 결속을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연구나 논의나 합의된 정책은 없다는 것이다. 지적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몇푼 안되는 공익 자금이 비효과적으로 분산 낭비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가지 대안은 한인들이 모인 곳에는 어디나 있는 교민언론과 우리 말로 쓰는 문인 협회들이다. 한국인 특유의 먹물 전통의 연장이다. 나쁠 건 없다. 그런데 영세한 교민언론은 사회통합이나 교육 기능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틈새를 일부 매울 수 있는 잠재적 인적 자원이 지식인으로서 문학인들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민 생활의 애환이나 과거 지향적인 회상을 주요 토픽으로 쓰는 활동에 편향되는 이른바 이민문학보다 자신들이 거주하는 사회에 대한 저널리즘과 환경 감시를 일부나마 겸하는 문학 작품이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학언론(literary journalism)이다.

이런 시각은 필자가 사는 호주와 그 밖에 직접 가 본 몇 군데 해외 한인사회를 근거로 한 관찰인데 가장 큰 미국 한인사회는 어떤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