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남 / 새만금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

지난달 일본 오사카 지역 재일동포에게 '문재인정부의 정책 방향과 한일관계 전망'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왔다. 당초 예상을 훨씬 넘는 250명이 모여 성황을 이룬 것을 보고 동포사회도 신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관심이 지대함을 확인했다. 필자가 난생처음 가본 해외 출장지도 1979년 일본흥업은행의 '산업금융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간 일본이었다. 당시 공직 4년차의 애송이 경제 관료였던 필자에게 일본의 경제 수준이나 생활상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1978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400달러 수준일 때 그보다 6배가 넘는 8800달러 수준이던 선진국 일본에서 받은 자극은 그 후 공직생활 내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일본을 쫓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우리나라와 일본의 현 경제 상황을 비교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자료에 의하면 2016년 국민총생산(GDP)은 일본이 4조9000억달러로 세계 3위, 우리나라는 1조4000억달러로 12위에 해당한다. 1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이 3만8900달러로 세계 24위, 우리나라는 2만7500달러로 30위에 해당한다. 한편 양국의 수출 실적을 비교하면 일본은 6414억달러로 세계 4위, 한국은 5090억달러로 세계 5위다. 하지만 1인당 수출로 환산해보면 일본이 대략 5000달러, 한국은 1만달러로 한국이 일본의 2배가량 된다. 세계 최고의 상품들과 경쟁해서 올린 이 수출실적은 재일동포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내용이 아니겠는가.

경제지표로는 한국이 일본을 상당히 따라잡은 듯싶지만, 일본에서 배울 것은 여전히 적지 않다. 우리나라가 걸어온 경제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왜 아직도 갈 길이 먼지 쉽게 이해가 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미만이던 1960년대 초 본격적인 경제 개발을 시작했다. 당시 우리는 이렇다 할 자원도, 경제를 주도할 민간기업도 없었고 국내시장도 취약한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첫째 민간보다는 정부 주도, 둘째 수입 대체가 아닌 수출 주도, 셋째 유망기업을 집중 지원하는 소위 불균형 성장전략을 채택하게 되었다. 그 덕에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반면에 재벌이 탄생하고 정경유착이 생겼으며 사회 전반에 빈부 간, 도시와 농촌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발생했다. 이는 오늘날 경제를 넘어 사회문제로까지 비화했다. 신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이러한 격차 문제를 해소하면서 우리 경제의 역동성도 되살리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 하겠다.

강연이 끝난 후 하태윤 주오사카 총영사와 환담하면서 필자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재일동포는 100억엔의 성금을 모아 모국에 기부했다. 이는 올림픽공원에 있는 체조, 수영, 테니스 등 3개 경기장과 대한체육회 본부,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모두 짓고도 남는 금액에 해당된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는 송금 운동으로 모국을 도왔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대부분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잊힌 상태다. 재일동포는 일본에서 차별받으며 어렵게 사는 가운데서도 모국이 어려울 때 성의껏 도움을 주었는데, 정작 모국은 지난날의 도움을 잊고 살거나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서운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어찌 재일동포뿐이랴.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열심히 일해서 모은 소중한 외화로 모국 발전에 기여한 재독동포 또한 이와 비슷한 심정을 느끼리라.

우리가 이만큼 잘살게 된 것은 물론 우리 국민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지만, 타국에 살면서도 뜨거운 애국심으로 모국을 도운 재외동포의 헌신 또한 작지 않은 밑거름이 되었다고 믿는다. 재외동포가 모국에 바라는 것이 꼭 물질적인 보답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과거 그분들의 도움을 잊지 않고 고마워하는 우리의 마음이 아닐지, 필자는 재외동포의 고마움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귀국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