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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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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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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 / 논설위원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남서로 20여㎞ 떨어진 곳에 섬이라고도 할 수 없는 무인도가 있었다. 하시마(端島)였다. 1810년 무렵 부근의 어민이 이 섬의 표면에 노출된 석탄층을 발견했다. 1890년 ‘전범기업’ 미쓰비시(三菱)가 소유자에게 10만엔을 주고 탄광을 구입한다. 탄광은 일본 제국주의 근대화의 축을 담당하게 된다.

미쓰비시는 6차례에 걸쳐 매립공사로 섬을 처음의 3배 크기로 확장시킨다. 그래봐야 2만평도 채 되지 않았다. 좁은 땅에서 양질의 석탄이 쏟아지자 미쓰비시는 10층짜리 콘크리트 아파트는 물론 극장·종교시설·학교시설·기숙사·체육관까지 세운다. 군함이 떠 있는 모습이라 해서 ‘군함도’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러나 ‘지옥섬’이었다. 지하 1000m까지 뚫은 해저탄광의 막장 온도는 45도를 오르내렸다. 1941년부터 본격 시작된 ‘산업보국전사운동’에 따라 이 섬에 끌려간 조선인들은 생지옥 같은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1인당 0.5평도 채 안되는 좁은 방에서 7~8명이 버텼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막장에서 똑바로 서지도 앉지도 못하고 누운 채 하루 12시간 이상 석탄을 캐야 했다. 쉬고 싶다고 하면 몽둥이로 때렸고, 지나가던 갱부들이 한 대씩 때리도록 전봇대에 묶어두기도 했다. 견디다 못해 신체절단 등 자해까지 꾀한 이들도 있었고, 도망하려고 바다에 뛰어든 이들도 있었다. 1939~1945년 사이 이 섬에서 죽은 조선인이 120여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1943~1945년 사이 강제 동원된 조선인만 500~800명 사이라 한다.

최근 개봉된 영화 <군함도>가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역사왜곡과 스크린 독점, 작품성 등을 둘러싼 논란 또한 만만치 않다. 하기야 70여년 전 지옥섬 군함도에서 벌어진, 그 어떤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스토리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그려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실화가 영화의 상상력을 압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논란 속에서도 한 가지 결코 잊지 않아야 할 대목이 하나 있다. 2015년 유네스코가 군함도 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일본 측에 내건 조건이 하나 있었다. 각 시설에 ‘조선인의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을 적시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일본은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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