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7.10.20 금 21:23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기고
수소폭탄 사용금지로 비핵・반전의 평화를 갈망한 러셀
이수경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9.04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 교수

1. 경술국치일 107년 째 새벽에 일본상공을 날은 북한 미사일

   
 

지난 8월29일 화요일 새벽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30일의 논문 마감에 쫓기며 연속 철야작업에 몸도 시력도 한계에 달했기에 휴식을 취하려던 찰나였다. 6시2분에 내 휴대전화의 방재속보앱에서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고, 이성을 잃은 듯 한 긴박한 상황으로 “미사일 발사, 미사일 발사...”라는 속보가 흘렀다. 30여년을 넘는 일본 생활에서 1995년의 한신대지진, 2011년 3.11 동북대지진 등을 현지서 경험하며 학습했기에 우선 TV를 켰다. 각 방송국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전국순시경보시스템인 J-ALERT(2007년부터 실시하는 정부가 주민 개개인에게 일괄적으로 발신하는 긴급경보) 발동에 의한 화면 구성으로, 4분 전인 5시 58분에 북한이 일본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긴급 속보와 나가노현에서 홋카이도까지 12도현의 동북 지역 주민들은 안전한 건물이나 지하에 속히 대피하라는 지시가 전달되고 있었다. 대단히 심각한 상황처럼 느껴졌다.

   
▲ 8월29일 새벽의 긴급경보알림과 각 TV의 속보 방송. ⓒ이수경

북한이야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해 자신들의 무기력 과시 및 미사일 실험의 기회로 미리 짠 계획이었겠지만, 한국이나 일본은 예상도 못한 미사일 발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북한을 파악하고 연구하는 전문가들이라면 기념일 행사처럼 무력 과시를 잘 하는 북한인만큼, 미사일 발사를 위한 명분이 겹쳐있던 8월29일은 예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인 국제정치학자 동료가 보내온 8월28일 ‘조선중앙통신’ 일본어판을 보면, 미사일 발사의 예상을 행간에서 엿볼 수 있다. 폴란드나 오스트리아 매체를 인용하여 미국의 행동에 대한 분석이 이뤄진 가운데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사정거리 내에 살고 있는 미국인은 불안하여 바늘방석에 사는 것 같을 것이라며 트럼프 정권을 조소하고 있다. 미국과 트럼프 정권에 대한 협박적 도발언사는 상투적인 것이지만, 북한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을 하고 있었더라면 그 행간에 내포된 미사일 강조가 1910년의 한일강제병합 발표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통치가 시작된 107년 전의 한민족 굴욕과 수치의 역사 기념일에 행할 수 있다는 예상은 했어야 했다.

적어도 미사일 실험의 대의명분은 아래와 같이 몇 개 준비되어진 상황이었다.

1.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군사훈련(비록 북한의 자극을 의식한 미군 참가병력 축소 규모였다고 하더라도)에 대한 대응, 2. 미국이란 거대국 및 주변국에 대한 북한의 무기력 과시와 대화 채널 형성 의도, 3. 일제식민지 역사에 대한 청산과 조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지지 않고 북한 따돌리기로 재일동포의 고국방문 제재를 하고 있는 일본에 대한 위협과 제재 완화 의도, 4. 한일 공간에서 과거사를 기억하는 사람들(한국인, 재일동포, 일본인 포함)의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여 유순한 조일 대화노선 기반 형성 가능, 5. 핵무기 탑재일 경우, 국제사회로부터의 공격 대상이 되기에 로켓 미사일 훈련이라는 명목 하에 이뤄진 기습 발사, 6. 약소국 북한이 국제사회에서의 생존방법으로 김일성, 김정일 정권 때 핵강대국 지향을 했던 만큼 그들의 목표를 김정은 정권에 이루게 된 것의 과시 등의 치밀한 계산이 내포된 미사일 발사였다고 할 수 있다.

미사일 발사 다음날인 8월30일 평양발 ‘조선중앙통신’ 일본판을 보면, 수도 평양에서 최초로 발사가 가능하게 된 이번 조선인민군전략군의 중장거리 전략탄도 로켓 발사에 노동당중앙위원회 책임간부와 국방과학연구부문 간부 등이 참관하는 가운데 새벽 미명에 도착한 김정은 위원장이 지도를 했고, 이 훈련에는 유사시 태평양작전지대 내의 미제 침략군기지를 타격하는 임무를 가진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와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켓 ‘火星12’형이 동원되었으며, 북한의 경고에 도전하여 강행 중인 한미합동군사연습에 대비한 무력시위의 일환임을 밝히고 있다. 이 탄도 로켓은 예정된 궤도에 따라서 홋카이도 상공을 통과하여 북태평양 해상의 목표수역에 명중했으나 주변 제국의 안전에는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은 완벽한 성능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이번 발사훈련은 북한군이 실시한 태평양에서의 군사작전의 첫걸음이고, 침략의 전초기지인 괌을 견제하기 위한 의미심장한 전주곡으로서 향후 태평양을 목표로 전략 무력의 전력화, 실전화, 현대화 추진을 할 것이며, 호전적 침략전쟁 연습을 하는 미국과 더불어 실시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단호한 대응조치의 서막에 지나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향후 보다 더 강화, 강력하고 위력있는 탄도 로켓을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도록 체제 정비를 통하여 조국의 안전과 인민의 행복을 확실하게 보증하는 큰 기대와 확신을 표명한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모든 장병은 107년 전 '韓日合併(한일합병)'이라는 수치스런 조약이 공포된 피의 8월29일에 잔혹한 일본 섬나라 오랑캐가 깜짝 놀랄 대담한 작전을 책정하여 수도권 지역에서 탄도 로켓을 발사하도록 승인하여 인민들의 가슴에 축적되었던 원한을 풀어준 불세출의 애국자, 민족의 영웅인 최고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에게 열렬한 감사를 보내며 당 중앙이 명령을 내리면 반제・반미 대결전을 총결산하게 될 최후의 성전의 선두에서 조선노동당의 든든한 핵무장력으로서의 성스러운 사명과 본분을 다할 것을 맹세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9월3일엔 ICBM장착 수소탄 제조와 더불어 강력한 핵무기 제조로 핵강대국 실현을 과시하였고, 이에 미국은 북한도항금지 및 도항할 경우의 벌금 등의 처분을 내린다고 발표하였다. 한국은 물론 일본도 초강경 제재를 국제사회와 더불어 실시할 것을 명시하고 있고, 미국도 수위를 넘어선 폭주에 강경책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중국, 러시아 등이 이웃인 북한을 시리아나 이라크처럼 쉽게 표적 공격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보면 그야말로 극단적인 힘의 논리로 치닫는 치킨게임 중인 두 지도자들의 위험한 거래 속에서 파생되는 각종 도발로 초긴장 상태에 놓여져야 한다는 것은 참기 힘든 상황이다. 물론 북한이 6차 핵실험으로 엄청난 위력의 핵무기를 제조했다 해도 핵 탑재 순간이 자신들의 괴멸을 초래함 역시 익히 잘 알고 있으리라. 비록 값싸게 만들 수 있는 수소폭탄 제조의 양산이 가능하여도 기습 도발로 인한 동아시아 자멸의 지름길을 택하는 우행은 하지 않을 것이라 믿지만 평화와 공생의 미래 구축을 표방하는 주변의 선진제국들의 강력한 도발 저지의 역할과 대화 노선의 제안을 해야 할 것이다.

2. 수소폭탄의 위력과 위험성을 세계에 알린 러셀과 아인슈타인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최대의 논리학자로 불린 과학자요. 철학자로 평생을 평화운동 실천에 헌신했던 버트랜드 러셀이 1945년11월 영국 상원의원에서 수소폭탄의 실용화가 인류 존속의 위기와 맞먹는다며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195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러셀은 프린스턴고등연구소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나 핵무기, 특히 수소폭탄 제조의 위험성에 대해 논의하며 인류의 존속이 걸린 사안으로 논의를 하게 된다. 1954년 12월에는 그해 3월에 실시된 비키니 수소폭탄실험으로 인해 원자폭탄의 1400배의 파괴력을 가진 위력을 알게 되고 그 위기감을 BBC방송을 통해 호소한다.

The Basic Writings of Bertrand Russell 1903-1959(SIMON AND SCHUSTER)에는 ‘인류의 위기(MAN’S PERIL)’로 간행되었고, 캠브리지 대학의 WREN LIBRARY(Trinity college)에 소장된 러셀의 친필 원고에는 히로시마 원폭 충격에 기인한 ‘The Implication of the H-Bomb’라는 이 글의 첫 내용은, 오직 한 인간으로서 인류의 위기에 대해 호소를 하고 있다. 인종차별과 이념적 갈등으로 분열되던 그 시대의 분위기를 초월하여, 오로지 인류 전체의 존속을 간절히 염원하는 인간 러셀의 호소가 스며들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I AM speaking on this occasion not as a Briton, not as a European, not as a member of a Western democracy, but as a human being, a member of the species Man, whose continued existence is in doubt. The world is full of conflicts; Jews and Arabs; Indians and Pakistanis; white men and negroes in Africa; and, overshadowing all minor conflicts, the titanic struggle between Communism and anti-Communism. (중략) I appeal as a human being to human beings; remember your humanity, and forget the rest. If you can do so, the way lies open to a new Paradise; if you cannot, nothing lies before you but universal death. Bertrand Russell.

“평화로의 길이냐, 인류 자멸의 길이냐, 우리들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좋은지를 나는 오히려 예언할 마음이 없다…인류는 과연 앞으로 계속 생존할 것인가? 나는 ‘당연하다’고 절대 확신하고 있다.”

이 원고는 러셀이 비장한 각오로 인류의 평화적 존속을 절실하게 바라는 데서 나온 호소였다. 그리고 어리석은 파멸의 길이 아니라 현명하게 평화 공존을 하는 지혜를 선택하길 원했다.

원자폭탄의 1400배 이상의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무엇보다 값싸게 제작할 수 있는 수소폭탄의 인류사용을 저지할 방법으로 러셀은 양심적 과학자 및 지성인들의 책임 있는 결의가 필요하다고 하여 1955년 7월9일, 웨스트민스트 사원 근처의 Caxton Hall에서 열린Press Conference에서 노벨상 수상자 및 과학전문가들*(Max Born,Percy W. Bridgman, Albert Einstein, Leopold Infeld, Frederic Joliot-Curie,Herman J. Muller,Linus Pauling, Cecil F. Powell, Joseph Rotblat, Bertrand Russell, Hideki Yukawa)로 구성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문을 발표하게 된다. 그 선언문에는 수소폭탄의 위험성과 인류 전체의 파멸의 위기, 향후 결코 인류의 전쟁에 핵폭탄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과학자들의 결의안 채택과 세계과학자회의 (퍼그워슈회의로 발전)의 의의가 표명되었다.

   
▲ 러셀의 모교 캠브리지대학 트리니티칼리지와 CAXTON HALL 전경(왼쪽부터).ⓒ이수경

러셀은 원자력 수소폭탄 금지의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1958년 핵병기철폐운동(CND)의 총재로 트라팔가 광장에서 대중집회, 평화행진, 히로시마데이, 원자력수소폭탄금지국제회의 등을 지도했다. 영국정부의 핵정책에 저항하며 그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러셀은 1961년2월8일, 2만 명이 군집한 트라팔가광장에서 ‘인류가 살기 위한 데모 행진’의 선두에 섰고, 88세의 고령임에도 그의 평화 공존을 향한 굳은 의지로 10월 29일의 대집회는 물론, 60년만의 폭설 속에 열린 12월9일의 5만 명 대집회에서 인류의 존속과 수소폭탄 절대 사용금지를 역설하였다.

그만큼 수소폭탄을 히든카드로 치킨게임에 사력을 다 할 정치적 움직임이 이렇게 나올 것이라는 것을 예견했기에 인류를 염려하던 지성의 애절한 바람이 일찌감치 있었던 것이다.

3. 비핵 반전의 공생 기반을 위한 주변국의 다양한 역할

북한은 작년 정권 수립 기념일인 9월 9일에 실시한 제5차 핵실험과는 달리, 이번 제6차 핵실험을 통해 영변주변의 인공지진 소식을 쾌재로 느끼며 어마어마한 파괴력에 들떴을 것이다. 천하를 장악한 핵강대국임을 현실화 하며 미국과의 교섭 카드를 자신들이 갖고 있겠다는 의지도 굳건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위험한 핵실험 및 그것을 탑재한 중장거리 미사일 사용을 절대 자제하는 것이 이성적이고 현명한 전략이 될 것이다.

한국 정부도 레드 라인에 달했다고 보고, 9월4일 새벽에 공군 및 육군 미사일 합동 실사격 훈련에 들어갔다. 일본 역시 북한의 폭거를 이유로 미국과 러시아 수뇌들과 결속을 다지며 도발에 대한 강력한 압박과 대북제재 준비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일본에는 북한계 재일동포들이 생활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3만 수 천명의 희생이야 각오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으로 핵보유국 인정을 받으려는 카드 협상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핵우산 하에 동맹국으로 있는 한국과 일본 역시 핵보유국 인정을 해야 하는 형평성이 요구될 것이고, 북한의 핵보유가 주변 강대국으로 부터의 불가침 억제의 방위력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어떤가? 이미 1943년 당시 일본 해군이 교토대학 등을 중심으로 핵폭탄 제조를 위해 한반도 및 말레이반도에서 우란 등을 반입하여 핵무기 제조를 했던 기술을 익히 지녔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일본이 기술과 경제력이 부족해서 핵폭탄 제조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국제적 질서를 위한 공존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국가 평화 존속의 생존법이라는 이성적 대처를 하기에 핵우산 하에서 미국의 동맹에 힘입고 세계의 선진국으로 거듭나려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일본이 선택한 지구촌 공존의 지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미국이란 나라가 세계의 경찰국으로 자처하는 것은 평화 질서를 위해 막강한 병력 투입도 불사 않고 초강경의 대응을 해왔기 때문이고, 국제사회의 질서를 위해서는 지구촌 어디라도 표적 공격을 통해 기어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며 숱한 생명도 희생시켜 왔다.

이라크의 지존으로 존재했던 사담 후세인의 말로를 보면 그 대응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힘의 논리를 직시하는 것도 지혜이고 전략이다. 그렇기에 2200만 국가가 이미 선진대열에 서 있는 국가간에서 살기 위한 자력갱생을 위해 핵강대국이라는 극단적 선택 보다, 한반도 비핵 반전의 기반을 구축하도록 그 길을 터 주는 것이 주변 선진국들의 절대적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이미 두바이나 연해주 등의 해외 파견 노동력을 통해 기술 체득 및 전문 노동력 수출로 인적 자원을 확보, 성장시켜 왔다. 컴퓨터 기술 등의 과학 기술력도 뛰어난 나라임을 알아야 한다.

이미 체제가 다른 국가로 64년이 지났으면 선조의 뿌리는 함께 하지만 국가관이나 사회적 체제를 함께 하기란 쉽지 않다. 스위스처럼 현재의 남북한 국방력을 자위군으로 바꾸고, 주변 제국 및 강대국에 신성불가침 조약의 협약을 인정받고, 절대 중립국으로 존속하는 연방제를 실시한다면 남북한 평화 통일의 좋은 형태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남북의 격차만큼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평화통일의 이상은 쉽지 않다는 현실 직시 하에 핵의 위협을 불식하고 상호 생존을 위한 인센티브가 준비되어야 하고, 한국과 주변국이 협력하여 무력해제를 통한 대화채널의 장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북한도 핵은 가졌으나 핵 도발이 능사가 아님을 국제사회가 인지시켜야 할 것이고, “모두가 살기 위한” 상호 실리적 동반성장의 접근으로 해빙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정부가 해야 할 일은 그런 대화의 장 설치를 주도하며 국민을 안심시킬 안보 상황에 주력하되, 북한과의 대화에는 차기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하는 빅터 차를 비롯, 주변국과의 유연한 지혜로 협력하여 한반도를 지켜내는 것이다.

또한 일본이 이번 미사일 발사 때 보인 예민한 반응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자각해야 한다. 아베 스캔들 지우기도 내포되어 있겠지만, 역시 자국의 영해에 타국의 미사일이 날아 왔을 때, 전 국민이 빠른 대처를 하는 것은 중요한 자세이다. 한국은 일본 속보 때 어떠했는가? 필자가 인터넷을 봤을 때는 간단히 ‘속보’라는 한 줄이 뉴스로 떠 있었다.

큰 재해가 많았던 나라인 만큼 학습적 대처 방법이 신속했다고 할 수 있다. 핵을 가진 나라가 평화를 깨며 우롱하듯 날리는 미사일인 만큼 이 위협적 도발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지에 사는 사람들 입장이 되어 보면 그 불안한 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예민하게 대응하는 일본이기에 되려 이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한 이성적이고 선진적인 대북 역할을 기대하고 싶다면 모순일까?

국제사회와의 결속을 다지며 자국의 병력 증강을 꾀하기보다, 1945년 이후 역사 청산은 물론, 국교 정상화조차 되지 않은 북한과 일본. 그러한 현실적 사안에 용단을 내리고, 일본도 한반도도, 동아시아 평화 공존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사상 최대의 군사비 지출로 인한 군산복합체 투자보다 ‘공생 비용’으로 안전보장을 확보할 수 있는 정치적 전략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그 가교 역할을 위해 진취적 발상으로 일본 내 조총련의 협력을 구해보며 공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은 어떠한가? 사회 불안정세가 계속되면 한국 경제 뿐 아니라 동아시아 금융시장에 큰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모두가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이 과거의 전시 특수를 보던 시대와는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보다 과감히, 보다 큰 미래를 볼 수 있는 수준 높은 정치를 보고 싶다.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가 어떻게 존재하기를 원하는지, 우리는 100년 대계를 생각하는 지혜로운 정치력이 요구되는 기로에 서 있으리라.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