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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선거, 최고의 합리적인 경제 행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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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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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미국 인디애나 퍼듀대 경제학과 교수

   
 

“김 교수는 모국인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 투표를 위해 시카고에 다녀왔습니다. 모텔 숙박비 100달러, 차량 연료비 80달러, 식사비용 120달러를 썼습니다. 투표하러 가지 않았다면, 어느 출판사가 제안했던 교과서 평가 회의에 참석해 300달러 정도의 용돈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김 교수가 투표를 위해 지불한 기회비용을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서술하시오.” 몇 해 전, 제가 가르치는 경제학 개론 수업에서 출제한 문제입니다. 대선이 있던 2012년, 아내와 저는 4시간 정도 떨어진 시카고에 가서 투표했습니다. 하루에 다녀오기는 좀 벅찬 거리여서 모텔에서 숙박도 했습니다.

경제학의 ‘합리적 무시’ 이론에 따르면, 투표는 비합리적인 행위입니다. 나 한 사람의 투표가 전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반면 투표를 하는 행위는 비용을 수반합니다. 후보자들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하고, 투표장에 나가야 하며, 일찍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 무리에도 끼지 못합니다. 따라서 합리적인 경제적 인간이라면 투표를 하지 않습니다. 경제학자인 저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편익은 없고 비용만 들여야 하는 투표를 왜 해야 합니까.

최근의 연구들은 합리적 무시 이론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합리적 무시 이론은 개인의 투표 행위가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없으므로 편익이 없다고 가정하지만 인간은 투표에 따른 여러가지 만족감을 누리고 있습니다. 첫째, 저는 투표 참여 인증샷을 페이스북에 올려 자랑하고, 지인들 사이에서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투표에 참여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규범에 순응할 때 만족감을 누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일대 거버 교수 연구팀은 미시간주의 예비선거에서 유권자 8만명에게 서로 다른 편지를 보냈습니다. 한 그룹에는 ‘투표는 시민의 의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편지를, 다른 그룹에는 이웃들의 예전 투표 참여 여부를 알리면서 다음 선거에 같은 양식의 편지가 발송될 것이라고 알리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결과 두번째 편지를 받은 사람들의 투표 참여율이 현격하게 높았습니다.

둘째, 저는 1박2일의 투표 여행을 하고 나면 최고 등급의 민주주의 시민이 됩니다. 나쁜 정치가 펼쳐졌을 때 고통받았던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좀 더 나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벅찬 기대가 가슴에 차오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이 담긴 것에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듀크대의 댄 애리얼리는 실험 대상자들을 둘로 나누어 한 그룹에 설명서를 주면서 개구리나 학 같은 종이접기를 시켰습니다. 대다수가 초보자였기 때문에 이들이 만든 작품은 그저 그랬습니다. 다른 그룹에는 종이접기를 지켜보도록 했습니다. 이제 각 그룹의 사람들에게 작품을 얼마에 사겠냐고 묻습니다. 직접 종이를 접은 이들은 관찰자에 비해 5배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향을 나타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원하면 투표를 하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합니다. 투표를 하면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어집니다.

정치판에 대한 회의가 무척 깊습니까. 누가 대통령이 된들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까. 댄 애리얼리는 앞서의 실험을 조금 바꾸어 일부 사람들에게 따라 하기 어려운 설명서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자신의 작품에 더욱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투표를 하고 나면 본질적으로 시끄럽고 불확실한 민주주의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지지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그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이 더욱 흥겨워집니다. 지지하지 않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그를 더욱 매섭게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고 죄책감 없이 정치인을 비판하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습니다.

투표를 무시하려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투표만큼 재미있고 만족감을 불러일으키는 합리적인 경제적 행위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친구들, 이웃들, 동료들과 함께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만족감, 정치인들에게 큰소리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는 만족감, 민주주의 시민이 되었다는 고상한 만족감, 무엇보다 평범한 우리가 최고 권력자라는 만족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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