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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日王의 ‘訪韓夢’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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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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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 논설위원

   
 

1975년 7월 17일 전몰 희생자를 추모하는 오키나와 ‘비명의 탑’. 아키히토 왕세자의 참배 순간 화염병이 날아왔다. 참호에 숨어 일주일간 버틴 두 청년의 거사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옥쇄(玉碎) 작전으로 12만 명이 넘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희생됐다. 전쟁 책임이 있는 일왕 장남의 참배마저 용납할 순 없었던 것이다. 사건 수습 후 왕세자는 참배를 마치고 떠났다.

▷아키히토 일왕이 20일 사이타마현 히다카시 고마(高麗)신사를 처음 방문했다.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 약광과 유민 1799명이 망국의 한을 안고 1307년 전 이곳에 정착했고, 후손들은 약광을 기려 신사를 세웠다. 참배하면 출세한다는 속설도 있다. 참배 뒤 총리에 오른 정치인만 사이토 마코토를 비롯해 6명. ‘수사가 풀린다’는 얘기도 한때 퍼져 검사들도 이곳을 찾아 기도했다. 이곳 사람들은 고마나베를 즐긴다. 절인 배추에 된장 간장을 풀어 푹 끓인 고구려 음식이다.

▷간무(桓武)는 일본 50대 왕으로 49대 고닌왕과 백제인 고야신립 사이의 아들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속일본기(續日本紀)’를 근거로 두 차례 이를 공식 언급했다. 2001년 12월 23일 생일을 앞둔 기자회견과 2010년 일본 나라현에서 열린 제1회 동아시아지방정부 모임에서다. ‘간무천황 생모가 백제 무령왕 선조인 백제 도래인(渡來人) 자손’이라는 취지였다. 그래서 “깊은 연고를 느낀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도, 고마신사를 찾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아키히토 일왕이 건강을 이유로 생전 퇴위를 선언한 작년, 일본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일왕은 2차대전 전몰 위령지를 찾아 참회하는 의식을 이어갔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강성 우파를 견제하는 ‘조용한 반대자’ 역할도 했다. 한국 방문을 희망한다는 뜻도 여러 차례 표했다. 재위 중 방한은 양국 국민의 정서를 건드리는 예민함 때문에 성사가 힘들다. 그러나 내년 퇴위 후라면…. 고향을 방문하듯 방한이 성사되면 한일관계는 급속히 정상화할 수 있다. 아키히토 일왕도 그런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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