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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작품과 사람 사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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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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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귀국대원//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서정주 ‘마쓰이 오장 송가(松井 伍長 頌歌)’ 중)

잘 썼다. 서정주답게, 20세기 한국의 절창 시인답게 참 잘 썼다. 마쓰이 히데오, 그는 자살특공대원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박근형 연출가의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도 마쓰이 히데오가 등장한다. 서정주가 시 속에서 출정을 독려했던 그 젊은이, 오장 마쓰이 히데오 말이다. 시인이 비행기 관에 태워 보낸 그 젊은이를 박근형 연출가가 지상 위, 무대 위로 데리고 왔다. 그는 “제가 죽으면 저와 우리 가족은 영원히 일본인이 되고 아무도 우리 가족을 손가락질하지 못할 것”이라는 가슴 아픈 희망을 안고 죽어 간다. 조센징이라는 멸칭이 너무나도 듣기 싫었던 재일 한국인 마쓰이 히데오 말이다.

서정주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의 빼어난 작품들과 함께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런데, 참 역설적이게도 박근형 연출가는 지난 정권 내내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으로 금지 아닌 금지, 억압 아닌 억압을 당했다. 70년 전 명백하게 친일 절창을 써내려갔던 서정주는 지금도 작품의 이름으로 옹호받는다. 사실을 별것 아닌 일로, 그러니까 작품과 개인의 행적은 별개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고, 살아 있는 그리고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박근형 연출가를 블랙리스트로 분류하고 이 사실의 중심에 있었던 장관은 책임도 없이 무죄로 풀려났다.

영화 <군함도>가 예상치 못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대결로 흐를 줄 알았던 영화의 주요 서사가 반전의 이름으로 피수탈자 한국인과 그들을 이중으로 수탈했던 친일파 민족 지도자의 대결을 매복해 두었기 때문이다.

   
▲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명령을 내리는 일본인보다 오히려 채찍을 휘두르고, 쥐꼬리보다 못한 임금을 갈취하는 조선인 지도자가 더욱 잔혹하고 지독해 보인다. 영화의 초입부, 주인공이기도 한 강옥(황정민)이 공연을 하고 있는 경성 반도호텔에서 한 여성이 참전을 독려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도 그녀는 당시 경성을 주름잡는 권력이나 명성을 가진 인물로 보인다. 서정주처럼, 최정희처럼, 노천명처럼. 아마 그렇게 그녀도 자신의 실력으로 조선인들을 독려하고 있으리라.

지하련의 소설 <도정>에는 “덴노우 헤이까가 고-상을 했어요”라며 우는 소년이 등장한다. 덴노우 헤이까는 천황이다. 그러니까 한국어로 번역하면 “천황폐하가 항복을 했어요” 정도가 된다. 그런데, 소년은 왜 울고 있을까? 그토록 기다리던 일본의 패망인데, 소년은 “징 와가 신민 또 도모니(짐이 우리 신민과 함께)”라는 천황의 목소리가 너무 슬퍼서 “덴노 헤이까가 참 불쌍해요”라며 운다. 기뻐서가 아니라 슬퍼서 우는 것이다. 35년의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소년, 한 번도 일제 강점이 아닌 곳에서 살아보지 못한 열 몇 살의 소년에게는 광복이나 해방보다는 일본의 패망이 더 자기 일처럼 느껴진다. 순간, 소설의 주인공이자 지식인인 석재는 당혹감을 느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해방의 기쁨을 실감하지 못하자 혹시 자신이 타락한 것은 아닌가 자책한다.

우리에게는 1945년 8월15일이 준비되어 있던 해방으로 느껴지지만 당시를 살았을 사람들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었음에 분명하다.

소설 <도정>에는 대개의 평범한 시민들이 어리둥절해할 동안 재빠르게 몸을 바꾸고 변신한 기회주의자들이 그려져 있다. 친일을 했던 사람들이 재빨리 시류를 읽고 가장 먼저 처세를 바꾼다. 그리고 지도층 인사로 금세 올라선다. 주인공 석재는 당원 가입서에 스스로를 “소부르주아”라고 쓴다. 차마, 자기 스스로를 미화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설을 썼던 지하련, 임화의 아내는 남편과 함께 월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었다. 정확한 사인이나 사망 시기가 밝혀지지도 않았다. 우리 문학사에서 월북 문학인이라는 이름으로 1988년 해금조치가 되기 전까지는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던 이름이다. 지하련이 읽힌 지는 고작 20년 안팎이다. 참으로 복잡하고 가슴 아픈 현대사가 아닐 수 없다.

광복 72주년이다. 하지만 우리는 35년의 시기를 그리고 이후 70여년을 충분히 돌아보지 못했다. 엄밀히 말해, <군함도>는 감독 류승완의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떨어진다.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낙제점을 줄 만하다. 하지만 그가 던진 논란은 분명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쟁점이다. 작품을 이유로 친일파를 감싸기만 하는 게 잘못이라면 작품을 이유로 논쟁까지 파묻는 것도 잘못일 테다. 어쩌면 우리는 더 많이, 더 자주 이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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