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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외교관의 편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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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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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 전문기자

   
 

지난 대통령 선거 직전, 해외 주재 현직 외교관과 몇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는 대선 후보들의 공허한 감정싸움에 답답해하면서, 경쟁 속에서도 정파를 초월해 통합과 통일을 추구한 독일 정치인들의 행적을 예시했다. 화려한 개인기보다 우직한 팀워크와 정교한 패스로 결정적 기회를 만들어가는 독일 축구를 보는 듯했다. 통합과 통일이 숙원이되 5년마다 과거 정권과의 반목, 단절, 역행을 되풀이하는 우리에게 ‘지속 가능 정치’의 모델이 될 법해 그의 메시지를 간추려 본다.

“전후 독일의 경제 재건을 이끈 것은 보수 기민당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셜 플랜을 통한 경제 개입, 공산당 해산 압력 등 미국의 간섭을 수용하는 친서방 외교를 편 것도 ‘라인강의 기적’에 한몫했지요.

1969년 진보 사민당 최초로 총리에 오른 빌리 브란트가 민족주의에 입각한 동방정책을 추진하자 기민당 일각에서 격렬하게 반대합니다. 특히 슐레지엔, 동프로이센 실향민들의 반발이 거셌지요. 그러나 우리처럼 ‘용공’ ‘친북’ 딱지를 붙이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브란트는 2차례의 동·서독 정상회담, 각종 교류·협력 협정, 유엔 동시 가입 등을 이뤄냈으나 측근 비서 귄터 기욤이 동독 스파이로 밝혀져 1974년 총리에서 물러납니다(기욤이 동독에서 파견된 것은 맞지만 브란트와 일하면서 그에게 감화돼 서독으로 전향했는데, 동방정책을 우려한 미국이 기욤에 대한 정보를 흘려 서독의 정계 개편과 브란트의 낙마를 유도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총리의 비서가 간첩이었다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도 사민당 후임 총리 헬무트 슈미트는 동방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갑니다. 1982년, 정권은 다시 기민당으로 넘어가는데 이때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요. 보수 헬무트 콜 총리가 진보 브란트, 슈미트 총리 시절 특임장관으로 동방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한 에곤 바르에게 조언을 구한 겁니다. 바르는 미국과 소련의 비밀 접촉선 등 귀중한 인적자산과 동독 관련 정보를 콜에게 모두 넘겨주고요. 콜은 지지층 일부의 비난을 감수하고 동방정책을 지속합니다. 보수 정권이 그렇게 하니 미국도 시비를 덜 걸었지요. 마침내 콜은 1990년 독일 통일을 이뤄냅니다.

독일의 좌우 협조는 콜의 후임인 진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우파적 시각에서 경제 대개혁(해고요건 완화, 실업급여 제한, 연금 지급연령 상향 등)을 단행해 통일 후유증으로 침체된 독일 경제를 되살려낸 데서 절정에 이릅니다. 선거 패배를 무릅쓰고 추진한 슈뢰더의 개혁정책은 보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착실하게 이어받고요. 나라 살리는 일이라면 정권의 이해득실을 떠나 손을 맞잡는 보수와 진보,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햇볕정책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실 ‘햇볕정책’은 김영삼 정부 초기에 자주 쓰던 말입니다. 그 이전 노태우 정부도 남북 기본합의서를 체결하는 등 적극적인 대북 유화책을 폈지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이 설익고 거칠어 국민의 온전한 지지를 받진 못했지만 ‘종북’ 공세로 상처를 낼 일은 아니었지요.

독일 정치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자민당의 역할입니다. 중도 성향의 자민당은 연정(聯政)으로 보수 기민당과 진보 사민당을 오가면서 부총리 겸 외교장관직을 맡아 외교의 일관성을 유지했습니다(자민당 부총재 한스디트리히 겐셔는 1974년 슈미트 정부부터 콜 정부의 통독 이후인 1992년까지 외교장관 재임). 통일 후엔 부총리 겸 경제장관직을 차지해 경제부흥 전선에서 좌우 협치의 균형추 역할을 했고요.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건 서로가 상대방을 상종 못 할 적처럼 몰아붙이는 것 아닐까요. 어떤 경우에도 토론하고 논쟁해서 결론을 내야지요. 노무현의 자결, 박근혜의 투옥…. 이런 비극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건 우리 사회의 대각성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취임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16개 부처 장관들을 점심식사에 초대해 “여러분이 문재인 정부의 첫 내각이라는 생각으로 협력해 달라”고 당부한 장면은, 비록 개각을 앞둔 위로 차원의 수사(修辭)라 해도, 신선해 보였다. 특히 10년 전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간 이후 상황을 회고하는 대목이 의미심장했다. “참여정부가 잘했던 일들을 비롯해 국정의 큰 가닥들은 이어져 나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칼처럼 단절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는 것이다. 이제 문 대통령이 다시 ‘칼’자루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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