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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가 료마에게 배운 것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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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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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 / 서울대교수 동아시아사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孫正義·손 마사요시) 회장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 인물은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1836~1867)다.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학생들도 아는 유명인물이다. 손정의는 15살 때 료마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료마가 간다>(한글번역본 <제국의 아침> 시바 료타로, 박문수 옮김, 인터넷에선 NHK 대하드라마 <료마전>을 한글자막으로 감상할 수 있다)를 읽고 감격하여 미국 유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는 각혈을 하며 병석에 있었고, 가족의 생계는 막연한 때였다. 어머니도, 친척도, 담임 선생님도, 친구들도 미국행을 말렸고, 듣지 않자 욕을 했다. 그러나 손정의는 미국행을 단행했다. 손정의는 이것이 자기 인생의 첫 번째 승부수였으며, 료마의 ‘탈번(脫藩·봉건영지인 번을 떠나 낭인이 되는 것)’에 자극받은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사카모토 료마는 메이지 유신을 추진한 수많은 사무라이들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식견과 통찰을 갖고 있었다. 메이지 유신 직전 일본은 ‘양이(攘夷) 열기’에 뒤덮여 있었다. 서양오랑캐는 짐승과 같은 자들이니 즉각 내쫓아야 한다는 것이다(조선의 대원군이 그랬던 것처럼). 료마도 처음에는 그런 배외주의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안가 부국강병과 문명개화를 위해서는 세계와 무역하는 수밖에, 즉 개항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간파했다. 그는 동료 양이주의자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고향인 도사번(土佐藩, 지금의 시코쿠 고치현)을 떠나버렸다. 료마의 ‘탈번(脫藩)’이다.

당시 사무라이들은 각 번의 가신단에 속해 있어야 했다. 여기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지금의 무국적자가 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경제적 기반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번의 신변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뜯어말린 것은 물론이었다. 단 한사람, 그의 왈가닥 누나만이 등을 떠밀었다. “료마야, 갔다 와라. 넌 도사번이 감당할 수 있는 사내가 아냐. 뭐든지 큰일을 내봐! 우리는 괜찮아, 갔다 와!!” 료마가 따돌림을 당할 때도, 공부를 못해 쩔쩔맬 때도 옆에 있어 주던 누나였다.

그 후 료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일을 시작했다. 하나는 해군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일본은 섬나라니까 해양국가이며, 당연히 해군이 강할 걸로 생각한다. 오산이다. 사무라이란 육군이지 해군이 아니다.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등이 등장하는 전국시대의 전투에 해전이란 거의 없다. 임진왜란 때를 생각해보라. 이순신 장군이 명장인 건 분명하지만, 그가 상대한 일본 해군은 100여년에 걸친 전투에 단련된 육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도쿠가와 시대가 되자 막부는 한술 더 떠 각 영주(大名·다이묘)들에게 쌀 500석 이상을 실을 수 있는 선박의 제조를 금지했다. 영주들이 해군을 키울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버린 것이다. 따라서 1853년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 페리 제독이 개항을 요구해 왔을 때, 일본은 사실상 해군이 없는 나라였다. 바다의 시대에 해군이 없는 나라라! 료마는 이를 간파한 것이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사설 해군이자 무역상사라 할 수 있는 ‘가이엔타이(海援隊, 바다에서 응원하는 조직)’를 만들어, 무역도 하고 전투도 했다. 손정의는 ‘가이엔타이’의 깃발 디자인을 소프트뱅크 로고에 차용했다. 바다로, 외국으로, 세계로! 료마와 손정의는 격하게 공감했다. 일본의 쇄국은 이 과정에서 깨진 것이다.

얼마 전 아베 신조 총리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한 학교재단이 소속 유치원생들에게 교육칙어를 암송하게 한 일이 드러났다. 교육칙어란 1890년에 제정된 것으로 천황이 일본 신민들에게 삶의 방향과 애국의 자세를 훈계한 문장이다. 천황제일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를 강요한 것으로 비판받는 문장이다. 이게 21세기 대명천지에 다시 튀어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물론 이건 극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 일본에 가서 호텔 텔레비전을 켰더니 한 지방대학 신입생 전원에게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 양이운동의 영웅)의 좌선법(坐禪法)을 가르친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두 일부의 예이기는 하나, 영 맘이 개운치 않다. 일본은 제2의 쇄국을 하려는가?

료마는 메이지 유신 발발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고 교토에서 암살당했다. 죽기 5개월 전 그가 교토로 올라오는 배 위에서 신정부의 강령으로 작성했다고 하는 ‘선상팔책(船上八策)’은 이런 내용이었다. “정권을 천황에게 반환, 상하양원의 의회 설치, 신분을 불문하고 천하의 인재 발탁, 외국과의 불평등조약 개정, 헌법 제정, 해군 확장….”

료마는 신정부 탄생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메이지 정부는 그의 구상을 그대로 실천했다. 지금의 일본 정부는 료마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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