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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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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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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 논설위원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2007년 2월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할머니들께 누가 될까 봐 죽기 살기로 준비했다”는 노배우의 열연에다, 묵직한 주제를 코믹하게 풀어내 버겁지 않게 만든 덕분인지 흥행에도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미와 감동의 뒤끝에 작금의 일본을 떠올리면서 많은 생각이 몰려왔다.

영화의 통쾌한 마무리처럼 청문회 증언 후 5개월 만에 미 하원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 121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국제사회에선 일본의 뻔뻔한 역사인식에 대한 거센 비난이 비등했고, 미 행정부까지 나서 일본을 강하게 압박했다. 당시가 아베 신조 1차 정권 시절이었다. 아베에겐 치욕적인 패배이자 절치부심의 계기였다.

위안부결의 이후 日 ‘설욕외교’

그리고 10년이 지나면서, 특히 아베 2차 정권이 이어지면서 미국 조야(朝野)의 여론은 180도 달라졌다. 아베는 여전히 강제연행과 법적 책임을 부인하고 있는데도 미국은 어느새 일본에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외교참사’로 비판받는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가 나온 배경에도 일본이 아닌, 한국에 대한 미국의 거센 압박이 있었다.

그해 초 웬디 셔먼 국무부 차관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받기는 쉽다”며 한국을 대놓고 비난했다. 아베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교묘한 작문(作文)으로 식민지배 사과를 회피했는데도 미국은 “흠잡을 데 없다”고 했다. 위안부 합의 직후 아베가 “털끝만치도 생각이 없다”며 직접 사과를 거부한 것도 이런 미국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베가 이렇게 분위기를 역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고 거기에 맞춰 대미 외교에 매진하면서 국내 우경화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는 중국의 부상에 맞서기 위해 일본의 역할이 필요한 미국이 요구해온 것이었다. 역대 정권은 평화헌법상의 제약을 들어 ‘행사 불가’ 입장을 견지했지만 아베 정권은 달랐다.

그렇다고 서두르지는 않았다. 먼저 헌법 해석을 변경하는 ‘해석 개헌’부터 시작해 미일동맹을 ‘지역동맹’에서 ‘글로벌동맹’으로 바꾸고 안보법제를 정비하기까지 몇 년에 걸쳐 차근차근 마무리했다. 아소 다로 부총리가 진작 예언처럼 말했듯이.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바이마르 헌법이 나치의 헌법이 돼 버렸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바뀌었다.”

아베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을 기세다.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아베는 개헌 추진을 공식화했고, 측근은 “천운의 기회”라며 환호했다. 첨단 로켓과 핵기술 개발을 통해 ‘은폐된 억지’ 전략을 추구해온 일본은 핵무장 군사대국으로 달려갈 수도 있다.

여우같은 아베의 성공 처세술

“문재인 대통령이 골프를 안친다고 해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지난달 미국 워싱턴에서 만난 한반도 정책 담당자가 한미 지도자 간 케미스트리(궁합)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농담 삼아 덧붙인 한마디다. 웃고 넘겼지만 씁쓸했다. 일본과 비교되는 한국 외교에 대한 답답함을 에둘러 내비친 것이기에.

다음 주말 아시아 순방에 나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곧장 아베와 골프장으로 향한다. 서로 ‘론’과 ‘야스’라고 부르던 레이건-나카소네 시절을 뛰어넘는 밀월을 뽐낼 것이다. 그에 비해 문재인-트럼프의 만남은 서먹해 보일지 모른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어쩔 수 없다. 아베라고 유치하다는 주변의 손가락질을 모를까. 그럼에도 자신을 낮춰 실속을 챙기는 현실주의 외교는 자고이래 성공적 처세와 국가 경영의 전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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